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청와대와 노동부 등 앞으로 KTX 여승무원의 불법파견 재조사와 관련한 의견서를 제출한 74명의 대학교수 중 한 사람인 조순경 이화여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부의 불법파견 재소사를 이틀 앞둔 이날 각자 전공도 다른 대학교수 74명이 자체적인 조사와 검토를 바탕으로 "KTX 여승무원은 불법파견이 확실하며 이들을 직접고용할 수 없다는 철도공사의 설명은 모두 핑계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발표했다.
<프레시안>은 이날 밤 이번 의견서 제출을 주도한 조순경 이화여대 교수와 전화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전공도 각자 다른 수십 명의 교수들이 KTX 여승무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경위와 향후 계획 등을 보다 상세히 들어봤다.
"철도공사 외압설 사실이라면 더 이상 학문할 필요 없겠다 싶었다"
프레시안 : 74명의 교수들이 모여 KTX 여승무원 문제에 대한 의견서를 오늘 청와대 등에 냈다. 각기 전공 분야도 다른 교수들이 어떻게 모여 이같은 작업을 벌이게 됐나?
조순경 : KTX 여승무원들의 문제를 언론을 통해 접하면서 다들 많이 답답해했다. 이에 각자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고 마음을 모아 KTX 여승무원과 철도공사 소속 정규직 열차팀장을 만나고 자료를 찾는 등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의견서를 제출하게 됐다.
프레시안 : 어떤 부분이 답답했다는 얘기인가?
조순경 : KTX 여승무원들의 싸움은 이미 너무 오래 됐다. 조사 과정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었지만 철도공사는 KTX 여승무원들을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철도공사가 6개월이 넘도록 질질 끌면서 계속 무시 전략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11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KTX 여승무원들의 성차별에 대해 권고했지만 철도공사는 그런 일 없다고 하더라. 국가기관에서 전문인력들이 몇 개월 간 조사해서 판정한 것임에도 공기업이 그것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
더욱이 최근 서울지방노동청의 조사 발표가 연기되는 과정에 철도공사의 로비 및 외압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 얘기를 처음 듣고 만약 철도공사가 '노동부 윗선', 즉 청와대로 의심가는 곳에 외압을 행사한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앞으로 연구할 필요가 없구나' 싶었다. 그런 외압과 로비가 먹혀들어간다면 지식인들이 공부해서 논리를 만들어 무엇에 쓰며, 법은 대체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인가?
197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도 아니고 소위 참여정부라는 곳에서 이런 일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 황당한 것은 철도공사가 로비 의혹은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승무원들도 로비하는데 왜 우리는 입장을 밝히면 안되냐"고 철도공사 관계자가 말했다는데, 사실 그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른 문제다. 승무원들은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절대 철도공사처럼 비밀리에 하지는 않는다.
"모두 정규직화해줘야 한다고? 철도공사는 문제의 핵심 알기나 하나?"
프레시안 : 철도공사는 KTX 여승무원들이 불법파견 판정이 나면 청소·매표 등 마찬가지로 외주화된 다른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모두 정규직화시켜줘야 한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조순경 : 그런 얘기는 거짓 담론이다. 혹자들은 KTX 여승무원들을 직접고용 정규직화 시켜주면 철도공사 내의 다른 외주업체 소속 인력들도 모두 해줘야 하고, 나아가 모든 공사의 비정규직들을 다 정규직화 해줘야 하며, 민간 기업에까지 그 파장이 미쳐 결국 우리 경제가 망할 것처럼 얘기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논리적으로도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KTX 승무원들은 철도공사 정규직 소속의 열차팀장과 밀접하고 유기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현행법상 도급을 줄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불법파견'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철도공사가 계속 그런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이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도 아직 파악을 못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KTX 여승무원은 불법파견이라 문제인 것인데, 다른 외주인력도 다 해줘야 한다는 얘기는 철도공사 내의 모든 외주인력이 불법파견이라는 것과 같은 얘기인 것이다.
