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미국 신문인가.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을 보도하는 조선일보 지면을 보면 조선일보는 한국 신문이 아니라 미 백악관 대변지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조선일보는 지난 6월 13일 여중생 사망사건이 발생했을 때 단 한 줄의 기사도 싣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여중생 사망사건을 처음 기사화한 것은 6월 20일로 '궤도차에 숨진 여중생 美軍부대서 추모행사'란 제하의 기사다.
<사진 미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조선일보의 29일자 사설.>
6월 13일 사건이 발생하자 다른 신문들은 다음 날인 14일 '미군 차량에 치여 여중생 2명 사망(경향신문)' '미군車 치여 여중생 2명 숨져(대한매일)' '미군車에 치여 여중생 둘 사망(동아일보)' '미군 장갑차에 치쳐 길가던 여중생 둘 숨져(문화일보)' '美軍 장갑차 덮쳐 여중생 2명 사망(세계일보)' '미군 궤도차 덮쳐 여중생 둘 사망(중앙일보)' '미군차량 치여 여중생 2명 사망(한겨레)' '미군 장갑차에 치쳐 여중생 2명 숨져(한국일보)'라며 크지는 않았지만 사회면 단신으로라도 모두 보도했다.
월드컵 열풍 때문에 소중한 두 여중생의 목숨이 미군 장갑차에 짓이겨졌다는 기사가 크게 보도되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조선일보는 아예 다루지 않다가 미군이 부대내에서 추모행사를 했다는 기사로 이 사건을 처음 알린 것이다.
이후에도 조선일보의 미군 감싸기는 계속된다. 6월 26일 열린 양주군의 여중생사망 항의시위를 단신으로 다뤘던 조선일보는 6월 29일자에는 '여중생 美軍장갑차 사망 시위 부대진입 기자 2명 영장'에서 26일 시위 도중 미군 부대 안으로 들어간 혐의로 인터넷방송 '민중의 소리' 기자 2명에 대해 경기도 의정부 경찰서가 28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소식과 함께 적절한 배상을 위해 노력중이라는 미군측 입장을 보도했다.
당시 경향신문은 6월 23일자 '미군 궤도차와 두 소녀의 죽음'이란 사설과 6월 26일자 '월드컵에 묻힌 것들'이란 시론을 통해 여중생의 죽음이 월드컵 열풍에 희석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었다. 이런 사설과 시론, 기사를 당시 월드컵 보도로 도배질하던 조선일보 지면에서 찾아볼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조선일보는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인해 계속되고 있는 시위에는 별반 관심을 두지 않다가 8월 3일에 가서야 '<태평로> 뒤틀려진 韓美관계'라는 칼럼을 통해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손발이 맞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칼럼은 "한미공조는 한반도호를 움직이는 양쪽 엔진"이라며 "한국 정부 내에서 누구도 책임있게 미국의 관심사항들을 다루려 하지 않는다"는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했다.
조선일보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종종 유아독존적 태도를 보여온 부시 정부의 잘못도 있지만, 한국측 책임도 크다"며 "DJ 대미외교력이 한계를 드러냈고, 현 정부가 줄곧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국내적 물음에 모호한 태도를 취해온 것 등이 결국 기축 동맹국인 미국까지 DJ 대북정책에 등을 돌리는 상황으로 발전한 것이다. 임기말 DJ의 햇볕 드라이브는 위험한 외줄타기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여중생사망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의 목소리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조선일보가 내세우는 것은 걸핏하면 "한미공조에 금이 갈까 두렵다"는 것이며 "DJ 정부는 왜 팔짱만 끼고 있느냐는 것"이다.
서경원 전 의원과 주한미군 사이에 발생한 폭행싸움을 다룬 조선일보 9월 17일자 ''여중생' '미군병사' 그리고 한미'란 사설을 보자. 조선일보는 "우선 미국측이 이번 사건의 배경적 요인에 대해 더 깊은 배려와 인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며 포장을 한 다음 "한국 정부는 더 이상 팔짱을 낀 채 '나 몰라라' 할 것이 아니라 여중생 사건뿐 아니라 미군병사의 경우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조사할 것은 조사하고,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조치할 것은 조치해서 한미 외교마찰을 시급히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미 정부 양측에 책임을 묻고 있는 것 같지만 문제의 본질을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에서 빚어지고 있는 마찰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맘껏 때려도 끽소리 못하는 '만만한' DJ 정부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러던 조선일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여중생 사망사건 피의자인 미군 병사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지면서 일부 시민사회단체뿐만 아니라 전 국민적인 반미감정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부터다.
11월 22일자 조선일보 ''미군만의 배심원' 뻔한 평결'이란 사설은 "애당초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국민의 정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애쓴 판결을 기대했었다"며 "한국민의 인내심만 요구하는 양국관계는 튼튼할 수 없다"고 '모처럼' 미국을 비판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본질은 미국을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11월 28일자 1면 머릿기사에 '부시, 사과표명'이란 큰 제목을 붙인 조선일보는 사설 ''부시 사과'와 앞으로의 한미동맹'에서 "비록 육성은 아니지만, 그간 국내적으로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 대통령의 사과가 필수적이라고 요구해온 주장이 있었던 점에 비춰볼 때 '부시 대통령의 사과'는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육성도 아니고 친서도 아닌 주한 미국대사를 통한 간접사과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극적 언사와 충동이 한미관계 전체를 흔들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만일 조선일보처럼 여중생 사망사건 자체를 기사화하지도 않고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는 반영하지도 않은 신문과 방송이 대부분이었다면 부시가 체면치레용 간접사과라도 했을지 의문이다.
조선일보가 여중생 사망사건을 바라보며 미국을 대변하고자 하는 목소리는 29일자 사설 '반미를 넘어 해법을 찾자'에 잘 나타나 있다. 사설은 "이번 사태가 심상치 않게 여겨지는 것은 반미주장에 공감을 표시하는 일반국민들이 급속히 늘고 있기 때문"이라며 "특히 초중고 학생들에게까지 반미의식을 심으려 하는 움직임은 갈등의 치유나 해소보다는 끝없는 격화만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깊이 성찰해볼 일"이라고 강조했다.
딴은 맞는 말이다. 사설은 "물론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며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제는 한미정부와 지도층, 국민들 모두가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때가 됐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는 팔짱만 끼고 앉아있을 작정인가?"라고 끝을 맺었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왠지 씁쓸하다. 조선일보가 바람직한 한미관계를 위해 무슨 노력을 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저 미국 주장만 받아주고 국내 반미감정은 죽이면 한미공조가 강화된다는 것인가.
국내 언론 가운데 아직도 북한과 미국 관계를 표시할 때 '북미'가 아닌 '미북'을 고집하는 언론사가 바로 조선일보다. 같은 민족인 북한보다는 영원한 동맹이라고 믿고 싶은 미국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조선일보는 한국 신문인가, 백악관 대변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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