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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미국을 위한 유엔
[해방일기] 1947년 9월 19일
10월 24일 '유엔데이'를 국경일로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1945년 51개국의 헌장 채택으로 유엔이 성립된 날짜를 국경일로 모신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들었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유엔군이 우리를 공산 침략으로부터 지켜줬다고 해서 유엔을 하늘처럼 받드
김기협 역사학자
2012.09.19 09:39:00
한반도의 운명, 드디어 유엔으로!
[해방일기] 1947년 9월 17일
8월 이래의 좌익 검거가 저인망식으로 계속되고 있다. 언론계와 교육계에서 시작된 좌익 색출 작업이 모든 공직으로 확대되어 갔다. 검거가 시작될 때는 이것을 8·15 기념행사에 대한 '예비 검속'으로 사람들이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달 이상 대규모 검거가 계속되면
2012.09.17 08:35:00
갈림길에 선 이승만과 김구
[해방일기] 1947년 9월 7일
1947년 초 반탁 운동을 재개할 때부터 김구-한독당-임정 세력은 '임정 추대'를 집요하게 추진했다. 상해-중경 임시정부가 건국 과정의 임시 정부 노릇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미소공위를 통해 새로 '과도 임시 정부'를 만들도록 한 모스크바 결정에 반
2012.09.07 07:49:00
벼랑 끝에 선 한반도, 희망은 없는가?
[해방일기] 1947년 9월 5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미소공위는 이제 길이 막혀버린 것 같습니다. 1946년 5월 무기정회 때는 진행이 늦어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지, 언제고 다시 열릴 것을 기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담이 중단될 경우 다시 열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미국이 조선 문제를 유엔에 상정하겠다고
2012.09.05 10:55:00
"조선 사람이 왜 '빨갱이'를 좋아하는지 아시오?"
[해방일기] 1947년 9월 3일
트루먼 대통령 특사 앨버트 웨드마이어 중장(1897~1987년)이 9월 3일 조선을 떠났다. 중국과 조선 상황을 점검하는 임무를 띤 웨드마이어 특사는 7월 22일 중국에 도착해 한 달간 머무른 다음 8월 26일 조선에 들어왔다가 8일 만에 떠난 것이다. 1944년 10월부터 2년 가까이
2012.09.03 07:50:00
美, 소련 따돌리고 분단 정부 수립 발동 걸다
[해방일기] 1947년 8월 31일
미소공위 소련 수석 대표 스티코프가 8월 28일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에는 8월 26일 회담에서 내놓았던 제안 내용이 첨부되어 있었다. 우선 성명서 본문부터 살펴본다. 소 측 대표는 본 성명서로 미소공위 업무 진행에 관하여 사회계에 보도하려 한다. 주지하는 바와
2012.08.31 09:48:00
독도에 목맨 MB, 중국에 손 내밀어라!
[해방일기] 1947년 8월 29일
해방 후 독도 문제 전개의 출발점을 면밀히 살핀 정병준의 <독도 1947>(돌베개 펴냄)이 연전에 나왔다. 민족 국가 수립이란 거대한 과제가 혼란과 격변을 겪고 있던 1947년에 독도 문제는 사회의 큰 관심을 끌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중요한 국가적 과
2012.08.29 07:48:00
이승만과 김구, 어디서 갈라섰나?
[해방일기] 1947년 8월 26일
8월 25일 이승만이 민족대표자대회(민대) 회의에서 이런 요지의 발언을 했다. "현하 한인들은 대개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기대하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이를 반대하고 있으며 또 우익 진영 내에서도 미군과 협조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한다 하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우리
2012.08.27 08:05:00
미국의 승부수, 총선거
[해방일기] 1947년 8월 24일
8월 20일 미소공위 회담에서 미국 측은 마셜 미 국무장관이 몰로토프 소 외상에게 8월 12일자 서한에서 제안한 보고서 공동 작성을 촉구했다. 그러나 소련 측은 몰로토프 외상으로부터 보고서 제출에 관한 아무런 지시가 없었다며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의는 성과 없이 끝
2012.08.24 15:13:00
소련 : "회담을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해방일기] 1947년 8월 22일
1947년 봄 미소공위 재개를 위한 마셜과 몰로토프 사이의 서한 왕래에 관해 4월 11일자 일기에서 설명했다. 마셜 미 국무장관이 소-영-중 3국 외상에게 4월 8일 보낸 편지에는 5개항이 담겨 있었는데, 미소공위 정돈 상태의 책임을 소련군 사령관에게 돌린 제1항과 남조선에
2012.08.22 10:5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