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년 04월 20일 20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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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을 위하여
[설악 무산 조오현 스님 한글 선시(禪詩)] 이·렇·게·읽·었·다
적멸을 위하여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김제현 |2013년 고산문학대상 시조부문 후보작으로 추천된 작품은 여섯 분의 시조집 6권. 대체로 현실에 대한 인식상황과 다양한 문제의식을 사회적 가치와 결속시켜 담아낸 현대성 짙은 작품과 인간의 보편적 사랑을
설악무산(雪嶽霧山) 조오현
허수아비
허수아비 새떼가 날아가도 손 흔들어 주고 사람이 지나가도 손 흔들어 주고 남의 논 일을 하면서 웃고 있는 허수아비 풍년이 드는 해나 흉년이 드는 해나 -논두렁 밟고 서면- 내 것이거나 남의 것이거나 -가을 들 바라보면-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나도 웃는 허수아비 사람들은 날더러 허수아비라 말하지만 저 멀리 바라보고 두 팔 쫙 벌리면 모든 것 하늘까지도 한 발
절간 청개구리
어느 날 아침 게으른 세수를 하고 대야의 물을 버리기 위해 담장가로 갔더니 때마침 풀섶에 앉았던 청개구리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 담장 높이만큼이나 폴짝 뛰어오르더니 거기 담쟁이덩쿨에 살푼 앉는가 했더니 어느 사이 미끄러지듯 잎 뒤에 바짝 엎드려 숨을 할딱거리는 것을 보고 그놈 참 신기하다 참 신기하다 감탄을 연거푸 했지만 그놈 청개구리를 제題하여 시조 한
죄와 벌
우리 절 밭두렁에 벼락 맞은 대추나무 무슨 죄가 많았을까 벼락 맞을 놈은 난데 오늘도 이런 생각에 하루해를 보냅니다 김재홍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잘 되면 다 내 덕이고, 못되면 다 네 탓. 남의 탓이라고 떠밀지 않는가. 그만큼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결여한 채 막무가내로 ‘나’만을 고집하고 우기면서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달마 5
매일 쓰다듬어도 수염은 자라지 않고 하늘은 너무 많아 염색을 하고 있네 한 소식 달빛을 잡은 손발톱은 다 물러 빠지고 김용희 |중국 불교의 세속성을 타파하기 위해 서쪽에서 나타난 달마는 수염이 없다. 수염이 자라지 않는다. 달마는 왜 수염이 자라지 않는가. 하늘은 왜 맑아 염색을 하고 있는가. 손발톱은 다 물러 빠질 만큼 수행의 길은 끝이 없다는 것인가.
입전수수(入廛垂手)
생선 비린내가 좋아 견대 차고 나온 저자 장가들어 본처는 버리고 소실을 얻어 살아볼까 나막신 그 나막신 하나 남 주고도 부자라네 일금 삼백 원에 마누라를 팔아먹고 일금 삼백 원에 두 눈까지 빼 팔고 해 돋는 보리밭머리 밥 얻으러 가는 문둥이어, 진문둥이어. 김민서 |휠라이트(P. Wheelwright)나 에이브럼즈(M. H Abrams)가 말하는 개인적 상
아득한 성자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You could live a thousand years,/Holy man,/Fardista
2007. 서울의 밤
울지 못하는 나무 울지 못하는 새 앉아 있는 그림 한 장 아니면 얼어붙던 밤섬 그것도 아니라 하면 울음큰새 그 재채기 김미정 |일상이 곧 선이며 삶의 궁극에는 깨달음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현장이 선의 알갱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인식의 주체인 오온은 그 속성이 공(空)이다. 오온은 물질적 요소인 색과 정신적인 요소인 수상행식이 하나의 관계망 속에서 화합하
이 내 몸
남산 위에 올라가 지는 해 바라보았더니 서울은 검붉은 물거품이 부걱부걱거리는 늪 이 내 몸 그 늪의 개구리밥 한 잎에 붙은 좀거머리더라 권기호 |가장 하잘 것 없는 곳까지 내려가 자신을 지우고 또 지운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경계를 허문 다음 그 허문 경계까지 또 지운다. 일찍이 작품 「심우도」가 보여준 어법이 그렇다. 마침내 찾은 소와 함께 자신도 지우고
스님과 대장장이
스님과 대장장이 하루는 천은사 가옹스님이 우거(寓居)에 들러, “내가 젊었을 때 전라도 땅 고창읍내 쇠전거리에서 탁발을 하다가 세월을 담금질하는 한 늙은 대장장이를 만난 일이 있었어. 그때 ‘돈벌이가 좀 되십니까?’하고 물었는데 그 늙은 대장장이는 사람을 한 번 치어다보지도 않고 ‘어제는 모인(某人)이 와서 연장을 벼리어 갔고 오늘은 대정(大釘)을 몇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