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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살던 일본인의 사망률이 높은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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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살던 일본인의 사망률이 높은 까닭은?

[일제 강점기 의료의 풍경·10] 재한 일본인의 질병

평균 수명(출생 시 기대여명), 영아 사망률, 연령별 사망률(age-specific death rate), 전염병 발병률 등 중요한 건강 지표들로 볼 때, 오늘날 한국인의 건강 수준은 세계에서 톱클래스이다. (하지만 서울에서만도 지역과 계급 계층에 따라 건강 수준에 큰 차이가 나타나는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점은 여전히 많다.)

건강 지표와 수준만으로 어떤 사회와 국가의 발전과 성숙 정도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이 중요한 비교 및 평가 기준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인은 언제부터 건강 수준이 개선되었으며, 그렇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100년 전 한국인의 건강 상태는 어땠을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인의 건강 수준은 개선되었을까, 악화되었을까? 이 연재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려는 것들이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인과 대만인의 건강 수준 역시 오늘날 세계 최선두급이다. 그러면 일본인과 대만인의 건강 개선은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가? 이 문제도 이 연재에서 함께 살펴보려 한다. 그것은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한 국가, 한 민족이라는 틀에 갇혀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변화를 비교론적 관점에서 고찰할 때 더욱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해답을 구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회(제9회)에 이어 1904년~1906년 사이 재한 일본인들의 사망에 관해 알아보자. 우선 전체 환자에 대한 사망자 비율은 1904년 1.3%(사망자 673명/환자 5만1775명), 1905년 1.8%(1388명/7만9299명), 1906년 1.3%(1754명/13만9608명)이었다.

질병별로는 호흡기병(전체 사인의 20~24%), 전염병(14~23%), 소화기병(16~19%), 신경계병(14~18%), 발육영양병(14~15%)이 당시 재한 일본인들의 주요한 사망 원인이었다. 100년 전에는 전염병에 의한 사망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것이라는 "상식"과는 다른 양상이다. (전염병이 다른 질병으로 오진되었을 경우도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일본 당국이 전염병에 대해 특별히 주의하여 취급했던 점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발병자 중 사망자의 비율을 뜻하는 치명률(致命率, case-fatality rate)은 발육영양병(7~15%), 순환기병(5~7%), 전염병(3~6%) 순으로 높았다.

▲ <제1차 통감부 통계연보>(1907년) "제57표. 사망자 종류별". 1904년 발육영양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전염병 사망자 수와 똑같은데 기록상 오류로 여겨진다. ⓒ프레시안

<제1차 통감부 통계 연보> 20~21쪽의 "제13표. 현주 본방인(本邦人, 일본인) 출생 및 사망"에 의하면, 1906년도 재한 일본인 총 사망자는 1993명으로 질병에 의한(병원 이용) 사망자 수와는 239명 차이가 난다. 이 1993명을 기준으로 한다면 1906년도 재한 일본인의 조사망률(粗死亡率, crude death rate, 그해 인구 중 사망자 비율)은 인구 1000명당 24.4명(사망자 1993명/인구 8만1754명)이었다. (1904년과 1905년의 경우는, 재한 일본인의 조사망률을 계산할 데이터가 없다.)

한편, <일본제국 통계전서>(1928년판)에 의하면 1906년 일본의 총인구는 4816만4761명, 총 사망자는 95만5256명, 조사망률은 인구 1000명당 19.8명이었다. 요컨대 재한 일본인의 조사망률이 본국보다 4.6명 높았다. 연령별 인구 구성과 연령별 사망률을 알지 못하는 이상 실제로 재한 일본인의 사망 위험이 본국보다 높았는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조사망률이 높다는 사실은 일제 당국자와 재한 일본인들에게 위협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통감부가 대한제국 정부를 강박하여 대한의원을 서둘러 만든 데에는 이러한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제1차 통감부 통계 연보>(1907년), <일본제국 통계전서>(1928년판), <대만총독부 제10 통계서>(1906년). ⓒ프레시안

위 표에 보이듯이 일본이 10년 동안 식민지로 통치한 대만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조사망률은 일본 본토와 거의 비슷한 데 반해, 아직 반식민지(보호국)인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조사망률은 본국보다 상당히 높았다. 또한 대만에서는 대만인의 조사망률이 일본인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이 당시까지도 연간 한국인 총 사망자는 파악되지 않았으며, 총인구도 상당히 부정확했다.

1899년 이후 일본에서 사용하는 질병 분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에(1899년에는 신구 방식을 병용했다) 재한 일본인의 질병별 사망 패턴과 직접 비교할 같은 연도의 일본 본국 자료는 구할 수 없다. 그에 따라 이 글에서는 부득이 재한 일본인에 관한 1904~1906년 자료와 일본 본국의 1897~1899년 자료를 비교하는 방법을 취했다(표 10-3).

▲ <제1차 통감부 통계 연보>(1907년) 및 <일본제국 통계전서>(1902년판). ⓒ프레시안

이 표에서 보듯이, 한국 거주 일본인과 일본 내 일본인의 사인으로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전염병(각각 17.6%와 7.7%)이었다. 그 밖의 차이점은 재일 일본인에서 신경계병과 소화기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고 나머지는 대동소이했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앞으로 계속 살펴보도록 하자.

▲ <제1차 통감부 통계연보>(1907년). ⓒ프레시안

▲ <제1차 통감부 통계 연보>(1907년) 및 <일본제국 통계전서>(1902년판).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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