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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살던 일본인의 사망률이 높은 까닭은?
[일제 강점기 의료의 풍경·10] 재한 일본인의 질병
평균 수명(출생 시 기대여명), 영아 사망률, 연령별 사망률(age-specific death rate), 전염병 발병률 등 중요한 건강 지표들로 볼 때, 오늘날 한국인의 건강 수준은 세계에서 톱클래스이다. (하지만 서울에서만도 지역과 계급 계층에 따라 건강 수준에 큰 차이가 나타나는
황상익 서울대학교 교수
2011.06.02 09:40:00
식민지의 일본인, 가장 많이 앓았던 병은?
[일제 강점기 의료의 풍경·9] 식민지의 질병
조선 시대 말, 대한제국기 한국인들의 전반적인 건강과 질병 상태를 말해 주는 구체적이고 상세한 기록이나 통계 자료는 (발견된 것이) 없다. 미국인 선교 의사 알렌과 헤론이 작성한 <조선 정부 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1886년), 일본인 군의관 고이케(小池正直)가 펴
2011.05.30 07:50:00
국립병원, 일제의 유린을 받기 시작하다
[일제 강점기 의료의 풍경·8] 광제원 ⑥
광제원은 기본적으로 빈민 환자들을 국고(國庫)로 진료하는 병원이었다. 1만6414명을 진료했던 1900년도의 병원 수입(藥品放賣收入價)은 439원(元)62전(錢)2리(里)로, 그 해 병원 지출 8424원(병원 이전료 3200원은 별도 지출)의 5%에 불과했다. 오늘날에는 공사립을 막론하
2011.05.27 10:19:00
국립병원에서 양·한방 공동 진료를 했다고?
[일제 강점기 의료의 풍경·7] 광제원 ⑤
광제원(이 글에서는 개칭 이전까지 포괄해서 사용한다)의 환자 진료 실적은 당시 신문 보도를 통해 일부나마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황성신문>에 보도된 사항들을 정리하였다. (다른 신문들까지 조사하면 좀 더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도 병원에
2011.05.23 07:55:00
100년 전 국립병원 의사들은 누구였나?
[일제 강점기 의료의 풍경·6] 광제원 ④
<병원 관제>가 반포되고 이틀 뒤인 1899년 4월 26일 병원 직원에 대한 인사 조치가 있었다. 원장 겸 기사는 위생국장 최훈주(崔勳柱)가 겸임토록 했으며, 의사로는 김교각(金敎珏), 이만식(李晚植), 이응원(李應遠), 임준상(林浚相), 이인직(李寅稙), 김성배(金
2011.05.19 10:18:00
의사 월급이 판사 월급의 5분의 1! 그 때는?
[일제 강점기 의료의 풍경·5] 광제원 ③
1899년 4월 내부 소속으로 설립된 "병원"은 그 뒤 몇 차례의 변천을 거쳤다. 우선 병원의 명칭이 1년 2개월 뒤 "광제원(廣濟院)"으로 바뀌었다. 1900년 6월 30일에 반포된 칙령 제24호 <병원 관제 중 개정>에서는 보시원(普施院)으로 개칭하였다가 7월 9일 광제원으로
2011.05.16 07:55:00
대한제국 국립병원의 무상 진료 대상은?
[일제 강점기 의료의 풍경·4] 병원 세칙
<병원 관제> 제3조 "병원의 세칙은 내부대신이 정할 사"에 따라 1899년 5월 8일 내부령 제16호로 <병원 세칙(病院細則)>이 마련되었다. 병원의 운영 원리를 담은 이 세칙을 상세히 살펴보자. (실제와 차이나는 점이 없지 않지만 병원은 대체로 이 세칙에 따라 운
2011.05.13 09:02:00
"인민의 질병을 낫게 할 국립병원을 만들자"
[일제 강점기 의료의 풍경·3] 병원 관제
1894년 9월 제중원의 운영권을 에비슨에게 이관함으로써 일반 국민들의 질병을 구료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국립병원은 사실상 없어졌다. 바로 이듬해에 국립병원을 다시 설치하는 논의가 있었고 1896년 초에는 병원 설립비(4555원)와 운영비(9798원)를 예산에 계상하기도 했지
2011.05.09 07:41:00
최초의 근대 의사 김익남, 그의 진짜 정체는?
[일제 강점기 의료의 풍경·2] 김익남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의사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의과 대학 격인 "의학교"의 교관(교수)을 지내며 역시 처음으로 근대식 의사 36명을 배출한 사람은 김익남(金益南, 1870년 9월 6일~1937년 4월 5일)이다.
2011.05.05 11:58:00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한국인
[일제 강점기 의료의 풍경·1] 대한제국의 멸망
1910년 8월 29일, "일한합병조약(日韓合倂條約)"이 공포됨으로써 대한제국과 이씨(李氏) 왕가(王家)는 운명을 다했다. 그 조약은 1주일 전인 8월 22일 일본제국을 대표한 통감 데라우치(寺內正毅)와 대한제국을 대표한 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 사이에 체결된 것이었다.
2011.05.02 07:5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