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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으로 하늘 가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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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손바닥으로 하늘 가릴 수 있을까"

[인터뷰] 민세원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

대한항공 승무원에서 KTX 승무원으로, 그리고 다시 KTX열차승무지부장으로. 그리고 10일로 224일째 벌어지고 있는 KTX 여승무원 파업을 이끌기까지 민세원 씨의 경력은 파란만장하다.

노동법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잘나가는 대한항공 승무원 출신의 KTX 여승무원. 그런 경력 때문에 KTX 개통 당시부터 이런 저런 언론 인터뷰를 참 많이 했던 그가 이제 비정규직 고용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내는 전문가가 다 됐다.

긴 추석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철도노조 서울본부에 자리잡은 KTX 여승무원들의 보금자리에서 만난 민세원 지부장은 "차근차근 쌓아 와서 그런지 자신이 변한 것에 대한 충격은 없다"면서도 "입사 초기에 하라는 대로 방긋방긋 웃으면서 인터뷰 하고, 시키는 대로 다 하던, 그 모습으로 지금도 살고 있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때로는 후회한 적도 있었지만 투쟁을 포기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그래서다.

"아, 정말 살 수 없는 땅이었구나…"
▲ 민세원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 ⓒ프레시안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더 기대도 컸던 노동부의 불법파견 재조사. 그러나 지난달 29일 노동부는 "100% 합법은 아니지만 종합하면 적법파견"이라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그 발표를 접한 뒤 200일 이상 파업을 벌이던 '질긴' 여승무원들도 공황상태에 빠졌었다.

그렇지만 민 지부장은 "KTX 승무원들에게 조그만 희망과 비전을 줄까 무서워서 이철 철도공사 사장이 신경을 쓰고, 정부가 판단조차 못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아, 정말 살 수 없는 땅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그러나 결국은 우리가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민 지부장은 이번 발표가 긴 추석 연휴 기간, 거센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승무원들 스스로 파업을 그만둘 것을 기대하고 나온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오랜 파업이 힘겨워 그만두겠다는 조합원들에게 "같이 극복해보자"고는 해도 "안 된다"고는 못했던 민 지부장이 "이번만큼은 그 자리에 그냥 있으라"고 보다 강력한 어조로 조합원들을 설득했다.

세상 사람들은 '힘센 놈이 장땡'이라고 말하지만 "손바닥으로 계속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고 얘기하는 민세원 지부장. 그는 "더욱이 정규직 노조의 지원, 언론의 주목, 포기하지 않는 조합원들이라는 3박자가 잘 맞아떨어지고 있는 경우인 KTX 승무원들이 못 이긴다면 이 땅 노동운동의 희망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국정감사를 거치면서 다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려고 하는 KTX 여승무원들. 그들이 노동부 재조사의 충격을 털고 일어서 민 지부장의 믿음 대로 승리할 수 있을까. 민 지부장과의 인터뷰는 KTX 여승무원들의 끝나지 않은 싸움을 실패로 단정 짓기는 아직 성급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다음은 이날 진행된 인터뷰 전문이다.

"정부·철도공사, 우리에게 희망 주는 게 두려웠나"

▲ ⓒ프레시안

프레시안
: KTX 여승무원들의 파업이 어느덧 200일을 넘긴 지 오래다. 처음에 파업을 시작할 때는 이렇게 오래 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고들 한다.

민세원 :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더라. 이렇게 오래 파업을 하다보니 조합원들이 건드리면 눈물이 툭 터져나올 정도로 다들 힘든 상황이다.

노동부의 불법파견 재조사에 대해 워낙 기대가 많았기 때문에 지금 더 그렇다. KTX 여승무원의 경우 불법파견이라는 근거가 많아 조합원들이 불법파견으로 판정이 날 것이라고 100% 확신했다. 이렇게 명백한 사안에 대해 뒤집힐 줄은 상상을 못했다.

