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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지는 한나라당, 이미 예고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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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지는 한나라당, 이미 예고된 일!

[해방일기] 1946년 12월 12일

1946년 12월 12일

입법의원 민선 당선자 3인(조소앙, 문도배, 김시탁)과 관선 임명자 5인(조완구, 엄항섭, 여운형, 장건상, 홍명희)의 취임 거부를 12월 7일자 일기에서 이야기했는데, 12월 10일에 또 한 사람이 관선 의원 취임을 거부했다. 인민당의 염정권이다.

12월 12일의 개원을 전후해 취임을 분명히 거부한 사람은 정원 90인 중 9인이 되었다. 그리고 선거가 무효로 선언된 서울과 강원도의 6석이 비어 있었다. 12월 10일 의원 등록 절차에 응하지 않은 관선 의원은 더 많이 있었다.

입법의원의 법적 근거인 군정청 법령 제118호의 제6조 제1항은 "조선과도입법의원의 모든 행동은 정원수의 과반수로서 결정되며 동의원의 다른 결정이 없는 한 전 의원의 4분지 3이 정원수를 구성함"으로 되어 있다. 개회 정족수가 68인이라는 말이다. 서울과 강원도의 6명을 빼더라도 63명이 필요했다. 10일 의원 등록 상황을 보면 개회 정족수 채우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 되어 있었다.

한민당은 입법의원의 설치 자체는 자파 세력의 확장 무대로 반기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10월 말 선거에서 한민당은 민선 의원 45인 중 14인을 당선시켜 독촉국민회와 함께 최대 세력을 이뤘다. 그런데 12월 12일 등원 거부 성명서를 발표할 때는 소속 의원이 21인이라고 했다. 관선 의원 중 한민당으로 명시된 것은 1인뿐이었는데, 그 사이에 당선자와 임명자 중 6인이 한민당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원 의원 결정 전 한민계 출석을 보류"

한국민주당에서는 서울시와 강원도 양지구의 대의원이 확정될 때까지 입법의원의 개원 연기를 하지 중장에게 요청하였더니 불청하였으므로 여좌한 결의를 동당 출신 대의원 21명의 명의로 입법의원사무총장에게 제출하고 등원을 거절하였다.

"본의원 등은 서울시 및 강원도 지구의 의원이 결정되기 전에 입법의원을 개원함은 부당하다고 인정하고 右地區의 의원이 결정되기까지 입법의원의 개원을 연기하기를 요청하는 동시에 그때까지 출석함을 보류함." (<동아일보> 1946년 12월 13일자)

한민당은 서울의 재선거와 관선 의원 구성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개원 정족수의 약점을 잡아 자당의 위세를 과시하고자 한 것이다. 재선거로 인한 6인의 결원이 있었고 취임을 거부할 사람들도 몇 명 있으니, 한민당 소속 의원과 동조자들이 등원을 거부하면 개원을 손쉽게 봉쇄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등원 거부 방침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군정청에 통보한 것은 개원일인 12일이었지만 그 방침은 7일 관선 의원 명단 발표 후 바로 결정되었던 것 같다. 미군정이 118호 법령의 관련 조항을 서둘러 개정한 것은 그 방침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법령 제129호" 법령 제118호의 개정
제1조 법령 제118호의 개정
1946년 8월 24일부, 법령 제118호 제6조 제1항은 좌기와 여히 개정함

조선과도입법의원의 모든 행동은 정원수의 과반수로써 결정되며, 동의원의 다른 결정이 없는 한 전 의원의 과반수가 정원수를 구성함
제2조 시행기일
본 법령은 공포일부터 유효함
군정장관대리 미국육군대장 씨 지 헬믹
군정청 법령 제129호 1946년 12월 11일


11일에는 입법의원 예비 회의가 열렸다. 바로 그 날 개원 정족수 관련 조항을 바꾸고 즉각 효력을 발생시킨 것이다. 이 개정이 아니었다면 예비 회의부터 성립이 안 되었을 것이다. 미군정이나 한민당이나 피차 입법의원 개원을 간절히 바라는 입장인 터에, 제 마음대로 안 된다고 몽니를 부리는 한민당이나 법령을 앉은 자리에서 갈아치우는 미군정이나 입법의원의 진정한 기능과 권위를 아끼는 마음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한민당은 이 법령 개정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말씀인즉 너무나 옳은 말씀이다.

"법령의 즉석 변경은 비민주적인 조치"

"좌우합작위원회에서 비법적 독재적 요청을 하지 중장에게 제출하였을 때 본당은 민족의 명예와 민권의 옹호를 위하여 단호 그 요청을 배격하였던 것이다. 그 후 하지 중장은 하등 명확한 이유의 제출 시도 없이 서울특별시와 강원도의 민선의 무효를 선언하였다. 본당은 그 부당성을 누누 개진하여 동 중장의 신중한 재고려를 요청하는 동시 무효 선언의 이유가 불명함을 규탄하여 재선거의 시행을 거절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실정에도 불구하고 군정청에서는 입법의원을 11일 소집하고 이어 12일에 개원식을 거행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분명히 민의와 민권을 아울러 무시하는 비민주주의적 조치요 불법적 행동이다.

