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숙부 김문태(金文泰) 씨는 타고난 ‘우투리’였다. 잘생긴 얼굴에 둥글고 서글서글한 눈매, 짙고 검은 눈썹, 완강한 체격, 살인적인 완력, 굵은 목소리에 어글어글한 성격, 끈질긴 내기욕심하며 그 싸움, 그 지독한 장난기로 집안에선 증조부의 그림자, 소귀(小鬼), 축소판이라고들 했다.
해서 할아버지 사랑과 걱정을 독차지했는데 어려서는 인물 좋은 탓에 광주 천주학 집안에 양자들어가 미사 때는 복사까지 한 양반이 도대체 성당과 상관은 무슨 상관!
학교에서는 하교시간에 신발을 몽땅 쓸어다 개굴창에 쑤셔넣기 일쑤요, 동네처녀 똥쌀 적에 똥통에 돌빠뜨려 똥튀기기를 밥먹듯, 활동사진 보러가면 캄캄 중에 처녀들 댕기꼬리 서로 묶어놓고 그 사이로 냅다 소리소리 지르며 타넘기!
놀부심통은 분명 아니로되 장난이 워낙 심해놔서 호박에 말뚝박기, 똥누는 놈 주저 앉히기, 옹기진 놈 가래뜨고 사기짐은 작대기 차고 비단전에 물총 놓고 철뚝에 바위굴리기와 콩서리 닭서리, 신혼부부 잠든 틈에 배암 집어넣기 쯤은 흔히 했던가 보더라.
어려서부터 주먹대장인데 나이 들어 해군 육전대, 요즈음의 해병대 갔다 온 뒤로는 연동에선 단연 왕초요, 온 목포바닥 으뜸 큰 주먹으로 저 유명한 ‘일담이’와 함께 형이야 아우야 하며 쌍벽이 되어 내리 그 판을 휩쓸었다. 건달 우투리!
생각난다. 검은 가죽잠바에 검은 가죽장화, 장화 뒤축의 은빛 박차, 장화 끝에 삐꼼이 내민 은빛 단도자루들.
또 생각난다. 연동 우리 친가 바로 앞에 무슨 관인지 장인지 하는 큰 술집에 ‘호마’라고 억실억실, 입걸고 덕대 큰 걸물 여주인이 있었는데 하루는 숙부가 만취, 우리집 들어오는 그집 옆골목 판장을 냅다 발로 차며 고래고래
“호마야 이녀언! 위아래로 별탈 없냐아?”
집안에서 호마 목소리가 즉각 응수.
“오오냐 이놈 문태야! 내 아래로 그것을 뚝 잘라주마 이노오오오옴”
호마는 숙부보다 열 살 위였으니 우습다.
어느 가을날 대낮 시퍼런 하늘을 등에 지고 시뻘건 말 위에 우뚝 앉은 숙부의 늠름한 모습을 쳐다보며 나는 눈이 부셔 눈이 부셔 자꾸만 눈을 비비며 또 쳐다보고 또 쳐다보곤 했다. 숙부는 나의 영웅이었다. 그리고 숙부는 생전 내내 나를 끔직히 사랑했다.
생각난다. 그 무렵 노을이 영산강 위에 핏빛으로 타고 있던 그 아름다운 호풍이네 과수원길, 술취한 숙부가 조그만 내 손을 꽉 붙잡고 비틀거리며 연동까지 오도록 내내 되풀이 되풀이 가르쳐주던 옛노래
‘노래하자 하루삔 춤추는 하루삔
아카시아 숲속으로 역마차는 달려간다
오늘은 오렌지색 꾸냥의 귀걸이도 한들한들
손풍금 소리 들려온다 방울소리 들려온다‘
호방, 쾌락, 사나이의 삶, 거칠고 뜨거운 피, 야성의 사랑, 숙부의 세계다. 그리고 조금은 나의 세계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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