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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장애인이라고 그렇게 죽어야 하나요?"

[인권오름] 감옥과 같은 시설에서의 삶

지난 7월 26일 서울 종로구청 앞에서 시작된 '성람재단 비리 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 전면 개정을 위한 무기한 농성'이 1일로 38일째를 맞이했다. 농성단은 장애인단체 및 인권단체 소속 활동가 10여 명. 이들은 횡령혐의가 드러난 조태영 성람재단 전 이사장의 비리를 방치한 이 재단 이사진을 해임시키라고 관할청인 종로구청에 요구해 왔다.

이에 대해 종로구청은 그동안 '우리는 할 일이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 밝히더니, 지난달 28일에야 비로소 열흘 간의 일정으로 성람재단 산하 장애인시설들에 대한 특별감사에 나섰다. 그러나 농성단은 이 특별감사에서 장애인시설의 실태가 제대로 파악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종로구청이 재단 측에 미리 감사 실시계획을 알리면서 '보육사들을 격려하고 각 시설장에게 시설관리 및 원생관리에 각별히 신경 쓰라고 할 것'을 당부한데다 감사가 서류검토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애인시설의 현실은 과연 어떨까? 성람재단 산하 요양원에서 8년 간 생활했던 박정혁 씨는 그 누구보다도 장애인시설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지난 5월 지방선거 때 서울시의원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던 박 씨는 뇌성마비 1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박정혁 씨는 "교육이나 여가활동 없이 '먹고 자고 배설하는' 생활을 반복하는 시설은 감옥이지 요양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추운 겨울에 난방비를 아낀다며 하루 20분 동안만 난방을 하게 하는 등 재단 이사장의 행위를 볼 때 그가 시설을 지은 목적이 '돈'이 아니고 무엇이겠나"라고 말했다.

박정혁 씨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과의 인터뷰에서 장애인시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은 이 인터뷰의 내용이다. <편집자>


"장애인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럴 수는 없죠"

1996년 5월에 강원도 철원에 있는 은혜장애인요양원(성람복지재단 산하)에 갔어요. 수용인원이 500명 가까이 된다고 그랬거든요. 규모가 엄청 커요. 거기서 생활하다가 어떤 좋은 인연으로 인해서 2003년 서울에 올라오게 됐어요. 뭐, 거기서의 생활은 정말 할일없는 생활이었어요. 먹고 자고 배설하고…그런 생활의 반복이었죠. 제가 좀 특이하다면, 글 쓰는 걸 좋아해요. 제가 손을 못 쓰니까 요만한 전자수첩에다가 시나 수필, 동화…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집필활동을 좀 했고요. 거기는 전방지역이라 군인들이 자원봉사자로 많이 와요. 그래서 군인들한테 전자수첩 보여주고 대필하게 하고 그렇게 생활했어요.

먹고 자고 배설하고…
▲ 박정혁 씨. ⓒ 민중언론 참세상

저 같은 경우는 집안에서 27살까지 살았어요. 가족들 품에서 살았었는데 집안 경제사정이 나빠지고, 그러는 바람에 생활장애인 시설에 입소하게 됐죠. 그리고 앞에서 얘기했던 그대로의 생활을 했어요.

그리고 자립생활을 배우면서 시설에서 나오게 됐어요. 시설은 워낙 답답한 곳이었어요. 시설에서는 솔직히 짜장면도 못 시켜 먹어요. 사람이 밥만 먹고 못 살잖아요. 제 아내는 "밥만 먹고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고 말해요. 저도 그래요. "그게 감옥이지 요양원이냐?"

그러니까 시설은 그야말로 관리도 아니라 방치하는 거예요. 밥만 먹여주고 옷 입혀주고 변소 가게 해주는 수준밖에 안 돼요. 교육은 전혀 없고, 여가활동 전혀 없고, 하루종일 그냥 앉아 있어요. TV를 틀어줬는데 그것도 저녁 7시, 8시만 되면 다 꺼요. 불도 다 끄고. 자라고요. 그리고 아침 6시 반에 깨워요.

