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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논쟁 하고 싶지 않다. 사실관계 증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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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논쟁 하고 싶지 않다. 사실관계 증명하라"

'에버랜드' 재판부, 검찰에 '실체적 진실' 수사 압박

"1심 판결을 원용하지 말라. 1심 판결에 논리적 비약이 있다고 생각한다."
  
  20일 오후 '에버랜드 변칙증여 의혹 사건'에 대한 항소심이 열린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404호 법정. 재판부와 검사 간에 설전에 가까운 신경전이 벌어졌다.
  
  포문을 연 쪽은 재판부(형사5부, 이상훈 재판장). 재판부는 "검찰이 추가로 제출한 증거 중에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검사가 기소한 내용도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대로 판결을 내리면 형식적 재판에 그치고 만다"고 검사를 다그쳤다.
  
  에버랜드 항소심 재판부 "실체적 진실을 알고 싶다"
  
  1996년 에버랜드가 전환사채(CB)를 발행해 저가에 이재용 씨 등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의 전환사채에 대한 권리 실권이 필수적이었는데, 재판부는 기존 주주들이 실권하는 과정에서 '누가, 왜' 실권 결정을 했고 허태학·박노빈(당시 에버랜드 경영진) 피고인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밝히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당시 에버랜드는 장외에서 주당 최하 8만5000원으로 평가받는 자사 주식을 주당 7700원에 인수할 수 있는 조건의 전환사채 99억5400만 원어치를 발행한 뒤 이 중 97%를 이재용 씨 등 이 회장의 자녀 4명에게 넘겨 '편법증여' 의혹을 받았다.
  
  재판부는 "이번 재판의 피고인은 허태학·박노빈 피고인 두 사람이고, 재판부는 삼성그룹 차원에서의 공모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당시 에버랜드 주주들이 삼성그룹 계열사이거나 과거 한 뿌리였던 기업들, 또는 삼성그룹 임직원 출신의 개인들인 점을 감안하면 삼성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에 검찰 측은 "현재까지의 증거만으로도 허태학, 박노빈 피고인의 배임 혐의를 입증하는 데는 충분하다"고 응수했다. 전환사채가 주식 평가액에 비해 현저히 낮은 가격에 이 씨 남매에게 배정돼 에버랜드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혔고, 이 씨 남매에게 배정하도록 의결한 이사회도 적법성을 결여했기 때문에 배임 혐의의 입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검사는 "지금까지의 증거만으로도 두 피고인에 대해 업무상의 배임 혐의를 증명하고도 남는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당시 에버랜드 주주는 중앙일보, 한솔, 삼성물산, 제일모직, 제일제당 등이고 이 중 제일제당만 전환사채를 배정받았고 나머지는 실권을 했는데, 두 피고인이 당시 주주들이 실권을 할 것이라는 의식이 있었어야 배임 혐의가 적용된다"며 "검찰의 주장은 이재용 등에게 전환사채를 배정하기 위해 주주들이 계획하에 실권했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한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다.
  
  "실권 결정 누가 했는지, 실권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밝혀라"
  
  이에 다시 검사가 "1심 판결문만 보더라도"라며 1심의 유죄 판결을 언급하자,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원용하지 말라. 1심 판결에 논리적 비약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에서 검사와 법리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다"며 검사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는 항소심 재판부가 1심 재판부와 달리, 전환사채 발행 목적과 기존 주주들의 실권 등의 '저가 배정' 이전의 '공모' 과정, 혹은 '범의'(犯意)를 밝히지 않을 경우 허·박 두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반대로 '공모 과정'을 밝히면 이 회장 등에 대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1심에서는 "피고인들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 이재용 씨 등에게 에버랜드에 대한 지배권을 넘길 목적으로 적정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전환사채 발행을 공모한 점이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공모' 부분에 대한 사실관계 증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판결을 내린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에버랜드 편법증여 사건에서 이건희 회장,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등에 대해 검찰이 진행하고 있는 추가 수사 상황과 맞물려 있기도 하다. 검찰은 1심에서 허태학, 박노빈 씨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받자, 이건희 회장 등의 '공모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수사대상을 넓히고 당시 에버랜드 주주들을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도 "수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사를 통해 새로 드러난 사실을 알고 싶다"고 강조했다.
  
  "주인을 함께 처벌해야지, 부하만 처벌하는 건 의미 없다"
  
  한편 항소심 재판부가 '사실관계 소명'을 요구한 것은 검찰이 추가 수사시간을 벌게 해준 셈이 됐다. 검찰은 항소심 판결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자 이건희 회장,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등에 대한 소환을 서두르고 있었다. 당시 허태학·박노빈 피고인에 대한 기소가 공소시효 완료 직전에 이뤄졌기 때문에, 기소로 중단됐던 공소시효가 형 확정과 동시에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피고인 측 변호인들은 '빠른 재판'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이건희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가 이뤄지거나 증거 불충분으로 에버랜드 사건 관련자 모두 무죄가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번 재판부의 요구를 접한 한 법조계 인사는 "사실 허태학·박노빈 전 사장만을 처벌하는 것은 주인은 놔두고 명령을 수행한 부하만 처벌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며 "재판부는 처벌할 수 있으면 주인도 함께 처벌해야지, 그 밑의 부하들만 처벌할 수 없다는 뜻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의 '실체적 진실 규명' 요구에 검찰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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