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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자' 조갑제의 '30대 고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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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자' 조갑제의 '30대 고립론'

"50대가 돈의 힘으로 20대를 지배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겠지요!
또다시 지역으로, 계층으로 나뉘어서 으르렁거리면서 싸우겠지요!
그렇지만, 이제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 싸움 속에서도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하나됨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그래서 장한 25인이 더더욱 사랑스럽습니다."(아이디 '수원에서')

월드컵 결승전 진출이 좌절된 직후 한 독자가 본지 게시판에 보내온 글이다.
얼마나 지혜로운 분석이자, 낙관인가. 이번 월드컵 대회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게 무엇이었는가를 이처럼 정확히 간파한 글을 기자는 그 어느 매체에서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글을 보고 얼마 뒤 접한 다른 한 글은 모처럼 이룩한 공동체 의식을 우리 사회 일각에서 어떻게 하면 파괴하고 분열시키고 질곡시키려 하는가를 절감케 했다.

***"20대는 기본적으로 교육과 지도의 대상"**

지난 25일의 일이다. 월간조선의 조갑제 사장 겸 편집장(58)이 독일전이 열리던 이날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전우회관에서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회장 박세직)가 주최한 조찬강연회에 참석, '한국 보수세력의 위기와 호기'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는 연합뉴스 보도를 접했다.

"20대가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것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50대가 20대를 잘 지도한다면 좌편향에 빠진 30대를 샌드위치시켜 한국을 잘 끌어나갈 수 있다. 이번 (지방) 선거 결과는 50대가 20대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황당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발상이 가능한가.

육사 총동창회쪽에 강연 전문을 요청했으나 원문을 얻는 데 실패했다. 그러던 중에 이날 강연의 요지가 월간조선 7월호에 이미 실려있다는 사실을 확인, 글을 구해봤다.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 명의로 쓰여진 '왜 20대의 천적(天敵)은 김정일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 글은 기사라기보다는 '관념의 덩어리' 그 자체였다.

조 편집장은 월드컵대회 이전에 20대를 다음과 같이 부정적으로 생각했었음을 적고 있다.

"지금 50대 도달한, 이 광복후 1세대는 배고픔을 아는 마지막 세대이자, 풍요로움을 맛본 첫 세대였다. 그들의 자녀들이 배고픔을 모르는,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에 대해 고마워할 줄 모르는, 민족의 원수 김일성과 진정한 악마 김정일에겐 관심도 없는 '붉은악마들'인 것이다."

그는 그러나 월드컵을 치르면서 20대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번 월드컵으로 모아진 20대 중심의 젊은 열정은 50대의 불신감을 상당 부분 해소해 주었다. 구김살 없이 자란 아이들이 역시 당당하구나 하는 감성이 그것이다. 저들에게 국민윤리, 질서의식, 정의감, 투지만 잘 가르쳐 주면 내일의 대한민국은 우리 세대의 대한민국보다 더 낫겠다는 안도감이 그것이다. 김정일이 아무리 잔재주를 부려도 저들을 속일 수는 없겠다는 믿음도 있다.
기자같은 50대의 눈에는 20대가 지금 찬사의 대상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교육과 지도의 대상으로 보인다."

***"김정일을 제대로 미워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조 편집장은 이때부터 그의 표현을 빌면 '진정한 악마 김정일'에 대한 증오의 장광설을 늘어놓은 뒤 20대에게 '미움'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젊은이들이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도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사에서 두번째로 역사창조의 주역이 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본연의 순수성으로 돌아가 김정일을 제대로 미워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제대로 미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제대로 사랑할 수도 없는 법이다. 미워해야 할 사람을 동정하는 자는 동정받아야 할 사람, 즉 북한동포들에게 잔인한 법이다. 김대중 정권 사람들처럼."

"이번 월드컵을 통하여 극적으로 폭발한 젊은이들의 에너지는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과 고마움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붉은악마'들이 한반도에서 진정 누가 악마인지 안다면, 그리하여 그 정열을 그 악마의 제거를 위해 불태운다면 김정일 정권은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젊은이들의 열정을 북한동포 해방의 이념으로 승화시키는 일이다."

***"돈으로 주도권을 잡고 젊은이들을 선도할 수 있는 것이 50대"**

그는 '20대 지도의 방법론'까지도 제시했다. 50대가 쥐고 있는 '돈'으로 20대를 지도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우선 돈은 50대가 벌고, 쓰기는 20대가 하는 작금의 세태를 개탄했다.

