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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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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7>

연동

나 태어나 자라던 연동, 그 뻘바탕은 일제 때 목포역 기관고에서 왕자회사까지 산정동 제방을 쌓고 바다를 매립하면서 생긴 목포 북부의 변두리 동네다. 요즘 같으면 달동네.

시내에서 밀려난 가난뱅이들, 섬에서 못살고 뭍에 오른 사람들, 조선운수주식회사 쌀가마 실어 나르는 마차꾼에 리어카꾼, 지게꾼에다 목포역 잡부 기관고 탄부, 탄 빼다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에 미창 인부며 십장, 똥섬 나뭇배 짐꾼이요, 행남사 직공들, 천독근이네 방직공장 여공들, 갖가지 날품팔이들, 목공 철공, 인쇄공 주물공에, 부두하역 인부들, 엿도가 빼주도가 미장이 땜장이 신기료 주먹 건달 술장수에 순배술집 여자들.

또 생선장수 포목장수 행상에 농투산이에 어부에 여러 잡색들하고, 팥죽이며 댓떡이며 족편 아랑주 채소 과일 양념 따위 무안 망운에서 겨우 바구니 하나쯤 떼어 장에 내다 파는 온갖 또아리장수, 갖은 좌판장수들, 뭐 이런 극빈자들, 구닥다리 개념으로 이른바 룸펜프로가 아니라 요즘 새로운 개념으로 왈 언더 클라스가 모여 사는 목포 최저변의 빈민굴이다.

가난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가난뿐이었다. 흥보의 가난 그것이 거기 그대로 있었다. 끼니를 거르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요, 거개가 부황에 누렇게 떠 있었고 좁고 컴컴한 움막같은 방구석에 남녀노소 온식구가 몽땅 흥보네 멍석 덮듯 포게포게 잠을 자고 부엌엔 항상 갯물이 흥건.

예전에 박정희가 한 번 한밤중에 몰래 연동엘 가서 그 방구석 풍경을 얼른 엿보더니

“대중이란 놈 종신 왕초노릇하게 생겼군.”

연동지도가 바뀐 게 바로 그때다.

허나 살림 가난하다고 마음마저 가난하랴?
연동사람 정 좋기는 목포에서도 으뜸이다. 사돈에 팔촌도 안되는 사람들이 서로를 형이야 동생이야 오빠 누님, 삼촌 조카,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자빠졌으니 온 동네가 몽땅 친척이라!

혹시 누가 눈먼 돈 한 푼 생길라치면 처녀고 총각이고 한데 이리 와크르르 몰켜다니며 쩍하면 호떡이야 빙수야 짜장면 잔치요, 영감할멈들도 저리 오글오글오글 모여가지고 짝하면 국수에 수박에 감자떡이나 엿판이다. 한 많고 원 많고 인정 많고 눈물 많고 신도 많고 흥도 많고 우스갯 소리 잘하고 짜배기 잘하고 유행가에 신파 변사조까지 모두를 잘하니 예술가가 따로 없다.

허나 한결같이 그저 착하기만 하고 민하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사람사람이 다 저마다 나름나름으로
엄살 익살 애살 곰살에 독살
청승 방정 의뭉에다 그악 우악 영악 포악 미련 애련 후련
시침 새침 기참 당참에 대참 세참 점잔 음전 앙칼에 엉큼에
똑똑이 헛똑똑이 속똑똑이 겉똑똑이며 풀대죽 물렁방퉁이,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머얼건 뜨물에 등신 병신 팔푼이
칠뜨기 팔뜨기 머저리 바보 멍청 능청 목낭청에 엉뚱이에
흥청망청 개차반이며 보리까스랑 괭이까스랑이며
우뚝이 거룩이 대꼬챙이에 새대가리에 먹통에 개좆깔깔이!

허나 바탕만은 한결같은 소탈이었으니 가히 인간 백화점이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나는 자랐다. 한마디 그럴듯하게 한다면 민중의 훈도(薰陶)! 허나 그 놈의 민중이란 말 이젠 그만 지겹다. 사람이면 됐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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