아마 정부는 추석 연휴 전에 그런 발표를 해 긴 연휴 동안 집에 다녀오면서 승무원들이 스스로 포기할 것으로 기대하고 무리하게 적법 판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된다.

프레시안 : 지난 29일 노동부의 발표를 접한 직후에 심정이 어땠나?

민세원 : 간부들도 일부는 예상했을 테지만 저는 안 될 거라는 느낌을 많이 갖고 있었다. 법률 자문단 회의가 예정돼 있었던 9월 18일 이후 철도공사의 로비에 의해 정부가 조사 결과 번복을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제가 삭발도 하고 승무원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녔지만 그런다고 이 판을 뒤집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발표를 보고 화가 나기는 했지만 답답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이 이후에 어떻게 할까'였다. 개인적으로 분노와 전의는 한층 더 높아진 것 같다.

사실 재조사 발표는 KTX 승무원들에게 어떤 결과는 결코 아니었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는다고 해서 직접고용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판단일 뿐이었다. 그런데 KTX 승무원들에게 조그만 희망과 비전을 줄까 무서워서 이철 사장이 신경을 쓰고 정부가 판단조차 못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아, 정말 살 수 없는 땅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연휴 이후에 국정감사 등을 거치면서 다시 초점이 잡힐 거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조합원들에게 그만두더라도 지금은 움직이지 말고 국정감사까지 지나고 스스로 다시 판단해보라고 얘기했다.

"입사 당시 꿈에 부풀어있던 동료들, 하루가 다르게 빛을 잃어갔다"

프레시안 : KTX 개통 당시에는 '지상의 스튜어디스, KTX의 꽃' 등으로 불렸던 KTX 여승무원들이 이제 'KTX의 전사, 비정규직의 대명사'가 됐다. 본인 역시 개인적으로 그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했을 것 같다.

민세원 : KTX 승무원이 되기 전에 대한항공에서 승무원으로 5년간 일했다. 건강이 너무 안 좋아져서 그만둔 후에 건강을 회복하고 다른 직장도 다녀보다가 KTX 승무원이 됐다.

당장은 계약직이었지만 KTX가 존재하는 한 승무원은 필요한 만큼 정규직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더욱이 항공사 승무원도 최근 2년 인턴제로 운영하고 있어 그런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입사 후 교육과 개통을 거치면서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문제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입사 당시 꿈에 부풀어 있던 동료들이 하루가 다르게 빛을 잃어갔다.

2005년 노조를 만든 후 여러 문제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려고 하다 보니 모든 문제가 철도유통(구 홍익회)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철도공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철도공사에 직접고용 되지 않는 한 이 모든 문제가 절재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프레시안 : 원래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민세원 : 저를 비롯해 현재 노조 간부들 중에 학생운동 하나 해 본 사람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대학 들어가자마자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먹고 살기가 너무 바빴다.

프레시안 : 긴 싸움의 과정에서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만두는 조합원들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민세원 : 현실적인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그만둔 친구들이 많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그런 친구들은 나중에 우리 문제가 해결됐을 때 같이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다. 조합원 중 일부는 본인들이 너무 치열하고 힘들게 싸우고 있어서 오랫동안 그 고통을 함께 하지 않은 사람이 함께 복직되는 것에 대해 공감대가 많지는 않다.

"국민 의식 수준 이대로면 10년 내에 모두 비정규직 된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외국어 실력도 다들 뛰어나고 아직 젊고 예쁘니 파업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에 취직하려고 하면 가능한 것 아니냐는 말도 많다.

민세원 : 외국어 잘하고 예쁜 사람은 많다. 그러니까 사용자들이 "너희들 없어도 승무원으로 일할 사람은 줄 섰다"고 하는 것이다. 이제 와서 그만두고 다른 직장에 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몰랐으면 몰랐지 알고 난 뒤에 똑같이 살 수 있을까.

