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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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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4>

25. 흰 운동화

나는 마침내 표랑에서 돌아왔다. 일곱 살 늦은 봄. 입학시기가 지나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입학했는데 바로 얼마 안돼 반장이 되었다. 여섯 살 때부터 이미 일학년 셈본과 한글을 모두 익히고 있었으니까.

반장이 된 첫 날 첫 조회 때 생각이 난다. 구령이 자꾸만 목으로 도로 기어들어가고 입속은 마르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어떻게 간신히 모기소리로
“앞으로 나란히!”

헌데 줄 뒤쪽에서 커다란 녀석 하나가 성큼 줄밖으로 나와 선다.
“반장 가봐!”

선생님 목소리가 뒤통수를 갈긴다. 어쩔 줄 몰라 머뭇머뭇하는데
“빨리!”

가야만 했다. 갔다. 똑 죽으러 가는 것 같았다. 가서 그 커다란 녀석 팔에 슬며시 손을 댔다. 내 딴에 줄 속으로 들어서라는 뜻인데 그 순간 녀석이 내 발등을 콱 밟아 버렸다. 입학 기념으로 어머니가 사준 처음 신어보는 흰 운동화였다. 운동화 위에 흙발자국이 크게 나 있었다. 몸을 구부려 흙을 터는데 운동화 등 위에 물방울이 하나 뚝 떨어져 얼룩졌다.

어머니가 보고 있었나 보다. 늦게 들어간 터에 반장이 됐다고 기뻐서 조회 세우는 걸 구경하러 왔다가 그 꼴을 보셨나 보다. 속으로 많이 우셨다 한다. 그 얘기만 나오면
“에에이 얼짜!”

그래 난 그런 얼짜다. 그 뒤부터 나는 장(長)짜 붙은 건 아예 질색이다. 그런데 그 흰 운동화!

결혼 직후의 일이다. 어느 날인가 잡지사에서 꽤 많은 액수의 원고료를 받았던 것 같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헤어진 뒤 밤늦게 을지로 입구에서 화신 쪽으로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지금 조흥은행 길 건너편 무교동 입구 근처 어느 가게 셔터 앞이다. 행인도 거의 없고 컴컴했는데 한 아이가 셔터에 등을 대고 두 팔로 무릎을 껴안은 채 고개를 파묻고 있고 곁에 어머니인 듯 후줄그레한 차림의 한 아주머니가 쪼그려 앉아 사뭇 애원하는 얼굴로 아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걸음이 그 앞에 멎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아무 움직임도 없이 그냥 그대로 꼼짝 않고 있었다.

모자겠지. 시골사람 같은데.
아버지를 찾아왔을까? 찾아왔다 못 만났을까? 어머니는 무얼 애원하고 있을까? 아이는, 아이는, 아이의 저 절망은? 여섯 살 쯤, 일곱 살 쯤 되었을까? 호사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단정한 옷차림인데….

순간 내 눈에 아이가 신고 있는 흰 운동화가 확 들어왔다.

흰 운동화!

무슨 생각을 한 것도 아니다. 순식간의 일이다. 나는 안주머니 바지주머니를 몽땅 뒤져 손에 잡히는 한움큼 돈을 모두 아주머니에게 내밀었다. 아주머니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억지로 손에 쥐어주고는 뒤도 안돌아 보고 도망치듯 안국동 쪽으로 바삐 걸었다. 걷고 있는 내 눈에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흰 운동화 흰 운동화.

그건 또 언제였을까.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와 나는 빠가빠가 영감네 가게 근처 조그만 셋방에서 궁핍하게 살 때다. 추석이었는데 어머니가 어찌 해 흰 운동화 한 켤레를 사오셨다. 꿰어진 꺼먹 고무신을 질질 끌고 다닐 때라 뛸 듯이 기뻤다. 너무 기뻐서 흥분한 나머지 그날 밤 내내 잠을 자지 못하고 머리맡에 나란히 놓아둔 운동화를 보고 또 보고 하다 그만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새벽에 외가에 가는데 발밑 운동화 생고무창의 탄력 때문일까, 잠을 못 잔 때문일까, 아니면 흥분 때문일까 술취한 사람처럼 몸이 허공에 붕-뜨고 길가 집들이며 솔개산이 비틀비틀 휘청휘청하던 생각이 난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흰 운동화 흰 운동화.

1987년 겨울 나는 원주 기독병원 정신병동에 있었다. 그때 한 국민학교 교사가 함께 있었는데 성격도 야무지고 체격도 다부지고 아주 멀쩡한 사람이 나 있는 몇 달 동안 두 차례나 거듭 퇴원하고 또 입원했다. 그는 평소에 늘 절약하여 돈을 모아두었다가 녹음기나 카메라 따위 신형이 나오면 그걸 사 가지는 걸 최고의 낙으로 생각하는 사람인데 안타까운 것은 그것만 손에 쥐는 날이면 흥분해서 몇 날 며칠을 잠을 자지 못한다는 거다. 술도 수면제도 소용없고 결국은 환각증세를 일으켜 입원한다는 것인데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범인은 가난이에요. 어렸을 적에 하도 가난해 꼬바리 연필을 침묻혀 가며 쓰곤 했지요. 누가 새 연필 한 타스나 반짝반짝하는 새 콤파스나 그런 거 한 번 선물로 줬다 하면 그날 밤은 통 잠을 안자고 보고 보고 또 보고 그 지랄을 했거던요. 그게 마음병의 뿌리가 됐어요. 전부 가난 탓이지요. 뭘!”

더러운 가난! 가난은 이런 열매도 맺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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