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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질병을 낫게 할 국립병원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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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인민의 질병을 낫게 할 국립병원을 만들자"

[일제 강점기 의료의 풍경·3] 병원 관제

1894년 9월 제중원의 운영권을 에비슨에게 이관함으로써 일반 국민들의 질병을 구료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국립병원은 사실상 없어졌다.

바로 이듬해에 국립병원을 다시 설치하는 논의가 있었고 1896년 초에는 병원 설립비(4555원)와 운영비(9798원)를 예산에 계상하기도 했지만, 아관파천 등 정치적 혼란으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이 을미개혁기에 논의되었던 병원은 의학교 부속 기관으로 설치하는 것이었다.

▲ 칙령 제14호 <병원 관제>. 맨 왼쪽 윗부분에 국왕 고종의 친필 서명이 있다. ⓒ프레시안

그로부터 3년 남짓 지난 1899년 4월 24일 대한제국 정부는 칙령(勅令) 제14호로 <병원 관제(病院官制)>를 반포했다. <의학교 관제>(칙령 제9호)가 반포되고 나서 정확히 한 달 뒤의 일이었다. '근대 의료의 풍경'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이 병원에 대해 몇 차례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선 이번 회에서는 <병원 관제>에 대해 꼼꼼히 짚어보자.

제1조 병원을 한성 내에 설립하야 인민의 질병을 구추(救瘳, 낫게 함)할 사

이 새로운 국립병원의 정식 명칭은 아무런 수식어 없이 그저 "병원"이었다. "의학교"와 마찬가지 방식의 호칭이었다. 1년 3개월 뒤 광제원(廣濟院)으로 개칭할 때까지는 "병원", 또는 관할 부서가 내부(內部)라는 점에서 "내부 병원"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병원의 역할은 일반 "인민"의 질병을 구추하는 것이었으며, 병원은 수도인 한성에 두었다.

제2조 병원은 내부의 직할이니 경비는 공관(公款)으로 지판(支辦)할 사

병원은 내부(행정자치부) 직할이며, 운영비를 정부 예산으로 지출하는 국립병원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의학 교육을 담당하는 의학교(학부 소속)와 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병원을 분리한 것이었다. 조선에서는 전통적으로 의학 교육과 환자 진료를 같은 기관이 담당했다. 전의감(典醫監)과 혜민서(惠民署)가 그런 성격의 기관이었으며, 1885년에 설립된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 제중원도 마찬가지였다.

을미개혁기의 논의에서도 병원을 의학교의 부속 기관으로 설치할 계획이었다. <병원 관제> 제정 과정에서 참고했을 일본도 의학 교육 기관과 병원이 분리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1899년의 <관제>에서 의학교와 병원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다. 그렇게 된 연유를 알 수 없지만 학부와 내부 사이의 힘겨루기와 타협의 결과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3조 병원의 세칙은 내부대신이 정할 사
제4조 병원의 좌개(左開)한 직원을 치할 사
병원장 1인 주임(奏任) 기사 1인 주임
의사 15인 이하 판임(判任) 대방의 2원(員) 종두의 10원 외과의 1원 소아의 1원 침의 1원
제약사 1인 판임 서기 1인 판임

병원의 정규 직원은 주임 2명, 판임 17명 등 최대 19명이었으며, 서기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의료직이었다. 이것은 정규직 의사 1명과 학도(조수격) 4명을 두었던 제중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규모이다. 그리고 의사 15명 가운데 종두 의사가 3분의 2인 10명이나 되었다. 이를 통해 당시 두창(痘瘡)이 얼마나 큰 보건의료 문제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으며, 이 병원에서 종두 의사의 발언권이 상당히 강했을 것이라는 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밖의 의사로는 대방의(大方醫, 성인 환자를 진료하는 내과의사), 외과의사, 소아과의사, 침의(針醫)를 두었으며, 이 가운데 순수한 의미의 한의사는 침의 1명밖에 없었다. 병원/광제원이 한방 병원이었다고 하는 주장이 적지 않은데 적어도 이 <관제>로는 근대 의학(양방) 위주의 병원이었다. (자세한 실상에 대해서는 뒤에 살펴보도록 한다.)

