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다듬어도 수염은 자라지 않고
하늘은 너무 많아 염색을 하고 있네
한 소식 달빛을 잡은 손발톱은 다 물러 빠지고

김용희 |중국 불교의 세속성을 타파하기 위해 서쪽에서 나타난 달마는 수염이 없다. 수염이 자라지 않는다. 달마는 왜 수염이 자라지 않는가. 하늘은 왜 맑아 염색을 하고 있는가. 손발톱은 다 물러 빠질 만큼 수행의 길은 끝이 없다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달마선사가 던지는 공안의 한 마디인 셈이다.
“도가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질문 그 자체의 계기성을 깨뜨리려는 것. 조오현은 달마시편 속에서 돌연한 비약, 예기치 못한 언어적 섬광, 갑작스러운 상황을 던져준다.
언어를 깨뜨려 돌연함을 중생에게 던져줌으로써 깨달음을 주고자 하는 공안이다. 달마시편은 수행하는 자가 겪는 세속과 탈속의 경계를, 언어와 비언어 사이의 넘나듦을 보여주면서 인간존재 안에서 ‘도’를 탐색해 가는 진리추구 과정을 계시한다.
“감아도 머리를 감아도 비듬은 씻기지 않고/삶은 간지러워 손톱으로 긁고 있네/그 자국 지나간 자리 부스럼만 짙었네”(「달마8」)
그렇게 하여, 그리하여 조오현이 이르고자 한 곳은 어디인가. 노자에 의하면 “상덕을 가진 사람은 무위하며 무심으로 작위한다”고 하였다.
무심으로 작위한다는 것은 무목적, 무의식적으로 행위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자신의 본성이 내키는 대로 방임하여 행위할지라도 저절로 사물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
모든 존재로부터 소외된 인간은 스스로의 본성을 찾아가면서 다시금 존재 속에 통합되어 그것과 하나 되는 조화를 찾는다. 도는 결국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출처 『열린시학』, 「여보게 저기 저 낙조를 보게」에서 발췌, 2004년 겨울 <김용희 문학평론가, 소설가, 평택대 교수>. ⓒ권성훈
김진돈 |「달마 5」는 보리달마의 선법과 행적에 관한 일화를 연작시조의 형식으로 평창한 작품 중 하나다.
달마도에 수염이 있는데, 왜 ‘수염이 자라지 않고’ 라고 했을까? 번뇌 망상이 자라지 않는다는 걸까? 당연히 있다는 고정관념으로 생각했던 수염이란 집착을 흔들어 본질을 보게 하는, 있다와 없다有無 라는 분별심을 해체해서 그 경계도 초월하라는 의미다.
반상합도反常合道를 통해 이항대립인 이분법적 사고로 세상을 보는 그런 분류나 사고를 무화시켜 뒤틀어서 수승된 다른 세계로 안내한다.
어쩌면 ‘수염이 자라지 않고’는,『금강경』제32분처럼,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아침이슬 같고 번개 같은 헛된 것에 매달리지 말고 본성을 바로 보라는 의미다. 지식도 버리고 부처도 버리고 수염이라는 도그마에도 빠지지 마라는 경책이다.
『노자』는 최고의 덕은 덕을 내세우지 않으므로 덕이 깃든다.(上德不德, 是以有德) 덕을 갖는다는 것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덕을 가지게 된다.
있음과 없음, 삶과 죽음, 옳고 그름도 없고 중생과 부처도 둘이 아니다. 이런 분별사량이 끊어진 자리가 깨달음의 세계이다. 한 소식을 잡기 위해, 자신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 처절한 시련과 고된 수행으로 육체는 “다 물러빠지고”, 진리는 본래의 다양한 풍경으로 여전히 비추고 있다.
범인들은 덧없는 아지랑이 같은 헛된 것에 매달리다 손발톱이 문드러지고. 시 해설을 잘못하고 있다면 순전히 내 마음이 흐린 까닭이다.『장자』의 좌치니 주치가 아니라 좌망坐忘으로, 허심으로 살라고 전하는 듯하다.
▲출처 『창작21』, 「오현 그늘을 옮긴다」 시작노트에서 발췌, 2014년 겨울호 <김진돈 시인. 한의사>. ⓒ권성훈
조오현 스님은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 ‘만해대상’과 ‘만해축전’을 만들었다.
1966년 등단한 이후 시조에 불교의 선적 깨달음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대시조문학상과 가람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문학상과 국민훈장 동백장, 조계종 포교대상, DMZ평화상 등을 수상했다.
1959년 출가해 직지사에서 성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으며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계림사, 해운사, 봉정사, 신흥사 주지 및 제8·11대 중앙종회 의원을 역임, 지난 4월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大宗師)’ 법계(法階)를 받았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종립 기본선원 조실로 원로회의 의원을 맡고 있으며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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