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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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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2>

***로 선생**

주변에 있는 자그만한 것들. 채송화며 분꽃 나팔꽃 맨드라미 참새 잠자리 돌맹이, 나는 이런 하잘 것 없는 것들이 좋았다. 그리고 아침에 활짝 피어났다 저녁이면 오므라드는 그 비밀이 알고 싶었고 그 작은 것들 속에 끼어들어가 함께 살고 싶었다.

그 비밀을 그 무렵 내게 조금씩 가르쳐준 분이 계셨다. 로 선생, 시내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그 키 크고 눈빛 번쩍이는, 한없이 인정스러우셨던 로 선생. 아버지를 형님이라 부르며 따랐는데 나를 몹시 사랑해서 집에 들르면 노상 나를 안아주었고 어쩌다 내가 집에 없으면 그냥 발길을 돌렸다 한다.

내 조그만 머리를 쓰다듬으며 늘
“우리 영일이는 꼭 과학자가 될 겁니다”
그랬다는데, 하기야
“꽃은 으째 빨갛다우?”
“참새소리는 으디서 나와?”
“삐비는 왜 달지라우”
“짱뚱이 눈깔은 왜 톡 볼가졌어?”
“두깨비는 으째서 맨날 모가지를 뿔룩뿔룩해?”

이리 연거푸 물어댔다니까. 이 성가신 질문에 하나하나, 차근차근, 어린 것이 대번 고개를 까닥일만큼 쉽게 풀어 가르쳐주고 앉아있는 걸 보면 역시 타고난 교사였다는 아버지의 추억이다.

생생하다, 그 그림자.
벽 위에 비친 그 두 개의 그림자.
그날 밤 로 선생은 한밤중에 오셨다.

생생하다. 잠든 나를 깨워 앉혀놓고 몇 차례고 거듭거듭 가르쳐 주던 그 노래들.
‘메뚜기 잡아다
풀수레 끌고요’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영창에 가득히 걸어 놓아요’

그림자.
벽에 커다란 그림자가 하나 꼼짝않고 있는데 그 앞에 쬐그만 그림자가 하나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자꾸만 꾸벅꾸벅 절을 하고 있는 영상.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졸고 있었던 거다. 꾸벅꾸벅 졸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그 틈에도 벽 위의 그림자 놀이가 신기해 곁눈질로 훔쳐보고 있었던거다.

작별의 인사였을까? 로 선생을 나는 그 뒤로 한참을 보지 못했다. 희미한 풍문들만 떠돌다가 이윽고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허나 로 선생은 내게 지금도 그림자로만 기억된다.

그는 유명한 공산주의자였다. 6.25 때 목포시당의 당성심사위원이었으니 아마도 골수중의 골수였을 것이다. 그런 그가 그림자라면 융의 개념처럼 샤텐이라면, 공산주의와 혁명을 아마도 젊은 시절 내성격의 그림자로 형성되었던 것일까?

***땅거미**

희뿌연 날, 뻘바탕 빼주도가 종완이네 집 바로 옆집 귀퉁이방에 세들어 살 때다. 저녁 무렵인데 주인할머니가 마당에 깔린 멍석 위에 엿기름을 펴말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나를 흘끔흘끔 쳐다본다. 귀퉁이방에는 아버지가 아파누웠고 어머니는 어디 갔는지 없다. 아버지는 서북청년단에게 테러를 당해 몸이 많이 상해있었다. 마당 위에, 흰 흙 위에 작은 돌팍으로 나는 새를 그리고 있었다. 그 곁에 이제 또 한 마리 또 한 마리 그리고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까지.

“흙 파진다!”
할머니가 꽥 소리질렀다. 내 손이 새 그림 위에 가만히 멈춰 있었다. 눈앞이 침침해졌다. 첫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조용했다. 주위가 문득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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