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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몇년간 더 고생합시다"?

<데스크 칼럼> 12월20일자 조선일보의 '두 얼굴'

지금으로부터 5년전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이긴 다음날인 1997년 12월 19일 조선일보의 사설 제목은 "이제 나라를 생각하자"였다. 선거기간중 나타난 대립과 갈등을 깨끗이 잊고 대화와 타협으로 IMF위기에 처한 나라를 살리자는 주장이었다.

***5년전 신문과 '붕어빵'**

그로부터 5년이 흘러 조선일보가 밀었던 이회창 후보가 또다시 패한 직후인 2002년 12월 20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盧당선자 '분열의 상처'부터 아물려야'였다.

"이번 선거를 통해 뚜렷이 부각된 세대간 성향과 가치관 차이는 그것이 조화롭게 승화되기만 한다면 국가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노ㆍ장ㆍ청(老壯靑)이 서로를 백안시할 정도로 세대간 분열이 고착화된다면 역사는 퇴행할 수밖에 없다."

"노 당선자는 무엇보다 먼저 선거과정에서 심화된 우리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는 데 힘과 지혜를 쏟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허심탄회한 자세로 패자와 그를 지지한 층을 성심껏 포용해야 한다."

조선일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면을 다음과 같이 만들었다.

큰 제목: 노무현 대통령 당선
작은 제목: "나를 반대한 분들까지 포함/ 대화ㆍ타협의 새시대 열겠다"

20일자 조선일보는 5년전 조선일보의 '붕어빵'이었다.

***내면은 '적개감과 울분' 대단해**

노무현 당선자에게 '분열의 상처'를 아물려달라는 저자세의 주문을 한 20일자 조선일보의 내부 지면은 그러나 여전히 '분열'적이었다.

문화일보에서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긴 뒤 쓴 '국부 이승만' 시리즈로 일약 유명해진(?) 이한우 논설위원은 이날 12면에 '박정희와 3김을 넘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오늘은 포스트(後) 3김시대가 시작되는 첫날"이라고 문구에서도 읽을 수 있듯, 이 칼럼은 대선 결과를 보고 쓴 노무현 차기정권에 대한 일종의 주문 성격의 글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우회적 적개감과 울분의 연속이었다.

"한국의 진보랄까 좌파진영은 박정희의 유산 중에서 반드시 버렸어야 할 집단주의 문화에 스스로 깊이 물들어 있다. 걸핏하면 '그것은 무슨무슨 이데올로기'라고 남을 비판하면서 정작 그들은 '진보' 이데올로기, '민족' 이데올로기, '평화'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돼 있다. 한 줌도 안되는 교조(敎條)에 매달려 자신들과 조금만 다르면 '수구'요, '반(反)민족'이요, '전쟁광'이다."

"그런데도 남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는 '안티'자를 붙여 매도한다면 그건 이미 스스로가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돼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박정희의 부정적 유산을 잇는 것이라면 당장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조선일보의 속내가 어떤가를 보여주는 글이었다.

***"이번 선거는 적화세력과 체제유지 세력간 대결"**

조선일보의 행보는 5년전에도 그러했듯 이번 대선기간중 언론계는 물론, 각계의 최대 관심사였다.

조선일보는 노골적으로 일관되게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노무현 바람'이 불면 노무현이 주적이었고, '정몽준 바람'이 불면 정몽준이 주적이었다. 그러다가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가 성사되자 그것은 '야합'이라 했다. 그래도 '단풍(單風)'의 위력이 사그라들지 않자,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를 비롯한 조선일보의 논객들이 총동원해 '수도이전 공황론'과 '북핵 위기론' '30대 궤멸론'을 설파했다.

특히 조갑제 대표의 경우 선거당일인 12월19일 새벽에 올린 '핏발 선 보수층'이라는 살벌한 제목의 글에서 이번 대선은 "적화(赤化)냐 체제유지냐"를 가름하는 선거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노무현 후보는 적화세력이라는 주장에 다름 아니었다.

"오늘(12월 18일) 서울 광화문 근방 음식점에는 손님들이 붐볐다. 내일 투표일이 공휴일인 이유도 있을 것이고 선거 전야(前夜)에다가 송년회(送年會) 약속도 겹쳐서인 것 같다. 회식(會食) 자리마다 선거 이야기로 꽃이 피었습다. 기자가 참석한 모임에서도 시종(始終) 선거 이야기였다. 모두가 선거 추이를 궁금해하면서 『내일 어떻게 될 것인가』하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빨리 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가라! 그리고 전화를 돌려라.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고 답해주었다.

요사이 내가 만나는 나이 든 사람들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는 것 같다. 걱정의 핵심은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당선되면 체제위기가 온다는 것이다. 「나라가 망한다」느니「나라가 넘어간다」는 말들이 예사로 튀어나온다. 그들은 이번 선거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존망이 걸린 싸움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는 보수층의 다수가,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당초에 걸었던 부패 청산 정도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좌우 대결, 즉 적화(赤化)냐 체제 유지냐식으로 이번 선거의 의미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중략)

이런 좌우(左右) 대결을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피하고 싶었으나, 선거판은 한국사회 내부의 이념 대결 구도와 국제사회의 미북(美北) 대결 구도의 영향을 받아 막판에 좌우 정면 대결로 치달은 것이다. 이는 필자가 여러 번 주장했지만 바람직한 것이다. 이번 선거는 그렇게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도였던 것이다."

말 그대로 '분열주의'의 극치였다.

***"앞으로 몇년 더 고생합시다"?**

조선일보는 지금 침통하다. 경영 책임자가 간부들에게 "앞으로 몇년 더 고생합시다"라고 말했다는 얘기도 언론계에 나돈다.

그러면서도 노무현 당선자에게는 "노 당선자는 무엇보다 먼저 선거과정에서 심화된 우리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는 데 힘과 지혜를 쏟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허심탄회한 자세로 패자와 그를 지지한 층을 성심껏 포용해야 한다"고 사설을 통해 주문하고 있다.

또한 동시에 논설위원 칼럼을 통해서는 '변함없는 적개심'을 노출하고 있다. 조선일보 주독자층인 보수세력을 의식, 그들의 열불 나는 속내를 대변한 게 아니냐는 느낌마저 든다.

조선일보가 '분열의 상처' 치유를 운운하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조선일보는 대선전 사설(11월 26일)을 통해 "이번 대선은 좌우세력간, 세대간, 지역간, 친DJ-반DJ간 4대 대결구도"로 규정한 뒤 분열을 앞장서 증폭시켜 왔다. "노무현을 찍으려는 20대에게는 50대 부모가 등록금을 끊어라"(조갑제)는 정신분열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던 곳이 다름아닌 조선일보다.

이번 대선기간중 보인 자신의 분열주의 행태를 '사고(社告)'를 통해 통렬히 자성한 뒤, 이같은 행태를 앞장선 비(非)언론인을 언론계에서 떠나 보내야 한다. 이런 자성의 모습을 보인 뒤에야 새 당선자에게 주문을 해야 도리요, 순서가 아니겠나.

조선일보의 향후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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