"열차팀장과 대화 없이 승무업무 수행 못한다…명백한 불법파견의 근거"
프레시안 : 29일 재조사 발표를 앞두고 있기는 하지만 노동부는 이미 한 차례 불법파견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런데 KTX 여승무원들이 불법파견이 맞다고 확신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조순경 : 현재 파견직을 사용하려면 그 업무는 독립적인 업무가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KTX 여승무원들의 노동 과정을 잘 살펴보면 전혀 독립적인 업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승무 업무라는 것 자체가 서비스, 특히 비상상황에서의 안전 서비스를 승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철도공사 소속의 열차팀장과 외주위탁 업체 소속의 승무원이 유기적인 지휘명령 관계에 있어야만 한다.
만약 열차 안에 응급환자가 발생했다고 해보자. 불법파견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승무원은 응급환자의 발생 사실을 절대 열차팀장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 또 열차팀장 역시 승무원에게 응급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지시도 내려서는 안 된다. 웃기는 상황 아닌가?
이처럼 법 전공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보더라도 너무 명백한 것을 가지고 철도공사가 계속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얘기는 철도공사가 승무업무 자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것 둘 중의 하나다.
"'제대로 교육받고 싶다'는 여승무원들 바람, 외주위탁으로는 못 이뤄져"
프레시안 : 조사 과정에서 철도공사 소속의 열차팀장도 만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조순경 : 조사 과정에서 KTX 여승무원 30여 명, 그리고 아주 어렵게 열차팀장 한 명을 인터뷰 했다. 그 열차팀장은 지금은 KTX가 새것이라서 괜찮지만 기계가 조금씩 노후되기 시작하면 고장이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크며 인적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하더라.
민세원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도 같은 얘기를 했다. 전직 항공사 스튜어디스였던 민세원 지부장은 승무원은 안전사고 발생에 대비한 행동이 몸에 배어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KTX는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이기 때문에 일반 열차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KTX 개통 이후 대형 사고는 다행히 발생한 적이 없지만 자잘한 사고들은 많았다.
그런데 현재는 승무업무 자체가 위탁으로 이뤄짐으로써 그런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KTX 여승무원들을 올해 초 무작정 찾아가 만나봤을 때 공통적인 얘기가 "교육을 제대로 한번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문성을 갖고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승무원들의 염원이었다. 그런데 현재처럼 외주 위탁업체에 승무업무를 맡겨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수가 없다.
KTX 승무원들을 담당하는 외주 업체가 철도유통(홍익회)이었을 때는 위탁비를 1인당 책정된 금액을 곱해서 지급했다. 그런데 관광레저로 그 업무가 옮겨진 뒤에는 위탁방식이 '포괄계약 방식'으로 바뀌었다. 인원수별로가 아니라 위탁비를 하나로 묶어 지급하는 것이다. 결국 관광레저는 사람수를 줄여 이윤을 많이 남기려고 할 수밖에 없고 그런 구조 속에서 교육 같은 것은 절대 이뤄질 리가 없다.
예전에 한 번은 갑자기 열차가 고장이 나서 손님들을 다른 열차로 갈아태워야 할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철도유통은 승무원들에게 물건을 챙기라고 요구하고 철도공사에서는 사람을 챙기라고 닥달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런 혼란 때문에 고스란히 승무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최근에는 심지어 여승무원들에게 객차 안에서의 각종 판매 업무까지 담당하라고 한다고 하더라. 많이 팔수록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이다.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음료수를 팔다가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과연 대처할 수 있을까?
"연봉 7400 이상 정규직의 성과급만 갖고도 충분히 고용하고 남는다"
프레시안 : 철도공사는 재정적인 문제도 얘기한다. 재정적자와 누적된 부채 등으로 인해 정규직 고용이 힘들다는 것이다.