"최근 한국사회의 모습을 바꿔놓고 있는 것들, 한국영화의 전성. 공연문화의 확산. 레저 및 스포츠의 극성, 남대문ㆍ동대문 시장의 활력은 20대의 구매력이 만든 것이다.
20대의 구매력과 구미에 맞춰서 상품을 기획하다보니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젊어지고 천박해지는 면도 있다. 출판언론계에 종사하는 기성세대가 20대에 영합하여 한글전용의 신문과 잡지.책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이다.
20대로 하여금 한자를 배우도록 선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들의 수준에 자신과 매체의 질을 낮추는 일을 하는 기성세대는 지도력을 포기한 것이다. 지도되어야 할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기성세대에 대해 젊은이들은 존경을 보내지 않는다."

이렇게 20대의 '천박성'과 기성세대의 '야합성'을 성토한 조갑제 편집장은 이어 '돈'으로 20대를 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성세대들은 자신의 교양을 위해서 돈을 쓰는 데는 인색하면서도 자녀들에게는 용돈을 많이 주어 시장의 주도권도 빼앗기고 말았다.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끔 문화.예술시장의 수준을 높이려면 스스로 그 시장에서 돈을 써야 하는데 자녀들에게 돈을 대주고만 있으니 시장의 주도권, 즉 문화의 주도권을 젊은이들에게 빼앗기고 만 것이다."

"50대의 자산은 돈ㆍ직위ㆍ나이.
돈으로 시장에서, 직위로 직장에서, 나이로 가정에서 주도권을 잡고 젊은이들을 선도할 수 있는 것이 50대이다.
그리하여 50대가 20대를 설득하여 반(反)김정일 통일전선에 40대와 함께 묶어둔다면 30대의 좌파는 고립될 것이다."

***"월드컵은 국가주의적 열정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조갑제 편집장은 말미에서 "월드컵이 '국가주의적 열정'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의 지향점이 '국가주의'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월드컵은 민족주의보다 이상적이고 성숙된 국가주의적 열정, 즉 애국심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월드컵 경기가 국가 단위의 경쟁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내부 갈등을 덮고 태극기.애국가.대한민국 중심으로 뭉쳤다.

김정일 정권은 한국사회 안에 내적을 만들어 내전적 상황으로 분열시키려 오랫동안 공작해왔으나, 월드컵은 한국사회 바깥에 외적을 설정함으로써 국민이 국가 중심으로 단결하도록 만들었다. 한국의 20대가 김정일 정권을 그런 외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한다면 한국사회는 대의(북한동포 구출)를 위한 대동단결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에 따라 "젊은이의 애국심과 김정일은 천적관계이다"라는 말로 글을 끝내고 있다.

***"386세대가 주축인 30대와는 화해가 지속될 것"**

조갑제는 원래 극우인사로 잘 알려진 논객이다. 따라서 이번 주장도 "원래 그런 사람이니..."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대목이 여기에 있다. 이른바 그가 펴고 있는 '30대 고립론'이 그것이다. 그는 글의 곳곳에서 30대를 고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50대는 약 430만명이다. 50대는 약 700만명인 40대와는 이념적 동맹이 가능하지만, 386세대가 주축인 830만명의 30대와는 불화가 지속될 것이다.

50대와 20대는 한 세대 30년을 사이에 둔 부자(모녀)관계이다. 생물학적으로도 친해질 수 있는 관계이다."

"50대가 20대를 설득하여 반김정일 통일전선에 40대와 함께 묶어둔다면 30대의 좌파는 고립될 것이다."

얼마나 섬뜩한 접근법인가. 그의 논리대로라면 30대는 한국사회에서 고립시키고 궤멸시켜야 할 대상이다. 파시즘적 사고에 다름아니다.

맨 앞의 독자 글처럼 이번 월드컵은 "우리가 또다시 지역으로, 계층으로 나뉘어서 으르렁거리면서 싸우더라도, 그 싸움 속에서도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하나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에 걱정하지 않는다"는 공동체 의식을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더없이 의미있었다 하겠다.

그러나 조갑제 편집장 눈에는 이번 월드컵이 '30대 궤멸'의 절호의 찬스로 비쳤다. 자기보다 20년 아래인 후배들을 소외시키고 궤멸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섬뜩하면서도 초라한 '자기폐쇄증'인가.

***"이번 대선은 50대가 20대를 설득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판날 것"**

그러나 그의 글에서는 이런 주장을 펴는 진짜 속내가 겉으로 말하듯 북한동포 운운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연말 대선에서의 현정권 재집권 저지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만드는 대목이 있다.

"최근에는 좀 수그러들었지만 노무현 바람이 불 때 집집마다 노무현 반대가 강한 50대 부모들과 지지가 많은 20대 자녀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었다.

이번 대선은 이런 안방 토론에서 50대(약 430만명)가 20대(약 800만명)를 설득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의해 결판날지도 모른다."

과연 진짜 속셈이 어디에 있든 간에 이번 조갑제 편집장이 제기한 주장은 월드컵에서 표출된 국민적 하나됨의 에너지를 파시스트적 상황으로 몰고가려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중차대한 발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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