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비린내가 좋아 견대 차고 나온 저자
장가들어 본처는 버리고 소실을 얻어 살아볼까
나막신 그 나막신 하나 남 주고도 부자라네
일금 삼백 원에 마누라를 팔아먹고
일금 삼백 원에 두 눈까지 빼 팔고
해 돋는 보리밭머리 밥 얻으러 가는 문둥이어, 진문둥이어.

김민서 |휠라이트(P. Wheelwright)나 에이브럼즈(M. H Abrams)가 말하는 개인적 상징은 시인이 즐겨 쓰는 이미지를 말한다.
그 상징은 시인의 경험에 의한 것임으로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상징은 다의적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입전수수’는 “성스러운 깨달음을 성취하고 다시 중생 속으로 돌아와 중생의 아픔을 함께하는 보살도의 단계”이다.
이것은 성스러움과 범속함이 초월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통합한다는 의미로 화광동진이다. 바로 중생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보살송(菩薩頌)이며, “법륜을 굴리는 것”이다.
1연에서 “생선 비린내가 좋아 견대차고 나온 저자”에서 견대는 보살행을 행하는 도구의 상징이다.
“장가들어 본처는 버리고 소실을 얻어 살아볼까”는 가장 세속적인 행동으로 ‘소실’과 ‘장가’는 세속적인 것을 상징으로 구현하고 있다.
탐진치 삼독에 불타고 있는 속세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나막신 그 나막신 하나 남 주고도 부자라네”에서 진정한 무소유의 이타행을 보여준다.
2연에서 “일금 삼백 원에 마누라를 팔아먹고”는 얼핏 보면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으로 보이지만 그 실상은 ‘마누라’로 상징되는 세속적인 인연을 끊어 버리고 끝없는 보살행을 의미하고 있다.
“일금 삼백 원에 두 눈까지 빼 팔고”에서 눈은 색(色)으로 분별과 차별심을 상징한다. 그런데 그것을 빼서 판다고 하는 것은 그런 분별심을 모두 끊고 중생과 하나가 되는 성속불이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해 돋는 보리밭머리 밥 얻으러 가는 문둥이어, 진문둥이어”에도 성과 속의 양립을 볼 수 있다. 해의 세계가 문둥이의 세계가 될 수 있고, 문둥이의 세계가 해의 세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70년에 경허를 사숙한 조오현에게 ‘문둥이’는 개인적 상징에 속한다. 즉 속세를 버리고 떠나와 다시 속세로 돌아오는 기나긴 여정의 귀착지가 세간의 저자거리이다.
그것도 문둥이의 몸이라는 점에서 그의 시적 지향점은 소외되고 고통 받는 중생의 삶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조오현 선시 연구」에서 발췌, 경기대학교 박사논문, 2015. <김민서 시조시인>. ⓒ권성훈
조오현 스님은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 ‘만해대상’과 ‘만해축전’을 만들었다.
1966년 등단한 이후 시조에 불교의 선적 깨달음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대시조문학상과 가람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문학상과 국민훈장 동백장, 조계종 포교대상, DMZ평화상 등을 수상했다.
1959년 출가해 직지사에서 성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으며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계림사, 해운사, 봉정사, 신흥사 주지 및 제8·11대 중앙종회 의원을 역임, 지난 4월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大宗師)’ 법계(法階)를 받았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종립 기본선원 조실로 원로회의 의원을 맡고 있으며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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