제5조 병원장은 의학과 화약(化藥)에 숙련한 인원으로 임명하야 일체 원무를 장리하며 소속직원을 감독할 사
제6조 기사난 의사 제약사의 업무 급(及) 약품매약을 관사(管査)할 사


병원의 책임자인 병원장은 단순히 관리직이 아니라 "의학과 화약(화학, 약학)에 숙련한 사람" 중에서 임명토록 했다. 외아문 독판이나 협판이 제중원 원장을 겸한 것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이다. 특이한 것은 병원장 이외에 기사(技師)를 두어 "의사, 제약사의 업무와 약품, 매약을 관리, 감독"토록 한 것인데, 그렇게 한 연유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다.

제7조 의사는 의학 졸업한 인원으로 선용(選用)하야 인민의 질병을 진찰히며 소아을 종두하며 각종 수축(獸畜)의 병독(病毒)를 검사할 사

의사의 임무는 질병 진료와 종두 시술 외에 가축 병의 검사까지 하도록 규정되었다. 수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그 역할까지 하도록 한 것이었다. 또한 이 <관제>에는 의학을 졸업한 사람 가운데에서 의사를 임명하도록 했다. 여기에서 "의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의학교"와 "종두의 양성소" 졸업자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신식(근대식) 의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병원을 운영하겠다는 방침인 셈이다. 종두 의사들이 의사직을 선점했기 때문인지 의학교 졸업자들은 아무도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는데 병원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다.

제8조 제약사는 각양 약료을 검사하며 학도 기인(幾人)을 치(置)하야 제약법과 화약법(化藥法)을 학습케 할 사
제9조 서기는 상관의 명을 승(承)하야 서무 회계를 종사할 사


병원은 기본적으로 진료만을 담당하는 기관이었지만, 제약 및 약학 교육은 하도록 했다. 별도로 약학교를 설립하기 어려운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제10조 사세(事勢)를 양도(量度)하야 현금 간은 병원장과 기사를 위생국장이 겸임하도 득하고 사무가 확장하면 기사는 외국인을 고용함도 득할 사

이 조항대로 실제 병원장과 기사를 위생국장이 겸임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만큼 고급 의료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 기사를 고용할 수 있다는 규정은 훗날 일제가 병원을 장악하는 통로가 되었다. (일본군 군의관을 지낸 사사키 시호지(佐佐木四方志)가 1906년 2월 9일 광제원 의장(醫長)이 되어 광제원과 한국 의료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조항이 없었다 해도 일제의 침탈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제11조 각 지방에 특별이 검사할 사건이 유(有)하면 의학 졸업한 인으로 임시위원을 파견할 사
제12조 임시위원의 여비난 원근과 일자를 계료(計料)하야 내국여비 4등 규정에 의하야 지급할 사


▲ 1903년 4월 25일 탁지부 대신 김성근(金聲根)이 의정부 의정 이근명(李根命)에게 보낸 청의서. 지난해(1902년) 가을 광제원에서 의학교 졸업인을 임시위원으로 임명하고 여러 지방에 파견하여 구제 활동을 하는 데 사용했던 여비와 약값 2373원을 지급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때 의학교 제1회 졸업생들이 대거 이 사업에 참여했다. 광제원 임시위원이 단순히 명목뿐인 것은 아니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이다. ⓒ프레시안
앞에서 언급했듯이 의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병원의 정식 의사로 임명된 경우는 없었다. 대신 많은 수가 병원(광제원) 임시위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했으며, 위의 조항에 따라 출장비도 지급받았다.

제13조 지방 정황에 의하야 병원을 각 지방에 치함을 득할 사
부칙 제14조 본령은 반포일로부터 시행할 사
광무 3년 4월 24일 의정부 참정 신기선(申箕善)

대한제국 정부는 수도 한성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비슷한 성격의 병원을 설치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지방 정황에 의하야 의학교를 지방에도 치함을 득함이라"는 <의학교 관제>의 제12조와 짝을 이루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계획은 달성되지 못했고, 한성의 병원도 1906년 초부터 일제의 침탈을 받기 시작하여 1907년에는 일제가 주도하여 만든 대한의원으로 통폐합되는 비운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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