본당 소속 대의원과 그 뜻을 같이하는 대의원 21명은 이 불법 조치에 굴종하기를 거부하고 서울시와 강원도의 민선 대표가 결정될 때까지 개원의 연기를 요청하고 출석하기를 보류하였다. 입법의원은 전의원의 4분지 3의 출석이 없으면 법적으로 구성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당황한 군정청에서는 입법의원 이외에는 변경할 수 없는 법령 제118호의 법정수에 관한 규정을 즉석에서 변경하여 전 의원의 과반수로서 법정수를 정한 후 하등 공포도 없이 그 신 규정에 의하여 입법의원은 구성되었다 하고 의사를 진행한 것이다.

이것은 법의 근본 원칙을 파괴하는 것이다. 독재 전단의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에 3000만 대중의 자유와 권리를 위하여 군정 당국의 비민주주의적 조치에 항의하는 동시에 일반 국민의 양심에 호소하여 정당한 비판을 요청한다." (<동아일보> 1946년 12월 13일자)

한민당과 이승만 세력은 미군정과의 밀착관계를 통해 힘을 키워 왔다. 그런데 이제 이승만은 하지 사령관을 '용공주의자'로 몰아붙이기 시작하고 한민당은 지엽적인 불만을 이유로 미군정을 곤경에 몰아넣으려 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구양수의 <붕당론(朋黨論)> 한 구절이 떠오른다.

소인들이 좋아하는 것은 이록이고 탐내는 것은 재화다. 이익을 함께할 때는 잠시 서로 당파로 끌어들여 붕(朋)을 삼지만 거짓된 것이다. 이익이 보일 때가 되면 서로 앞을 다투고, 이익이 다할 때가 되면 사귐이 멀어진다. 심한 경우 서로 싸우고 해치기까지 하니, 비록 형제와 친척이라 하더라도 관계를 지키기가 힘들다. (小人所好者 利祿也 所貪者 財貨也 當其同利之時 暫相黨引 以爲朋者 僞也 及其見利而爭先 或利盡而交疏 甚者反相賊害 雖其兄弟親戚 不能相保)

지금 한나라당이 어지러운 꼴을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이치다. 함께 이익을 도모할 때는 굳게 뭉쳤지만(2007년 대선) 이익이 눈앞에 보이자 계파 간 갈등을 드러냈고(2008년 총선), 권력을 쥔 계파가 이익을 독식하는 상황 속에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심리로 돌아서고 이익이 다한 상황에서 각자의 살 길이 엇갈리게 된 것이다.

미군정이 절대 권력을 쥐고 군림하던 점령 초기에 한민당과 이승만 세력은 미군정에 의지해서 힘을 키웠다. 1년 남짓 기간 동안 이 밀착관계를 뒷받침한 것은 좌익에 대항하는 공조의 필요였다. 이남 지역에서 좌익의 위협을 제거해 놓은 이제 3자 사이에 권력을 향한 경쟁관계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미군정은 공식적 권력을 계속해서 손에 쥐고 있었지만 그에 따른 공식적 책임에도 얽매이는 입장이었던 반면 한민당과 이승만 세력은 아무 책임감 없이 미군정을 흔들고 두들겨댐으로써 자기네 입지를 강화하러 나서기에 이른 것이다.

미군정에게 행동 선택의 여지가 계속 줄어들어 온 사실은 경찰에 대한 태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조병옥과 함께 경무부장으로 있다가 고문으로 물러선 맥그린 대령은 조미공위의 경찰 문제 지적에 동의했다. 그러나 조병옥과 장택상 중 한 사람이라도 퇴진시켜 달라는 합작위 측의 최소한 요구를 미군정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전국적 소요 사태에 대처하는 데 조병옥과 장택상의 경찰에게 당장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군정은 오히려 조병옥의 최능진 축출을 승인해야 했다. 미국인들과 소통이 잘 되는 유일한 대안을 포기한 것이다. 이제 조병옥과 장택상은 미군정의 신임을 지키기 취해 전처럼 큰 노력을 들일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들에 대한 미군정의 통제력이 줄어든 만큼 그들은 경찰력을 더욱 제멋대로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군정의 권력이 담당자들에게 농락되는 공동화(空洞化) 현상의 한 단면이다.

