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를 위한 전쟁'과 같이, 너무나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음모론'으로 치부되어 온 내용들은 잠시 접어두자.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게 된 표면상의 명분들-후세인과 알 카에다의 연계, 대량살상무기 개발·보유, 테러 확대 방지 등-이 모두 거짓이었음은 이 <프레시안>의 기획을 통해, 아니 그보다 훨씬 전에 이미 입증됐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고 거기서 파생된 수많은 사건들이 꼬리를 물면서 우리는 그 사건이 최초에 왜 일어났는지를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 같은 게 그렇다. 전쟁이란 사건은 어느새 '그냥 거기 있는 일'이 돼버리고 파생 사건들에 매몰돼 사태의 근원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지각력은 무뎌지곤 한다.
***자이툰 부대 파견 이유, 이라크 침공 명분과 '쌍둥이'**
자이툰 파병에 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최초 파병안 제출과 김선일 씨 사망 당시 떠들썩하던 파병 찬반 논란은 이라크가 우리의 뇌리에서 멀어지고 자이툰의 주둔이 '거기 있는 일'이 돼버리면서 더 이상 논의의 테이블에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가 1000명의 병력을 감축하되 주둔 기간을 1년 연장하기로 하고 국민의 대의 기관인 국회에 이에 대한 동의를 요청하려는 이 시점에, 우리가 왜 자이툰을 파병했고 그 목적에 부합한 성과가 있었는지를 따져보는 일은 파병연장안을 판단하는 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절차다.
우리는 왜 자이툰을 이라크로 보냈는가. 이 역시 '한미 동맹의 강화'라는, 측정할 수 없고 증거도 댈 수도 없는 이유를 제외하고 -앞선 기획기사에서 이미 증명됐다- 액면의 이유만 댄다면, 이라크 재건을 지원하고 전후 복구 특수를 잡기 위해서다. 곧바로 따져보자. 과연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의 재건을 지원했고 우리 기업들은 이라크 복구 특수를 누리고 있는가.
***'믿거나 말거나'식 자료…'부풀리기' 의혹도**
그러나 재건 지원의 허와 실을 따지기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커다란 걸림돌과 맞닥뜨린다. 언론에 대한 심한 접근 통제와 국방부 발표의 신뢰도는 논외로 하더라도 국방부가 그나마 실적을 보고하는 각종 수치의 일관성이 심각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믿어 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자료를 봐도 도대체 뭘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국방부에서 이틀 차이로 발표된 '자이툰 부대 활동/성과 보고서'(2005.9.15 황의돈 전 자이툰 부대 사단장 작성)와 '해외 파병부대 현황과 주요 활동'에 관한 국정감사 자료(2005.9.17 국방부 작성)를 보자. 총 장비 지원 실적이 보고서에는 7만 점, 국감자료에는 2만 점으로 돼 있다. 보고서에서 인도 지원분을 제외하고 치안유지 지원분(1만여 점)만 따지더라도 1만 점의 오차가 있다. 황의돈 전 사당장이 7월에 작성한 '임무수행 결과 보고서'에는 '치안유지 지원'이 17만8000여 점으로 돼 있어 2개월만에 16만8000여 점이 줄어드는 기현상도 목격된다.
자이툰 부대가 자랑하는 '다기능 민사작전'인 '그린 엔젤 작전'의 경우 보고서에는 51회, 이틀 뒤 국감자료에는 41회로 돼 있어 10회의 오차가 발견된다. 의료지원 실적에서 나타나는 오차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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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으로 책정된 재건 지원 예산 규모-주둔 비용의 고작 10%만을 차지해 주둔의 목적을 무색케 하고 있다- 역시 들쭉날쭉해 3개월 내에 최소 65억 원 이상의 오차가 발생하는데 그마저도 그 명세와 지출 내역등은 2005년 국정감사에서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재건 지원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학교 신축 실적도 아리송하다. 지난 7월 28일 국회에 보고된 보고서에 따르면 56개소의 경제개발 지원활동 중 대규모 사업인 학교 신축은 13개소였다. 그러나 그간 나온 국방부 보도자료나 홍보자료 등을 통해 실제 확인할 수 있는 공사는 세비란 마을 중등학교, 토락마을 중학교, 카우라반 마을 학교 등 3개소, 약 22억 원 상당의 공사가 전부다.
재건의 또다른 상징인 자이툰 막사 병원은 모호한 실적 수치도 문제지만 '지역사회와 협력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는 개발원조의 ABC도 고려치 않은 지원이라는 지적이 많다. 자이툰 막사병원은 아르빌의 낙후한 병원과는 상관없이 '따로따로' 진료만을 하고 있어 자이툰 부대의 '인기'는 역설적으로 현지 의료시설들의 궁핍을 심화시키고 있다.
