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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정말 같은 시대를 살아온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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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정말 같은 시대를 살아온걸까"

[화제의 책] 장애인운동 20년사 <차별에 저항하라>

<함께 나누는 장애 "불가능 아닌 불편함일 뿐">

<'공군 38전투비행전대' 장애우들과 함께>

<조폐公, 장애인복지시설 생필품 등 전달 '훈훈'>

<서울경찰, 장애인의 날 행사 열어>

지난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쏟아져나온 기사들은 처음 기념일이 제정됐던 27년 전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정부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행복한 장애인'을 보여주고 싶어했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전해줬다. 이같은 '미화 작업'은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도 잘 드러났다.

바뀌지 않는 언론과는 달리 그간 장애인들의 현실에는 서서히, 그러나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 거리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도블럭이 깔렸고, 지하철역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1989년 장애인 고용촉진법에 이어 지난 3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장차법)이 국회의원 재석 197명 중 196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런 변화의 뒤에는 많은 이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벌어진 장애인 운동의 발자취를 묶은 책 <차별에 저항하라>(박종철출판사 펴냄)가 출간됐다. 지은이 김도현 씨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와 정태수열사추모사업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으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27년…누가 장애인들의 '진짜 현실'을 말하고 있나

"지난 4년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장애인계의 노력을 장애인의 존재가 이 사회에서 '없음'이 아니라 '있음'을 알리기 위한 피나는 투쟁의 과정이었다. 지난 역사 속에서 장애인은 이 사회에서 '없음'의 존재였다. 시설에서 가까스로 생존하고 있는 중증 장애인들은 보건복지부의 시혜로 점철된 수용 정책으로 인해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시설장들의 재산을 늘리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들은 '사회적인 죽음'의 상태다."
▲ <차별에 저항하라>, 김도현 저, 박종철출판사 펴냄 ⓒ프레시안

지난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차법 서명식에서는 뜻밖의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바로 이 법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의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박김영희 두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플랭카드를 펴들고 기습시위에 나섰던 것이다. 이들은 장차법 하나로 이날 행사명이었던 '행복한 장애인, 아름다운 대한민국'은 결코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장애인들을 차별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것이었다.

장애인 단체들은 몇몇 통계로만 봐도 장애인들의 '사회적인 죽음'은 간단하게 증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고속철도가 뚫려 국토가 반나절 생활권에 접어들었다고 하는 시대에 1, 2급 중증 장애인의 절반에 해당하는 30만 명의 장애인들은 한 달 동안 외출이 3번에 못 미친다.

전체 국민 3명 중 1명(34.3%)이 전문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는 이 시대에 장애인 2명 중 1명(45.2%)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이다.

1997년 이후 비정규직, 파견 노동, 파트타임 등 이른바 '불안정 노동'이 문제로 부각됐지만, 장애인들의 경우에는 3명 중 2명이 실질적인 실업 상태에 놓여 있는 '불인정 노동'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비동시대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저자는 이를 '비동시대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현재의 한국에서 장애인 대중이 처한 삶의 조건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비동시대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한국에서 '장애인'을 부르는 공식 용어는 '불구자'였다. 1981년 전두환 정권이 지정했던 '장애인의 날'의 처음은 1972년 한국불구자복지협회가 개최했던 제1회 '재활의 날' 행사였다. 현재의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법적으로 쓰이게 된 시기는 1990년 이후다.

저자는 "1970년대 말까지 한국에 개인으로서의 '불구자'는 존재했지만 사회 현상으로서의 '장애'와 사회 집단으로서의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았다"며 "이들 단체들의 결성과 기념일 제정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시혜와 보호를 목적으로 한 행정 행위의 일환이었다"고 평가한다.

장애인 스스로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나서는 진보적 장애인 운동이 시작됐던 시기는 1980년대 후반이었다. 1984년 9월 19일 휠체어 이용 장애인 김순석 씨가 도로의 턱을 없애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한 사건은 장애 문제를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인식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1989년 말 장애인고용촉진법이 통과되며 장애인 단체들의 운동은 일정한 성과를 보게 된다. 그러나 재계는 이 법률을 끊임없이 약화시키려했고 이 같은 움직임은 'IMF 사태' 직후인 1998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장애인 의무 고용제 폐지' 등을 70대 핵심 규제 개혁 과제로 발표하면서 표면화되기도 했다.

소멸의 위기에 놓인 듯 보였던 한국의 진보적 장애인 운동은 2001년 이후 이동권 투쟁으로 다시 활발하게 전개됐다. 2001년 오이도역 추락 사고 이후 '장애인과 함께 지하철을 탑시다'라는 행사가 주기적으로 열렸다. 또 중증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과 장애 아동 부모들의 교육권 투쟁도 계속돼 오고 있다.

"자유가 없던 우리에겐 '신자유주의'가 낯설기만 하다"

지난 20일, 서울역 앞 광장에서는 500여 명의 장애인 활동가들이 참여한 '4.20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 결의대회'가 열렸다. 언론들이 보건복지부 및 정부에서 주관하는 행사 취재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 이곳에서는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 △사회복지시설 공익이사제 도입 △활동보조인서비스 제공시간 최대 180시간까지 확대 등을 외치며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장애인들의 현실을 돌이켜보라"는 외침이 계속되고 있었다.

장차법 제정에 이어 수년 전부터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온 이들의 요구에 대해 정부는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오히려 한미 FTA 등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변화는 '차별의 폭'을 확대하는 태세다. 사람들은 이를 '신자유주의 열풍'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 사회의 장애인 대중들에게 신자유주의조차 매우 낯선 무엇"이라고 말한다. 그는 "애당초 '해체될 사회적 권리'라는 것이 장애인에게는 없었다"며 "자유주의 시대가 약속한 '개인의 자유 및 법 앞의 평등', 그리고 선거권과 피선거권이라는 정치적 권리에서조차 배제돼 있던 장애인들은 아직도 '시민권'을 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신자유주의, 그리고 그에 대한 비판조차 낯선 장애인들의 현실. 이 책은 이처럼 그간 장애인들의 현실을 보고 듣지 못했던 한국 사회의 장애를 '장애인 운동의 역사'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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