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후 발표한 문안은 "조세정책은 일반적으로 수용(收用·expropriation)을 구성하지 않음"이다. 이 "일반적"이라는 말의 뜻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기업들이 자국이든 타국이든 국가의 "일반적인 조세정책"에 시비를 거는 경우가 있는가? 즉, "일반적인 조세정책"임이 명백한 사건이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Investor-state Dispute)의 분쟁 대상이 된 적이 있는가? 어떤 조세정책이 일반적인 조세정책인지 아닌지를 놓고 항상 시비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수용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요컨대, 조세정책이 ISD의 분쟁 대상이 되는 것인가 아닌가?
그런데 좀 엉뚱하게도 협정문에서 ISD 제도가 다뤄지는 투자 챕터(Chapter 8 Investment)가 아니라 분쟁해결 챕터(Chapter 20 Institutional Provisions and Dispute Settlement)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조세조치는 원칙적으로 협정 적용대상에서 제외: 단, 조세조치가 수용에 해당하는 경우는 투자자 대 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SD)가 적용되나, ISD 회부 전 양국 조세당국이 먼저 협의하는 절차 마련."
이 두 가지 명제를 합쳐보면, 결국 '조세정책은 일반적으로 수용을 구성하지 않지만, 수용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ISD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그 "일반적으로"라는 한정어구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는 한 이 문장은 의미 없는 동어반복(truism)일 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4월 4일 배포된 법무부 국제법무과의 차관 브리핑 자료(9쪽)에는 "조세조치도 예외적인 경우에는 간접수용(間接收用·indirect expropriation)이 될 수 있도록 협정문에 규정된 것은 사실임"이라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그 "예외적인 경우"란? 일언반구가 없다. 대신 이런 규정은 "정당한 법리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를 이유로 전체 조항의 취지가 몰각된다는 식의 논리는 지나치게 과장된 주장"이라는 엉뚱한 변명과 "제소 자체를 막을 수는 없으나 이러한 남소 행위는 간접수용 인정 범위의 법리적 제한으로 인해 결국 승소하기는 어려울 것임"이라는 희망사항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블토크 5: 보건, 환경, 안전 관련 정책을 ISD의 분쟁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정부는 보건, 환경, 안전 등과 같이 공공 목적의 정책은 간접수용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함으로써 이 부분의 정책의 자율성을 지켜냈다고 홍보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보건, 환경, 안전 등은 국제법에서도 소위 '경찰 권력(police power)'라고 하여 주권국가의 가장 근원적이고 침범할 수 없는 배타적인 권력 영역이라고 인정되는 부분이다.
주지하듯 근대 주권국가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근거는, 고대국가처럼 신이니 하늘이니 하는 초월적인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국민들의 신변과 안전을 보호해주는 것에 있다. 정부의 다른 정책들은 안팎으로 여러 가지 논란과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신변과 관계된 보건정책, 환경정책, 안전정책 등은 안으로도 밖으로도 절대 도전받을 수 없다.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공공정책의 권한, 바로 이것이 근대국가의 기본사상이다.
문제는 이렇게 절대적이어야 할 '경찰 권력'에 꼬리표가 붙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직 협정문이 공식으로 공표되지는 않았으나, 협상 타결 직전인 지난 4월 1일 <한겨레>가 보도한 '투자자-국가 소송제 결국 미국 뜻대로'에 따르면 한미 양측은 보건, 환경, 안전 등의 공공정책이 ISD 간접수용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보장받을 수 있는 경우는 오로지 "진정하고 충분한 위협이 있을 때"로 제한하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요컨대, 국민들의 보건, 환경, 안전에 있어서 "진정하고 충분한 위협이 있을 때"에만 정부는 아무 거리낌 없이 그런 위협을 제거할 조치를 취할 수가 있는 것이다. '더블토크'는 항상 표면에 나타난 언어를 반대방향으로 한 번 더 읽어야 알 수 있다. 이 표현을 뒤집어 보면, '진정하고 충분한 위협이 있다고 보기 힘들 때'에는 정부가 보건, 환경, 안전 등을 위해 취한 조치도 간접수용으로 몰려 ISD의 분쟁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라. 보건, 환경, 안전에 대한 조치가 "진정하고 충분한 위협이 있을 때"로 제한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원래 이 보건, 환경, 안전과 같은 사안들은 워낙 근본적인 것들이라 단 1%라도 이들이 위험에 처해질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막기 위한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경찰 권력'의 성격이다. 그래서 국제법에서도 이 '경찰 권력'은 "진정하고 충분한 위협이 있을 때"가 아니라 '예방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에 따라 관례적으로 정당화된다.
