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대장장이
하루는 천은사 가옹스님이 우거(寓居)에 들러,
“내가 젊었을 때 전라도 땅 고창읍내 쇠전거리에서 탁발을 하다가 세월을 담금질하는 한 늙은 대장장이를 만난 일이 있었어. 그때 ‘돈벌이가 좀 되십니까?’하고 물었는데 그 늙은 대장장이는 사람을 한 번 치어다보지도 않고 ‘어제는 모인(某人)이 와서 연장을 벼리어 갔고 오늘은 대정(大釘)을 몇 개 팔고 보시다시피 가마를 때우고 있네요’ 한단 말이야. 그래서 더 묻지를 못하고 떠났다가 그 며칠 후 찾아가서 또다시 ‘돈벌이가 좀 되십니까?’하고 물었지. 그러자 그 늙은 대장장이는 ‘3대째 전승해온 가업이라…’하더니 ‘젠장할! 망처기일을 잊다니!’ 이렇게 퉁명스레 내뱉고 그만 불덩어리를 들입다 두들겨 패는 거야.”하고는 밖으로 나가 망망연히 먼 산을 바라보고 서 있기에,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가옹스님은
“그 늙은 대장장이가 보고 싶단 말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권영민 |이 시를 읽는 동안 독자는 일상생활 속에서 말하는 모든 사람과 그들의 말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람이 말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이것은 여러 가지 의견이나 주장,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떤 말을 음미하고 상기하며 거기에 동의하거나 반대하기도 하는 등 모든 말하기가 포함된다.
여기서는 ‘~이(가) ~하는데 ~하더라.’는 식의 표현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말하기는 시적 모방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시적 재현(再現)의 방식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그 목소리가 말하는 이의 개성과 결코 분리되는 법이 없다. 하나의 말을 재현하고 동시에 이 말의 안팎에서 소리를 내고 이 말에 대해 이 말 속에서 함께 말하는 능력 덕분에 말의 특이한 감응력이 그 공간 내에서 창출된다.
하나의 말 속에서 다른 말을 섞어 넣는 이러한 진술 방식은 말의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설명조에 빠져들기 쉬운 진술 자체를 언어적 이미지로 바꾼다.
그리고 여러 가지 목소리를 특이한 풍자와 패러디의 수법으로 포괄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목소리들은 그것이 작동하는 순간마다 말의 특성에 따라 차별화되어 나타난다.
현재와 과거 사이에, 현재의 서로 다른 사회적 집단들 사이에, 그리고 다양한 이념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모순이 이 말들에 숨겨진 채 인격화되어 새로운 이야기조로 만들어낸다.
여기서 시인이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은 통일적이고도 독백적인 언어가 아니다. 시인은 여러 목소리를 각자의 언어로 해방시킨다. 그러므로 이들 작품에서는 언어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각각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나타난다.
수많은 억양과 목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다양한 암시와 기지와 비유가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시인이 이 말들을 자기 목소리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래의 자리로 본래의 소리로 풀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작품은 모든 언어의 가능성을 드러내면서 그 이야기조의 시적 특성을 살려낸다.
조오현의 새로운 시법은 구어의 직접적인 수용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있는 말들의 현장인 삶의 일상적 공간을 그대로 시적 공간 속에 재현한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이들 살아있는 말들은 서로 뒤섞이면서 다양한 목소리의 대화적 상황을 연출한다. 이 대화적 공간이야말로 조오현의 시가 창조해내고 있는 새로운 시적 영역이다.
이 공간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의 충동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살려내고 그 충동을 다시 시적 긴장으로 변용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말과 말들의 대화이다.
이 대화는 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상호 충돌하면서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출처 | 『시와세계』, 「시조형식 혹은 운명의 형식을 넘어서기」에서 발췌, 2008. 가을호. <권영민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권성훈
조오현 스님은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 ‘만해대상’과 ‘만해축전’을 만들었다.
1966년 등단한 이후 시조에 불교의 선적 깨달음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대시조문학상과 가람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문학상과 국민훈장 동백장, 조계종 포교대상, DMZ평화상 등을 수상했다.
1959년 출가해 직지사에서 성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으며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계림사, 해운사, 봉정사, 신흥사 주지 및 제8·11대 중앙종회 의원을 역임, 지난 4월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大宗師)’ 법계(法階)를 받았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종립 기본선원 조실로 원로회의 의원을 맡고 있으며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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