***정체불명의 군사 양성…누구 향해 총구 겨눌지 몰라**
재건 지원의 또다른 축인 아르빌 민병대 훈련은 규모와 재원, 효과 등 여러 측면이 안개에 가려 있다.
국방부는 지난 5월 이라크 주둔 사단급 이상의 다국적군 계획에 따라 책임지역 내 치안 전력 양성에 필요한 교육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자이툰 부대가 2월부터 6월까지 경찰과 방위군 요원을 양성해 1기에서 235명을 배출하고 2기 166명을 훈련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 국감자료나 국방부 보고서에는 이와 관련한 지출 내역이나 2005년 전체 기간동안 양성된 병력 수에 관한 보고는 완전히 누락돼 훈련은 어떻게 진행됐으며, 수료 후 어느 세력을 위해 복무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들의 정체에 대한 단서는 미국 의회 보고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데, 이 보고에 따르면 양성된 병력은 '이라크에서 유일하게 독립적인 작전이 가능한 1개 대대'에 해당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 이라크 정규군인지조차 불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쿠르드 민주당의 사병조직인 '제르바니'라는 사실로, 이들에게 지급된 장비나 물품에 대해서는 엄밀한 모니터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파병국은 '쪽박', 비파병국은 '특수'…'본전'도 못 찾는 파병**
자이툰 파병의 두번째 이유인 '재건 특수'는 어떠한가.
정부는 지난해 11월 24일 국내 건설사들에게 이라크에 수주활동을 위해 입국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현재 아르빌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기업은 거의 없고 다만 자이툰 부대에 납품하는 '가나 캐이터링' 등의 기업이 자이툰 부대 운영 유지를 위한 경제활동만 하고 있을 뿐이다.
2005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자이툰 부대 내 코리아센터에 상주하는 14개 업체와 기관은 아르빌 재건 수주와는 무관하고 주로 아르빌 주둔지 납품 등에 종사하는 업체들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자이툰 부대 주둔 이후 이라크 내 한국 기업인들의 경제활동은 위축됐고 정부 역시 안전상의 이유로 강력히 제한하고 있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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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인명 사고 발생시 안게 될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한국 기업이 아르빌 사라딘 대학 신축공사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불허했고, 아르빌 쿠르디스탄 재건 박람회에서도 한국 기업 부스를 2개 배정 받았는데도 참가를 불허했다. 이처럼 우리 정부의 강력한 통제 때문에 아르빌 자치정부의 재건 사업 발주는 우리 기업들에게 접근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전쟁 특수를 차지하는 나라는 따로 있다. 우리 나라가 이라크 주둔에 따른 안전상의 문제로 건설, 자동차 등 기존 이라크 주력 수출 업종까지 이라크 진입이 불가능해진 반면 중국, 프랑스, 독일, 터키 등 이라크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던 국가들은 이라크 본토가 아닌 쿠르드 지역에서나마 활발한 경제활동을 펼치고 있다.
'파병은 곧 돈'이라는 파병론자들의 주장과는 정 반대로 파병국은 '쪽박', 비파병국은 '특수'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감축 사실 알았냐 몰랐냐가 그리 중요한가**
자이툰 파병의 대표적인 명분이 이처럼 '성과 측정 불능' 혹은 '성과 없음'으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파병 재연장 동의안은 23일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그러나 1000명 감축안만 있을 뿐, 그간의 성과를 되짚어보거나 재연장의 필요성을 따지기 위한 국회 청문회나 특별 국정감사가 필요하다는 식의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자이툰을 두고 최근 가장 논란이 됐던 게 있다면 1000명 감축을 미국이 알았냐 몰랐냐 따위의 언론 보도뿐이었다.
정작 논의의 중심에 있어야 할 쟁점은 간 데 없고 '한미 갈등 부추기기'식의 논란만 난무하는 가운데 '재건 지원' '경제 특수'의 허구는 잡히지 않는 신기루가 되어가고 있다.
* 보고서 작성의 실무를 담당한 '이라크모니터팀'은 파병반대 운동에 참여해 온 평화활동가들로 이라크 점령 상황 및 자이툰 부대 모니터를 위해 2005년 1월 이라크 모니터 팀을 구성, 2월 2일부터 주례 이라크 모니터 보고서 발간해 왔다. 대항지구화행동 이지은, 사회진보연대 정영섭, 이라크평화네트워크 지영, 참여연대 강이현·이태호, 통일연대 윤지혜, 평화네트워크 최민·이주영 씨 등이 그들이다.
▶ 이라크모니터팀 보고서 전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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