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공방 중인 삼성그룹 이재용 전무에 대한 편법증여 의혹, 이른바 '에버랜드 사건'과 관련해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가 "기업범죄에 대해 형법을 적용하는 것이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하고 투자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재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조 교수는 23일 오후 서울 종로 동숭동 방송통신대학교 별관 2층에서 열리는 '삼성에버랜드 사건의 법적 쟁점' 토론회 발제문에서 "미국 법제도는 '징벌적 손해배상', '손해액 3배 배상제도', '주식벌금제도', '집단소송제도' 등 강력한 민사적 제재 방안을 갖고 있고, 형법상 '우편사기죄'(mail fraud)로 업무상 배임을 처벌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우편사기죄'라고 들어봤나?"
미국의 '우편사기죄'는 업무상 배임죄는 물론, 배임수재죄, 협박죄, 뇌물죄 등 각종 공무원 부패나 돈세탁범죄 등 '화이트칼라 범죄'를 처벌하는 데 사용되고 있고, 특히 '엔론 사건' 때는 재무담당이사(CFO)도 '우편사기죄'가 적용돼 처벌됐다고 조 교수는 지적했다.
조 교수는 "에버랜드 사건에서 저가발행의 핵심 이유는 경영판단과 무관한 탈법증여에 의한 경영권 승계였다"며 "절차상 여러 하자가 있으므로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될 여지는 애초에 없으며, 오히려 지배권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전환사채 발행은 그 자체가 무효의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에버랜드 사건'은 삼성 지배권 편법 승계 사건"
이날 토론회에서는 "법원이 에버랜드 사건에서 법리적 쟁점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게 된 본질을 파악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주로 제기됐다.
조승현 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이날 토론회 발제문에서 "삼성에버랜드 사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형식적 법리 논쟁이 아니라, 지분권 획득 전 과정에 있었던 진실들을 밝혀내는 것"이라며 "이 사건은 이재용 씨가 삼성의 주요 계열사들의 지분권을 직간접으로 획득해 나가는 과정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0년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43명의 교수 중 한 사람이기도 한 조 교수는 "모든 과정들을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에버랜드에 국한해서만 법리논쟁을 벌인다면 법학교수들이 이 사건을 고발한 취지가 퇴색되고 말 것"이라며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단순히 개별 회사의 전환사채 발행 가격의 적정성 문제가 아니라 삼성그룹 차원의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의 문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승룡 방송통신대 교수(법학)도 "에버랜드 사건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그렇게 심각한 학술적 논쟁이나 대립이 요구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박 교수는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발행과 관련해 열린 2차례의 이사회는 절차적 하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무효"라고 지적하며, 특히 "1심 판결에서도 확인했듯이 삼성에버랜드의 CB 발행은 오로지 제3자에게 경영권을 넘길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므로, CB 발행의 실질적 요건으로서의 정당성 내지 필요성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 소극적 주가 산정으로 불법 내부거래 방조"
김석연 변호사(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1심 재판부가 피고인들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배임'이 아닌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비판했다.
1심 재판부는 에버랜드 측이 CB 발행 당시 1주당 가격을 7700원으로 책정한 것은 '현저히 낮은 가격'이라고 인정했으나, "1주당 8만5000원의 가치가 있었다"는 검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결국 배임액을 특정하지 않은 채 특경가법에 비해 형량이 낮은 형법의 업무상 배임 혐의만 적용해 유죄 판결을 내렸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에버랜드의 경우 놀이공원, 골프장 운용, 급식 등이 주 영업으로, 부동산을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회사 특성을 고려할 때 '소득접근법'에 의한 주식가치산정은 부적절하다"며 "에버랜드의 주식가치는 기본적으로 자산가치법에 의해 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즉 당시 에버랜드의 경영상태가 나빴다 하더라도 에버랜드가 보유한 자산이 많은 만큼 그 자산에 근거한 기업 가치를 평가해 주당 가격을 산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변호사는 "법원의 이와 같은 태도는 검찰이 비상장 주식의 저가 발행, 혹은 거래와 관련된 형사사건의 경우 재산상 손해액 산정을 포기한 채 특경가법을 적용하지 않고 업무상 배임 혐의만 적용케 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다른 기업들도) 지배주주 등 특수관계인이 자신이 알고 있는 비상장기업에 관한 내부정보를 활용해 별다른 노력 없이 비상장주식 관련 거래로 막대한 부당소득을 챙기고, 그로 인한 손해를 계열회사로 떠넘기는 일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는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와 민주주의법학연구회(회장 임재홍 영남대 교수)가 주최한다.
에버랜드 사건, 11년 째 공방 중 '에버랜드 사건'이란 지난 1996년 10월 에버랜드 이사회가 주주배정 방식으로 CB 발행을 결의하고, 같은해 12월 이사회를 통해 CB 125만4000여 주를 주당 7700원에 3자 배정방식으로 이재용 씨 등 이건희 회장의 자녀에게 배정키로 결정한 사건이다. 이에 법학자 43명은 지난 2000년 "삼성그룹의 지주회사인 에버랜드 주식을 헐값에 이재용 씨에게 넘겨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편법으로 승계하고자 하는 불법행위"라며 검찰에 허태학, 박노빈 씨 등 당시 에버랜드 경영진을 고발했고, 검찰은 2003년 12월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두고 기소했었다. 그 이후 1심 재판은 2년 가까이 진행됐고, 지난 2005년 10월 1심 재판부가 "사실상 편법증여를 위한 CB 저가발행이 인정된다"며 허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박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특경가법이 아닌 업무상 배임을 적용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하고, 에버랜드 측도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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