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열린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사건' 관련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CB 실권 및 증여 과정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 사건은 1996년 에버랜드가 CB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기존 삼성 계열사의 주주들이 CB 인수를 포기하고 이건희 회장의 아들 재용 씨가 이를 인수한 일련의 과정이 삼성그룹 지배권을 재용 씨에게 편법으로 승계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나를 규명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조희대) 심리로 열린 허태학·박노빈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은 현명관 삼성그룹 전 비서실장과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등의 진술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이건희 회장이 이번 사건에 깊숙이 연루돼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에 따르면 현명관 삼성그룹 전 비서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에버랜드가 CB를 헐값으로 발행하기로 결정한 이사회에 참석해 기명날인한 것으로 돼 있지만 참석한 기억이 없다"면서 "비서실의 재무팀이 이 회장과 계열사 재산 처분을 모두 알아서 해 왔고 세 딸에 대한 48억 원 증여도 알아서 했다"고 진술했다.
이런 현 씨의 진술은 이 회장 일가와 계열사의 재산 관리 등을 이 회장의 지근거리에 있는 비서실의 재무팀이 총괄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결국 이 회장이 이번 사건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또한 검찰은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의 진술도 법정에서 공개했다. 검찰은 "홍 전 회장이 검찰에 출석해 '1996년 말 중앙일보가 CB 30억 원어치를 발행한 것을 모두 인수해 자신의 지분이 20%까지 늘어났지만 이를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는데 이듬해 초 이 회장 자택에 신년인사차 갔더니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더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즉 이건희 회장이 중앙일보의 지분 변동을 소상히 알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에버랜드의 지분변동도 마찬가지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 검찰의 추정이다.
검찰은 이같은 진술을 공개하면서 "26명의 주주들이 실권하는 등 주주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삼성그룹 비서실 재무팀이 직·간접적으로 치밀한 연락을 통해 진행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삼성그룹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지시나 의사를 따르지 않는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실상 이건희 회장을 이번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했다.
이에 대해 삼성의 변호인단은 "공모 주체가 누구인지 등 공모 과정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다"면서 "검찰은 막연한 추정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 회장 부자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가 임박한 상황에서 검찰이 이날 공판에서 이번 사건의 배후로 이건희 회장을 사실상 지목함에 따라 이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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