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국시각장애인청년연합, 희망제작소, 전남장애인인권센터,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회 대표자 및 실무자들과 시각장애인 10여 명은 5일 인권위에 이같은 내용의 '지폐식별 차별 문제'에 대해 진정을 냈다. 이들은 또 이날 오후 한국은행 발권정책팀과 면담을 가질 예정이다.
시각장애인 91% '지폐 식별 불가', 80% '손해 본 적 있다"
한국은행이 발행하고 있는 지폐들은 볼록인쇄된 점의 갯수(1000원권 1개, 5000원권 2개, 1만 원권 3개)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식별이 가능하도록 해놓았다. 이는 신권과 구권에서 위치와 크기만 다를 뿐 거의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지난 1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전남장애인인권센터가 전국의 시각장애인 1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91%의 시각장애인들이 지폐에 인쇄되어 있는 점자로는 화폐의 액면가를 식별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응답자의 80%는 지폐의 액면가 식별이 어려워 지불 과정에서 손해를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손가락으로 지폐를 만져 액수를 구분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마모되지 않은) 새 지폐만 가능하다'는 대답이 60%를 차지했으며 '불가능하다'는 대답도 31%를 차지했다.
혼자서 지폐를 구분하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지폐의 크기로 구분한다'(55%)는 답과 '지폐를 지갑, 호주머니, 가방 등 장소를 달리하여 보관하고 정리한다'(36%)는 답이 다수를 차지했고 '지폐에 있는 점을 손가락으로 만져 지폐의 액면가를 구분한다'는 답은 4%에 불과했다.
새 지폐 점자표기 개선?…"잘 모르겠는데"
특히 장애인들이 느끼는 불편은 한국은행이 기존보다 점자표기가 더 강화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신권에서도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 지폐가 기존 지폐에 비해 점자표기 방법이 개선됐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93%는 '개선되지 않았다',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 중 95%는 '지폐 발행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적절한 개선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액면가에 따라 크기를 달리한다'(35%), '귀퉁이 모양을 달리 한다'(34%), '점자 방식의 개선'(21%) 등 다양한 입장을 내놓았다.
이번 설문조사에는 2급 이상 중증 장애인이 전체 105명 중 101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했으며 응답자의 연령은 20대 30명, 30대 28명, 40대 32명 등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연령대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한국이 세계 화폐의 점자표기 흐름 주도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은 지난달 11일 "신권은 대전맹학교 교사 6명에게 직접 테스트를 한 결과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며 "이들은 새 은행권의 권종별 가로길이 격차가 확대(5㎜ → 6㎜)된 것도 현재보다 액면 식별을 보다 용이하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또 한국은행은 "신권에 적용된 점자의 크기는 세계 각국의 점자 적용 사례를 감안한 것"이라며 "지폐에 점자를 채택하고 있는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의 심도가 가장 높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애인 단체들은 "한국은행이 테스트를 한 집단은 점자 식별의 보편적 수준을 가진 집단이라고 보기 어려렵다"며 "또 지폐를 낱장 또는 두 종류만 가지고 있는 경우엔 식별이 어렵다는 점과 신권·구권이 동시에 유통되는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현재 대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이 지폐의 가로 크기로 지폐를 구별하고 있는데, 신권 1만 원권(가로·세로 148*68mm)과 구권 1000원권(150*75mm)의 경우는 가로 길이가 2mm 차이로 거의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은 "도드라지는 입체감이 특징인 촉각 문자를 시각 문자 인쇄 방식으로 인쇄한 뒤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수채화를 촉각으로 감상하는 넌센스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허주현 전남지소장은 "화폐에 점자표기를 제대로 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며 "이런 현실은 오히려 한국이 이런 문제의 개선을 유도하는 흐름을 주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허주현 지소장은 "점자 개선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여러가지 따라올 수 있는 문제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에 대해 논의하자는 것"이라며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이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공론의 장을 통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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