제가 처음 입소했을 때 방에 한 명의 보모를 뒀는데 그 보모가 24시간 일하고 다른 보모로 바뀌고 그렇게 2교대로 운영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한 방 12명에, 저 같은 지체장애인은 단 2명이고 나머지는 정신지체발달장애인인데 한꺼번에 자게 하더라고요. 보모들이 그냥 생활시설만 돌보는 것도 아니었어요. 툭하면 밖에 나가서 논일 시키고 밭일 시키고 소 키우게 하고…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어떻게 애들을 봐요.

정신이 멀쩡한 장애인, 비장애인과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은 다른 방 보모들에게 얘기해서 대소변도 보고 밥도 먹고 그러는데 정신지체장애인들, 지능수준이 낮거나 자폐증을 가진 중증장애인들의 경우에는 그러질 못하는 거예요. 바닥이나 옷에다 소대변을 봐요. 물론 보모들이 전부 다 밖에 나가는 게 아니라 당번을 남겨놓죠. 요양원 건물이 4층 구조인데 한 층마다 4명이 남아 100명이 넘는 인원을 돌봐야 해요. 전부 밖에 일 나가면 당번만 남게 되니까. 점심 때도 안 들어오고 그런 날이 많았어요. 4명이서 모두 중증장애인 사람들 밥을 먹여줘야 하니 어떻게 되겠어요. 거기다 소대변을 다 해결해줘야 되고. 물론 정신지체장애인 중에 조금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보모들하고 같이 애들 밥도 떠 먹여주고 소대변도 치워주고 그런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운영이 되니까 보모들이 늘어나도 일 나갈 때는 똑같은 상황이 또 발생하고…그러다보니 스트레스 받고 그걸 우리들한테 풀어버리는 거예요. 예를 들면 소대변을 본 친구들한테 폭력이 가해지는 거예요. "왜 쌌냐"고 하면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그런 사람들인데… 애기처럼 해줘야 하는데 그걸 안 해주니 그렇게 쌀 수밖에 없잖아요. 뭐 대충 그런 식의 생활을 시설에서 했어요.

그렇게 죽을 수는 없잖아요?

성람복지재단 투쟁에 직접 같이 하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은혜요양원이 성람재단 산하 기관이기 때문이예요. 결국 시설비리는 재단의 비리와 이어져요. 재단이 시설에 압력을 가해서 '기름값 절약해서 내게 가져와' 하면 시설은 복종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시설에서 나오는 밥도 형편없고…

강원도 철원지역은 무지 추운 지역이에요. 그런데도 불을 땐 기억은 잘 안 나는데…제 아내 얘기로는 하루 20분만 돌린대요.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계속 영하 10도, 20도 오르락내리락 하는데도 난방을 하루 한 번밖에 안 돌려주고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얼어죽었어요. 더군다나 장애인들은 움직임이 수월치 않기 때문에 근육 경도가 더 심해요. 수축과 이완 작용이 계속 원활해야 하는데 춥게 지내다 보니 근육 자체가 수축이 돼서 안 펴지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봄이 되어 날이 따뜻해지면 근육이 갑자기 이완이 돼서 죽는 거예요. 질병에 걸려도 치료가 불가능해서 죽고. 우리 방에서만 1999년인가 2000년인가…8명인가 7명인가 식구들이 있었는데 한겨울 되니까 병원에 입원하더니 안 오는 거예요. 4명 정도가… 방 보모한테 물어보니 병원에서 죽었다는 거예요. 그게 말이 돼요? 우리 방에 8명 중에 4명이 죽었다는 게 말이 돼요? 진짜 비참하더라고요. 그렇게 죽을 수는 없잖아요?

드러난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뿐
▲ 장애인 인권 활동가들이 종로구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장애인문화공간

저는 재단 이사장이 돈을 목적으로 시설을 지었다고 생각해요. 무엇 때문에 그러냐 하면, 재단 이사장이 장애인시설 원생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아무리 기업이라지만 한번쯤 들여다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수년 동안 그런 꼴 한 번도 못 봤어요. 와서는 사무실 가서 장부나 보고, 요양원 위쪽에 소 키우는 우사에나 갔다가 집에 가버리는 거예요. 그게 다예요. 이사장이 온다고, 방송해서 '원생들 옷 깨끗이 입혀라' 그래봤자 그것뿐이에요.