대학 졸업한 수재들도 그 간단한 근로기준법이나 노동법을 몰라서 사용자에게 당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제도권 교육은 '질 좋은 소모품'을 생산하는 데 여념이 없는 것 같다. 공교육에서도 얼마든지 노동법이나 근기법을 가르칠 수 있지만 안 한다. 그저 소모품으로 만들어져서 '비정규직이라도 그게 어디니', '나는 70만 원짜리 비정규직인데 너는 100만 원짜리 비정규직이라 좋겠다', '100만 원이나 받으면서 왜 데모질이니'와 같은 의식 수준을 갖고 살아간다.

국민들 스스로 그 의식 수준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지금은 여성이 대부분 비정규직이지만 10년 안에 남녀 안 가리고 결국 다 비정규직이 될 것이다. 내가 사용자라고 하더라도 양심이 없다면 그렇게 할 것 같다. 노예처럼 부리면서도 재계약을 들이밀면 숨 죽이고 일해 주는데, 그걸 왜 마다하겠나?

대한항공 그만둔 다음에 여기 저기 많이 지원할 때만 하더라도 나 역시 잘 몰랐다.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여성 노동자의 경우 여성성을 활용하기를 원하는 곳이 전부였다.

결국 다른 곳에 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결국 승리할 때야 비로소 30대, 40대, 50대가 되더라도 당당하게 노동자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투쟁이 실패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포기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프레시안
: 정말 이길 수 있다고 믿나?

민세원 : 그렇다.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런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민세원 : 글쎄, 일단은 지금까지 싸워 온 과정에서 그런 믿음이 생겼다. 불법파견 재조사 결과를 넘어서면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아무리 권력과 힘이 자본의 편에 서 있어도 많은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스르면서 언제까지나 힘만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열심히 싸워서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정당성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 아무리 정부라 하더라도 계속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힘센 놈이 장땡이라고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우리는 많은 조건이 잘 받쳐주고 있다. '대공장'이라고 불리는 정규직 조합원으로 이뤄진 철도노조에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였고 어쨌든 우리 투쟁을 지원해주고 있다.

또 언론에서 우리처럼 주목해 주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기에 200일이 넘도록 포기하지 않는 조합원들이 있다. 이렇게 3박자가 다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이런 환경을 가지고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이 땅에서 노동자 투쟁이라는 것이 더 이상 비전이 없는 것 아닌가 싶다.

"외주위탁은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무의미하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철도공사에서 정부의 재조사 발표 후에 관광레저 소속의 정규직 채용 기회를 주겠다고 얘기했다.

민세원 : '외주위탁 정규직'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사실 KTX 승무원의 문제도 외주위탁됐기 때문에 비롯된 것인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나.

국민들에게도 바라는 것이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편견을 버려주셨으면 좋겠다. 절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능력이 없어서 싸게 부려 먹히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적자가 심한데 모두 정규직을 사용하면 그 인건비를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얘기는 사용자나 정부는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스스로 노동자인 국민들은 그런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지부장을 맡은 뒤 1년 6개월이 지났다. 변한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랄 때는 없나?

민세원 : 지난 시간 동안 참 교과서대로 차근차근 공부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의 변화에 대해 충격은 없다. 그런데 최근에 입사 초기 모습을 보다가 좀 놀랐다. 그 때는 '어떻게 저렇게 아무 것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 방긋방긋 웃으면서 하고 있을까' 신기했다. 지금까지도 그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지부장으로 살면서 후회한 적도 물론 있다. 현재 체포영장이 나와 바깥 활동을 못하고 갇혀 있는 상태인데 그렇다 보니 마음까지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왜 내가 지부장을 맡았을까'라고 푸념도 해봤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얻은 것이 더 많았다. 30대를 넘어설 때까지도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목표가 없어 늘 공허했다. 그런데 투쟁을 하면서 심신은 많이 고통스러워도 그런 공허함은 사라졌다. 또 이 투쟁을 하기 전에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많이 배웠다.

지금은 KTX 승무원만을 위한 일을 하고 있지만 이 친구들이 잘 되고 나면 좀 더 광범위하게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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