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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의 규칙은 누가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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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의 규칙은 누가 만들었나?

[근대 의료의 풍경·9] 제중원 규칙

지난회(제8회)에서 제중원 설립을 위한 외아문의 준비 작업은 일단 1885년 4월 3일로 마무리되었으며, 그 준비 과정에서 병원 규칙이 마련되었다고 했다. 이번 회에서는 제중원의 운영과 성격을 잘 보여주는 <제중원 규칙>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아쉽게도 <제중원 규칙>의 한문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단지 알렌 일기에 영문 번역본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영문본마저 전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제중원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았을 테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기의 4월 3일자에는 구체적 조항에 앞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오늘 외아문에서 나에게 다음의 규칙을 전해왔다. 병원 운영을 규정하는 이 규칙은 테시카가 작성한 것으로 그의 능력을 보여준다.

▲ 1885년 4월 3일자 알렌 일기. ⓒ프레시안
알렌의 이 기록에는 규칙의 명칭이 없다. 아직 병원의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렌이 "광혜원(廣惠院)"이라는 병원 이름을 일본공사관 의사 카이로세 도시코(海瀨敏行)에게 전해들은 것은 국왕의 재가 바로 전날인 4월 13일이다. 따라서 그 규칙의 명칭은 4월 3일에서 13일 사이에 결정되었을 것이다. 이 규칙의 제정에 카이로세(알렌은 테시카라고 부르고 있다)가 관여했는데, 조선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 "신식 의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카이로세는 민영익의 치료에도 참여한 바 있으며, 그에 앞서 <한성순보>(1884년 3월 18일자)에 명의(名醫)로 소개된 적도 있었다(제4회 기사 참조). "이 규칙은 테시카의 능력을 보여 준다"라는 언급으로 보아 알렌은 <규칙>에 대해 만족스러워 했던 것 같다.

4월 14일 국왕의 재가로 병원이 정식으로 설립되면서 이 규칙은 <광혜원 규칙>으로 불렸고, 4월 26일 제중원으로 개칭되면서 <제중원 규칙>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별한 명칭이 없었을 수도 있다. 제5회에서 언급한 대로 1891년 5월 "빈튼 파동"시 외아문 독판 민종묵이 보낸 공문에는 단지 "장(章)"으로, 미국 공사 허드의 공문에는 "regulations of the Hospital"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제중원 규칙>으로 부르기로 하겠다. 이제 <제중원 규칙>의 각 조항을 하나하나씩 살펴보자.

제1조. 병원 업무를 위해 조선인 관리 중에서 당상(堂上)을 임명한다. (Commissioner shall be appointed for the hospital from the Corean Officials.)

▲ 묄렌도르프. 제중원 설립 과정에서부터 사실상 배제되었으며, <제중원 규칙>에 의해서 제중원에 관여할 근거를 완전히 상실했을 것이다. ⓒ프레시안
병원의 최고 책임자(원장)에 대한 조항이다. "조선인 관리 중에서"라는 구절은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것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제중원 당상은 외아문의 독판이나 협판이 겸했는데, 당시 협판이던 묄렌도르프를 배제할 목적으로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알렌이 "테시카의 능력"이라고 평가했던 것이 특히 이 조항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이 조항에 따라 알렌에게 눈엣가시인 묄렌도르프는 제중원의 당상이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2조. 주사(主事) 2명을 임명하며, 그 가운데 1명은 병원 운영을 위해 상근한다. (There shall be two officers appointed one of whom shall be at the hospital continually to attend to its running.)

상근 주사로 규정된 직책은 병원 운영의 실무 책임자로 오늘날의 행정부원장이나 행정실장쯤으로 생각된다. 나머지 1명은 비상근으로 외아문 본청직과 겸직이었을 것이다.

제3조. 학도(學徒) 4명을 임명한다. (Four students shall be appointed.)

▲ 일성록 1886년 5월 13일자(음력) 기사. ⓒ프레시안
영문의 "student"는 흔히 생각하는 학생이라기보다는 병원의 한 가지 직책을 뜻하는 것으로, 조수(助手) 직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1886년 3월 29일부터 운영한 "제중원 학당"에서 공부한 생도(生徒)와는 구별된다. 1886년 6월 제중원 직원들을 포상한 기록(濟衆院別單施賞有差. 일성록 1886년 6월 14일[음력 5월 13일]자)에 "김의환을 학도로 승진시키고 이의식을 주사로 승진시킨다(金宜煥陞敍學徒李宜植主事陞差)"라는 언급이 있는데 여기의 "학도"가 이 조항의 "student"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학도는 언급 순서상 이의식이 임명받은 주사직보다 상위직으로 추정된다. 제중원의 직원들을 주사라고 통칭했지만 여러 직급이 있었으며, 학도는 <제중원 규칙>에 제3항으로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제법 중요한 직책으로 생각한다.