조순경 : 재정 문제로 인해 정규직 고용이 힘들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대부분의 공기업이 기획예산처에서 정해 준 정원을 채우지 않는다. 사람을 덜 쓰고 남은 인력비를 기존의 정규직들이 나눠 갖곤 한다. 철도공사도 현재 정원보다 현원이 적다.
또 2005년 임금인상률을 보면 연봉 7400만 원 이상 받는 3급 이상 상위직의 임금인상률이 가장 높다. 그런데 사실 이 사람들은 생애주기를 봐도 그렇고 연봉의 규모를 봐도 그렇고 기예처에서 주는 공기업 경영평가로 받는 성과급을 안 받아도 되지 않느냐. 그 돈으로 KTX 승무원 정규직으로 충분히 고용할 수 있다.
KTX 여승무원 문제를 못 풀고 이렇게까지 끌고 온 것은 철도공사의 경영의 무능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 노사관계를 이런 방식으로 푸는 것도 상당히 무능한 것이다.
프레시안 : 철도공사의 속내는 승무원을 비정규직으로 사용함으로써 예쁘고 젊은 여성 인력을 계속 사용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조순경 : 비용 문제는 사실 전혀 해당이 안 되니 충분히 그런 이유일 수 있다. 젊은 여자들을 예쁠 때 사용하고 버리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발상은 앞서도 여러 번 강조한 승무업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철도공사가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여러 안전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굉장한 숙련이 필요한데 철도공사가 스스로 그런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숙련된 승무원은 전자제어 시스템이 고장나더라도 다음 역이 어디쯤인 줄은 알고, 바퀴소리만 들어도 기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분명한 걸 아니라고 주장하면 그건 1970년대에나 있던 코메디"
프레시안 : 29일 발표될 노동부 재조사에서 KTX 여승무원들이 불법파견으로 판정되더라도 바로 철도공사 소속의 정규직이 될 확률은 거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민간기업이긴 하지만 현대자동차도 그랬다. 철도공사가 또 무시하면 그만 아닌가?
조순경 : 그럴 수 있다. 철도공사가 안 듣는다면 KTX 여승무원들을 비롯해 여성계, 학자들 등등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인권위에서 권고까지 했는데 철도공사가 계속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철도공사는 사실 전체 공사 노동자 3만 여 명 중 여성 비율이 5%밖에 안 된다. 이건 공기업 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으로 대표적인 성차별 기업이다.
프레시안 : 29일 서울지방노동청의 조사 발표가 어떻게 나올 것으로 보는가?
조순경 : 이미 인권위의 권고가 암묵적으로 '불법파견 판정'을 암시했다. 철도공사를 시정 주체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사실 불법파견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돌연 상황이 달라져버렸다. 서울노동청이 법률자문단 회의를 연기하고 민변 소속 변호사의 자문위원 위임을 해촉했다. 또 한 쪽에서는 철도공사의 외압설까지 나온다. 물론 철도공사도, 청와대도 외압·로비설을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률 용어로 경험칙상 갑자기 비밀스럽게, 전혀 합리성도 없이 모든 상황이 뒤바뀌는 것은 외압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발표 날짜를 통해 추론해봤을 때도 결론이 불법파견이 아닌 것으로 나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정부가 최근 여론상 좋지 않을 내용은 늘 추석, 성탄절 등 연휴 직전에 발표하곤 하기 때문이다. 또 승무원들을 강제로 진압하고 영장을 청구하는 등 요 며칠 분위기가 여승무원들에게 그리 좋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나 명확한 상황에서 서울노동청이 불법파견이 아닌 것으로 판정한다면 그건 '정치적 판단'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노동부는 이미 한번 판정했던 일을 다시 조사하겠다며 유례가 없는 재소사를 스스로 들고 나온 상황이다. 정말 정부가 외압 때문에 너무나 명백한 것을 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1970년대에나 있었던 코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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