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전면에 나서 입을 열 때다.
***"더이상 '대통령 만드는 신문'이란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해라"**
방상훈 사장은 지난 연말 감옥에서 풀려난 뒤 김원배 조선노조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신년구상을 밝혔다.
방 사장은 구속 소감 등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2002년 선거보도와 관련, "우리 신문에 대해 '대통령 만드는 신문' '권력의 편에 선 신문'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새해엔 정치뉴스를 다루면서 그런 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가올 각종 선거에서 국민들에게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통해 선택의 틀만 제공해야지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공격하는 보도는 곤란하다"며 "조선일보는 앞으로 어떤 '정치의 해'가 되든 엄정중립을 지킬 것"이라며 선거 중립을 재차 강조했다.
방사장의 말은 여러 언론매체에 상세히 보도됐다.
***요즘 조선일보의 선거개입도 '역대 최고'**
하지만 요즘 조선일보를 보면, 방 사장의 말이 무색하다. 조선일보가 선거에 개입하지 않은 적이 있었겠느냐만은 요즘 보도 태도는 선거개입도에서 '역대 최고'다.
조선일보 지면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지난주부터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이사 겸 편집장이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의 야전사령관을 자처하고 나서 연일 두세 편의 맹필(?)을 써대고 있다.
노골적으로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조갑제 대표는 매우 교묘한 테크닉을 사용하고 있다. 우선 글을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뒤, 이 글을 곧바로 월간조선 인터넷 사이트에 신설한 '오늘의 뉴스'에 싣는 방식이다.
조갑제 개인이 나선 것이지 조선일보가 직접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것은 아니라는, '유사시 변명'을 위한 테크닉으로 읽힌다.
하지만 과연 그런 변명이 먹힐 수 있다고 보는가. 월간조선은 조선일보가 최대주주인 자회사다. 또한 조선일보의 최대주주는 다름아닌 방상훈 사장이다.
조갑제 대표의 최근 정치행보는 곧 조선일보 책임이며, 방상훈 사장의 책임인 것이다.
***방 사장이 희망했던 '꽃놀이패' 국면**
방상훈 사장이 조선노조 위원장과의 인터뷰에서 '선거 중립'을 천명한 직후인 지난 1월19일자 '조선일보 선거중립 선언의 속내는?'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프레시안은 그 속내를 다음과 같은 분석을 한 적이 있다.
방 사장의 발언은 대외 여론을 의식한 단순한 레토릭(수사)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안티조선 진영에서는 "방 사장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언론계 및 정치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방 사장 말대로 실제로 앞으로 조선일보가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공격하는 보도를 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언론계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분석을 했다.
"방사장 발언은 사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조선일보가 그동안 철저한 반(反)DJ 노선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보면 쉽게 납득이 안 가는 대목일 것이다. 그러나 DJ는 이미 레임덕(권력누수)에 걸렸다. 대선에 개입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레임덕이 심각한 상태다. 방상훈 사장이 구속됐을 때 그의 변론을 맡았던 이명재 변호사를 이번에 검찰총장에 임명하지 않으면 안 됐을 정도다. 만약 DJ가 레임덕에 걸리지 않았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와 조선일보는 97년 대선이래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민주당과의 관계다. 현재 민주당 경선에서는 이인제 고문이 압도적 표차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돌출변수가 출현하지 않고 현추세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이인제 고문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방상훈 사장이 이인제 고문의 경복고등학교 2년 선배라는 사실이다. 방상훈 사장은 경복고 41회, 이인제 고문은 43회 졸업생이다. 'K2(경복고의 약칭) 동문' 관계인 것이다. 실제로 방 사장과 이 고문은 돈독한 선후배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 총재, 민주당에서는 이인제 고문이 후보가 돼 연말 대통령선거가 이른바 '양이(兩李) 체제'로 전개된다면 방 사장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둘 중에 누가 차기대통령이 돼도 상관없는 일이 아닐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쪽은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한쪽은 야당총재가 된다면 방사장 입장에서 보면 더없는 해피엔딩이 되는 게 않을까."
말 그대로 '꽃놀이 패' 국면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노풍' 불자 방 사장 입장 돌변**
하지만 이 기사가 나간 지 얼마 후 이 언론계 관계자가 말한 '돌출변수'가 출현했다. 민주당 국민경선에서의 '노무현 바람'의 출현이다. 거센 노풍 앞에 방상훈 사장의 고교 2년 후배인 이인제 고문은 비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에 맞춰 방상훈 사장의 입장도 바뀌었다.
방 사장은 노풍이 절정기에 달했던 지난 4월10일 이상기 기자협회장 등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세무조사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던 방 사장은 노무현 후보 얘기가 나오자 정색을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방 사장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조선일보 왜곡보도에 대한 92년 법원 판결 직후 "노 후보가 먼저 방 사장을 만나자고 한 뒤 소송을 취하했다"고 사실을 정반대로 보도한 주간조선 데스크를 징계한 직후여서, 일각에서는 조선일보가 노 후보에 대한 유화책을 펴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흘러나오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방 사장의 입장은 단호했다.
"언론은 후보와 관련된 모든 사안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상관없다. 어디까지나 국민들이 선택할 문제이다. 그러나 노 고문이 언론에 굴복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럼 정권을 잡으면 언론을 탄압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만약 언론자유가 침해받는 상황이 오면 나는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언론자유는 언론계 전체가 지켜나가야 할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방 사장의 이같은 발언은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만은 반드시 막겠다는 의지 표현이었다. 아울러 이는 앞의 '선거 중립' 선언의 파기를 의미하기도 했다.
***공인은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법**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볼 때 최근 조선일보의 노골적 선거 개입은 결코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의 개인 의사이거나 편집국내 일부 구성원들의 의지가 아니라, "노무현이 되면 절대로 안된다"는 방상훈 사장의 '의지 표현'으로 해석된다.
방 사장은 이제 전면에 나서 말을 해야 한다.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의 최근 언행과, 조선일보의 최근 지면은 과연 자신과 무관할 일인지 아니면 자신의 의지의 표현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가 앞서 한 말이 있기 때문이다. 공인은 최소한 자신의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아울러 중앙, 동아일보 사장도 함께 입장을 밝혀야 한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도 연초에 신년사에서 올해를 '일류신문 만들기'를 위한 시스템을 완비해나가는 해로 규정한 뒤 선거보도와 관련, "어느 한쪽에 줄을 서서 외치는 그런 신문을 결코 일류신문이 될 수 없다"며 정치중립을 선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일보의 경우 자회사인 <월간 에머지>의 강위석 대표이사 겸 편집인이 최근 12월호 권두언을 통해 언론사로서는 최초로 이회창 후보 지지를 공식천명하고 나섰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과연 조중동의 책임자들이 공식적으로 자신의 말을 할 것인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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