12월 11일 11시에 입법의원 예비 회의가 53명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전규홍 사무총장의 선언으로 개회되었고 김규식이 임시 의장으로 뽑혀 진행을 맡았다. 이 날의 결의 사항은 의장 선거 하나뿐이었는데, 일부 의원들이 정식 의장은 나중에 서울과 강원도의 재선거도 끝나고 한민당 의원들도 참석했을 때 뽑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서 잠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 토론 정리 과정에서 김규식의 발언은 입법의원의 종속적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법령을 고치고 무어라고 하는 여기에 대해서는 본원에서는 아직 이것이 예비 회의인만치 정식 개원이 되지 아니한 만치 본원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하는 것이올시다. 아직까지는 군정청법령은 법령대로 되어지는 것이올시다. 그 법령에 의지해서 이 입법원이 구성되는 것이올시다. 그러므로 이 입법원이 정식으로 개원이 되고 또 정식으로 행사하는 그때에 가서 군정청법령이 어떻게 되고 입법원으로서는 안을 제출하는 것은 어떻게 되고 하는 것은 그때 일이올시다 그래서 여기에 있어서 어떠한 방면이라든지 어떠한 당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라든지 어떠한 개인이 무엇을 하는 것이라든지 지금 우리로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법령을 급작스럽게 수개했든지 잘 수개 못하였든지 우리가 그 법령에 의지해서 이렇게 앉아 있는 자리에서는 그 법령대로 하는 것이올시다. 그 법령을 고치고 정지시키고 변경시키는 그러한 권한이 아직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입의 속기록 제1호 1946년 12월 12일)

입법의원 개원식은 12월 12일 12시에 열렸다. 57명 의원이 참석했고 하지 중장, 브라운 소장(미소공위 수석대표)과 헬믹 준장(군정장관 대리)이 참관했다. 전날 의장으로 선출된 김규식의 개회사는 입법위원의 위상과 함께 그의 희망을 담은 것이었다.

오늘 단기 4279년 12월 12일 12시 (3개의 원만하다는 12의 수를 기억에 걸고) 한국의 유사 이래 처음으로 되어진다고 할 만한 이 입법의원이 성립되어 개원식을 함에 있어서는 그 의의가 막대한 것이요 작년 8월 15일 이래 부분적으로라도 해방을 얻어 우리의 3000만 민족으로서는 전적으로 기쁜 감상을 가지면서도 앞으로 많은 기대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의가 깊고 그 사명이 중대한 이 조선과도입법의원의 엄숙한 개막식에 작일 본원준비회의의 결과로 본인이 의장으로 피선되어 금일부터 그 사명을 맡고 사회하게 된 데 있어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말하면 만만불감당이라 하겠고 본인 자신으로서는 의원의 일석으로도 채우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내외정세와 환경이라는 것보다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출석하기를 권하면서 자신은 불참가하기도 어려워서 각 방면 동지의 의견과 심지어 객관적 정세에도 응하지 아니할 수 없으며 따라 의장의 자리에까지 앉게 되어 부득이 제 의원의 의사에 복종하여 미력을 공하려 한다.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이 입법의원은 명실상부한 과도입법의원인데도 초보적 과도입법의원인 것을 본원의 현재 의원으로서는 명확히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초보적 입법의원의 사명은 최속한 기간 내에 남북이 통일한 총선거식으로 피선된 확대된 입법의원을 산출하는 제2계단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고 그 확대입법의원은 미소공동위원회의 단속개회가 되면 더욱 좋거니와 혹 어떠한 변환으로 급히 속개되지 아니 하더라도 최속한 기간 내에 우리의 손으로 우리를 위한 우리의 임시정부를 산출하여 안으로는 완전자주독립의 국가를 건설해야 하며 우리의 주인인 한국 3천만 민중의 복리를 도모할 것이며 밖으로는 국제적 지위를 획득하여 동아 및 전 세계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모든 민주주의연합국과 협력 매진할 것이다.

본의원의 성능에 있어서 현금 정세의 관계로 재한미주둔사령장관 지배하에 있는 미군정청 제118호 법령으로 시설되는 것이지마는 이 의원이 결코 미주둔군사령장관이나 미군정의 자문기관으로 행사할 것은 아니며 또 미군정을 연장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말하자면 남에 있는 미군정이나 북에 있는 어떠한 군정이나 그 존재를 단축시키려는 것이다. 즉 말하자면 본원에서 여러 가지 급속히 법안으로 제성할 것 중에는 지방으로부터 국민자치제를 실행케 할 것이요 군정청의 현재와 장래의 인사문제에 대하여 검토 제안한다는 것보다도 일절 행정권을 한인으로서 이양받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는 제일 지급한 우리의 민생문제에 있어서도 상당한 조처를 시키는데 노력할 것이요, 우리는 우리의 땅에서 완전한 자격을 얻어 우리의 일은 우리의 손으로 하며 우리에게 대한 법령제정도 우리의 손으로 하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로서 자정하는데 매진할 것이다. (입의 속기록 제2호, 1946년 12월 12일)

인용한 신문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바로 가기 :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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