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15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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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5>
이름마저 잊었다. 일학년 때 담임선생님. 그 나이쩍 여선생님이 누구에겐 그렇지 않으랴만 내게 있어 유독 그분은 이 세상 어느 여자보다 곱고 따뜻하고 눈부신 분이다.기인 그림자가 우선 생각난다. 내 그림자, 어느 일요일 아침 산정국민학교 운동장, 학교 바로 옆 외가에
김지하 시인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4>
나는 마침내 표랑에서 돌아왔다. 일곱 살 늦은 봄. 입학시기가 지나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입학했는데 바로 얼마 안돼 반장이 되었다. 여섯 살 때부터 이미 일학년 셈본과 한글을 모두 익히고 있었으니까.반장이 된 첫 날 첫 조회 때 생각이 난다. 구령이 자꾸만 목으로 도로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3>
그 무렵 아버지는 파출소 습격사건이니 시위 등에 조직자로 연루되어 수배를 받고 중선(中鮮) 쪽으로 자주 피신했다.백부가 계신 부평, 인천 쪽으로, 혹은 친구가 산다는 대전, 조치원 쪽으로 피신해서 그런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가 날 데리고 긴 여행을 하던 시절이다. 그때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2>
주변에 있는 자그만한 것들. 채송화며 분꽃 나팔꽃 맨드라미 참새 잠자리 돌맹이, 나는 이런 하잘 것 없는 것들이 좋았다. 그리고 아침에 활짝 피어났다 저녁이면 오므라드는 그 비밀이 알고 싶었고 그 작은 것들 속에 끼어들어가 함께 살고 싶었다.그 비밀을 그 무렵 내게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1>
그러나 일곱 살 무렵의 그 궁상만이 나의 유년의 다는 아니다. 그보다 조금 전 다섯 살 때던가, 여섯 살 때던가.나는 수돗거리에서 산정리 쪽으로 한두 굽이 돌아들어간 후미진 산어덩밑 구시나무집, 정일담씨 조카되는 내 친구 정성일이네집 길 건너 논가에 움푹 박힌 검은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0>
수돗거리
20. 수돗거리“어른들은 잠도 안자나”늘 궁금했던 일이다. 꿈결에도 꼭두새벽이면 늘 불을 켜고 일어나 부스럭 부스럭 두런두런 말소리 발소리를 죽여가며 가만가만 문을 열고 부엌으로 나가는 소리. 덜컹 덜커덩 물통소리. 삐이익-하고 대문 열리는 소리. 물전에 물받으러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9>
정일담
19. 정일담1975년 나의 반공법위반 사건 내용 중에 ‘장일담’ 구상메모가 들어 있다. 수사관들은 장일담의 모델이 누구냐고 거듭거듭 물었었고 출옥 후에도 그것을 묻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허구라고 대답해 왔고 물론 허구다. 장일담의 사상이 그러하니까. 허나 영상으로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8>
문태 숙부
18. 문태 숙부큰 숙부 김문태(金文泰) 씨는 타고난 ‘우투리’였다. 잘생긴 얼굴에 둥글고 서글서글한 눈매, 짙고 검은 눈썹, 완강한 체격, 살인적인 완력, 굵은 목소리에 어글어글한 성격, 끈질긴 내기욕심하며 그 싸움, 그 지독한 장난기로 집안에선 증조부의 그림자, 소귀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7>
연동
17. 연동나 태어나 자라던 연동, 그 뻘바탕은 일제 때 목포역 기관고에서 왕자회사까지 산정동 제방을 쌓고 바다를 매립하면서 생긴 목포 북부의 변두리 동네다. 요즘 같으면 달동네.시내에서 밀려난 가난뱅이들, 섬에서 못살고 뭍에 오른 사람들, 조선운수주식회사 쌀가마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6>
해방
16. 해방내겐 해방되던 날의 기억이 없다.1945년 8월 15일.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나는 항상 중요한 역사의 날, 충만과 절정의 날엔 그 현장에서 멀리 있다. 1960년 4월 이승만 하야의 날. 거리를 가득 메우고 만세를 불렀던 민중의 그날, 나는 성북동 골짜기 자취방에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