제4조. 학도들은 의사를 보조한다. 의사의 지도 아래 약을 조제·투약하고 외국인 의사들이 사용하는 기구의 사용법을 익힌다. 학도들은 환자를 간호하며 의사가 지시하는 것을 수행한다. (These students shall help the Dr. Shall put up and administer medicines under the Dr's supervision and learn to use the machines which foreign doctors use. They are to nurse and do what the Dr. tells them.)

학도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조제, 투약, 간호 등 조수 업무를 담당했다. 병원 설립 제안의 "의사를 보조하는 간사인(爲醫師幹事人), 병자를 돌보는 간사인(爲病者幹事人)"에 해당한다. 알렌의 기록에 조수가 마취를 했다는 등의 언급이 있으며 제중원에서 일한 다른 외국인 의사들도 약을 조제하는 사람에 대해서 언급했다.

24시간 내내 (입원) 환자들을 가료, 간호한 것은 학도들의 몫으로 생각된다. 병원에서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도 김의환을 제외하고는 이름이 알려진 바가 없는 것으로 보아 학도 역시 주사로 통칭했을 가능성이 있다. 1885년 여름부터 제중원에 잠시 근무했던 기생 의녀들이 이 범주에 속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제5조. 병원 기록과 회계를 담당하는 서기(書記) 2명을 임명한다. 이들은 1년에 두 차례 당상에게 보고해야 한다. (Two secretaries shall be appointed to keep the records of the hospital and the expense accounts. Twice a year they must report to the Commissioner.)

서기라는 직책에 대한 언급 역시 다른 기록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들도 주사로 통칭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 정부 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 말미에 "Treasurer"라고 언급된 것이 이 직책일 것이다. 규칙에 규정된 순서로 보아 학도 아래 직급으로 생각된다. 대체로 제중원에서 근무한 주사의 수가 4~5명 정도 되는데 제2조의 주사뿐만 아니라 다른 직급을 망라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규정상으로는 제2조부터 제5조까지의 직원은 모두 8명이다.

제6조. 병원 내에 근무하는 인원 2명을 둔다. 이들은 병원 물품들을 청소, 정돈하며 의사의 도구들을 관리한다.
제7조. 문지기(수위) 2명을 둔다. 1명은 병원 바깥문의 출입을 관장하며 진료권을 발급한다. 다른 1명은 병원 안쪽문의 출입을 관장하며 진료권을 접수한다.
제8조 고원(雇員, 하인) 5명을 둔다. 2명은 취사를 하고, 2명은 정원과 건물의 청소와 잔심부름을 하며, 나머지 1명은 물을 긷는다.


제6조 이하는 중요한 내용이 없어 영문은 생략했다. 제6조부터 제8조까지의 인력은 관리(官吏)가 아니라 단순 고용인으로 생각한다. 제2조부터 제8조까지를 모두 합하면 17명이다.

제9조 의사를 환자의 집으로 청하는 경우 의사에게 왕진료로 5000전(錢)을 지불해야 한다.
제10조 입원 환자는 네 등급으로 구분한다.
개인 전용 병실을 사용하는 1등급은 입원비가 하루에 1000전.
1, 2인용 병실을 사용하는 2등급은 입원비가 하루에 500전.
3인 이상 병실을 사용하는 3등급은 입원비가 하루에 300전.
빈민용 일반 병실을 사용하는 경우 입원비는 무료.
제11조 모든 진료비는 회복된 뒤에 수납한다.
제12조 누구든지 병원을 이용하는 사람은 처신이 단정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왕진료 5000전은 50냥(兩)으로 약 3달러에 해당하여 당시로는 매우 큰돈이다. 문구로 보아 왕진료는 의사 개인의 수입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진료비는 제11조에 규정된 것과 달리 그때그때 지불한 것으로 보인다.

이 규칙에 의해 제중원은 당상의 책임 아래 상근 주사 이하 20명 가까운 직원들이 각자의 업무를 맡아보도록 규정되어 있다. 병원의 (외래) 진료 시간은 규칙에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외아문의 4월 3일자 게시문처럼 대체로 매일 미시(未時)부터 신시(申時)까지 오후 한나절 동안 진료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왕진료와 입원료를 규정한 것은 조선 사회로는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이지만, 나머지 조항은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런데 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의사에 대한 조항이 없는 것이 이 <제중원 규칙>의 특징이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외국인 의사가 제중원에 고용된 직원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외국인 의사가 제중원의 정식 직원이 된 1887년 이후에는 당연히 의사에 대한 조항이 <제중원 규칙>에 포함되었거나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관련 자료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제중원 규칙>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언급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공립의원 규칙(公立醫院規則)'에 관한 것이다. '공립의원 규칙'은 <제중원 규칙>의 초안 격으로 제중원 설립을 준비 중이던 1885년 2월(음력)에 작성되었으며, 외아문의 일지인 팔도사도삼항구일기(八道四都三港口日記)에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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