지금 한 요양원에서 27억인가 발각됐다고 하는데, 검찰에서 확인한 게 9억 얼마이고, 그거 빙산의 일각이에요. 은혜요양원 1년 예산이 100억이에요. 은혜요양원이 94년에 지어졌고, 지금이 2006년이죠? 그동안 비리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성람재단 이사장이 은혜요양원 말고도 13개나 시설을 갖고 있는데, 그 중 한 곳에서만 그만큼 드러났어요.

이렇게 농성하면서 시민들 중에는 응원해주시는 분도 있고, 먹을 것 사 갖고 온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 응원이 응원으로만 그쳐서는 안 돼죠. 결국 종로구청이 거둬들인 세금이 어떤 사람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들어간 거잖아요. 그 돈에 대해서 종로구민들이 나 몰라라 그러는 거잖아요. 내가 살고 있는 구청에서 국고보조금으로 들어간 돈이 엉뚱한 사람의 배를 채웠다, 그런데도 구청장은 재판이 끝나봐야 제재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하고. 검찰조사에서 다 나왔는데. 뭐 조사는 안 하겠다, 특별감사를 하겠다, 그러더라구요. 보건복지부, 구청…명백한 사건인데도 이렇게 두 손 놓고 있는 걸 보면, 이런 데 솔직히 재단과 유착관계가 없다고 보기 힘들다고 봐요. 그런데 믿을 수 있겠어요? 여기 농성장에 있는 사람들, 복지를 전공한 사람도 들어가고 장애인단체도 들어가고 그래야 진짜 감사가 되지 않겠어요?

장애인이 소비자가 되서 시설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우리 사회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지금까지 시설정책을 펴고 있어요. 노인들이 많아지면 양로원 증축해서 몰아넣고 중증장애인들이 많아지면 생활시설 지어 몰아넣고, 이게 다예요. 지역사회 내에서 노인이나 장애인들이 살기 편리하게 환경을 먼저 한 다음에 진짜 시설이 필요한 장애인이나 노인을 입소시켜야 하는데…그렇게 하면 시설에 솔직히 누가 가고 싶겠어요? 지금 보건복지부에서 수천억 들여서 시설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에요. 그런데 활동보조인 제도를 위해서는 105억밖에 못 내놓겠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정책은 시설정책이란 얘기 밖에 안돼요. 시설 아무리 지어도 전원 입소는 불가능해요. 원하지 않는 사람을 강제로 집어넣을 거예요? 말이 안되는 거예요. 시설정책을 펴기 전에 지역사회에서 먼저 환경을 바꿔야 하는 게 우선인데 그걸 꺼려한다는 거예요.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도 우리가 요구해서 했고, 활동보조인도 옛날에는 뭔지도 모르던 정부가 활동보조인 제도를 장애인의 권리라고 정해놓고…결국 정책이 바뀌어야 해요. 그래야 시설비리도 없어질 거예요.

장애인당사자들에게 진정한 선택권이 주어져야 해요. 시설장들에게 몇 백억씩 줄 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조금씩이라도 주고 자립생활 선택하게 한다면 시설비리 일어날 수가 없어요. 시설 안 가면 그뿐이고 시설 갔다가도 기분 나쁘면 나와 버리면 그만이면 시설이 돈을 벌 수 있겠어요? 못 벌어요. 장애인에게 그런 결정권이 주어진다면 결국 시설비리가 없어지는 구조가 되는 거예요. 삼성전자에서 휴대폰을 만들었는데 성능이 좋아봤자 소비자들이 선택 안 하면 망해요. 그것처럼 장애인이 소비자가 돼서 시설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시설선택 안 하면 시설은 문 닫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식으로 바뀌어야 하고. 장애인 당사자가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게 우리나라도 시행돼야 해요. 그렇게 하기 전엔 아무리 해도 시설비리는 일어나고 장애인 인권은 바닥 수준일 수밖에 없어요.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제19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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