그래서 지구 반대쪽에서 사스(SARS)와 같은 괴질이 돌면 즉각 공항의 검색이 강화된다. 김선일 씨 사건이 벌어지자 폭탄 테러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인답시고 국내 지하철에 있는 쓰레기통이 모두 사라졌다. 9.11 테러 사건 이래로 미국 공항을 지나는 여행자들은 모두 철저한 몸수색을 당하고 급기야 로션, 라이터 등을 아무 보상도 없이 뺏기는 -수용(expropriation)도 아니라 아예 몰수(confiscation)다 - 봉변을 수시로 당하게 되었다. 산불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인해 우리는 이제 산 속에서 고기 굽는 즐거움을 빼앗기고 차디찬 김밥이나 씹게 되었다.
이 모든 정부 조치들이 "진정하고 충분한 위협"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는 때때로, 특히 지하철 바닥에 널브러진 오만가지 쓰레기를 볼 때 심히 의문스럽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이 군말 없이 이같은 정부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그야말로 "만에 하나(just in case)"라고 하는 일말의 가능성이 보건, 안전, 환경에 낳을 치명적인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보건, 환경, 안전에 있어서 누구나 인정할 만큼의 "진정하고 충분한 위협"이 터진 상황이란 무엇인가. 필경 이미 재난이 현실화된 상태일 것이다. 재난이 터진 상태라면 모를까, '만에 하나'와 같은 위험성을 미연에 방지하는 조치나 정책들이라면, 보건, 환경, 안전에 관한 것이라 해도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이 실제로 벌어진 예가 있으니, 바로 1998년 7월 합의로 종결된 캐나다 정부와 미국회사 에틸(Ethyl) 간의 분쟁이다. 캐나다 정부는 에틸이 캐나다로 수출하던 자동차 연료 첨가제 MMT가 인체의 신경조직과 환경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MMT 수입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법 때문에 캐나다 정부는 에틸로부터 2억5000만 달러 규모의 ISD 소송을 당했다.
당초 캐나다 정부는 자신감을 가지고 이 분쟁에 임했다. MMT의 치명적 위험성을 입증하는 연구 사례들을 상당히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ISD 분쟁의 판정을 내리는 곳이 일반 법정이 아니라 변호사 3인이 모여 합의를 보는 중재 절차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면서, 캐나다 정부는 서서히 자신감을 잃어갔다고 한다.
어떤 화학물질이 건강과 환경에 해롭다는 것을 확증한 후 그 물질의 유통이 보건·환경에 있어서 "진정하고 충분한 위협"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몇 십 년에 걸친 연구와 논쟁을 거친 뒤에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안녕과 환경을 보호해야 할 국가로서는 그 몇 십 년을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ISD의 중재 절차가 이런 '예방의 원칙'을 얼마나 이해해 줄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던 캐나다 정부는 결국 에틸에 1300만 달러를 넘겨주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짓는 저자세를 취하게 됐던 것이다.
요컨대, 보건, 안전, 환경에 있어서 "진정하고 충분한 위협이 존재"할 경우, 즉 준재난이 일어난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국가의 기본 권리인 바, 그것을 협상에서 보장받았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것은 실로 보기 안쓰러운 일이다.
ISD 제도를 둘러싼 지난 10년간의 논쟁에서 문제가 됐던 것은, "진정하고 충분한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국가가 '예방의 원칙'에 따라 보건, 안전, 환경에 관한 조치를 내릴 권력이 위협받게 됐다는 것이다.
만약 <한겨레>의 보도대로 최종적인 협상 결과가 "진정하고 충분한 위협"이라는 한정 어구를 끌어안은 채 나왔다면, 이는 사실상 준재난 상태 이외에는 국가의 '경찰 권력'조차 투자자들의 분쟁 대상으로 넘겨주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도 실로 대단한 '더블토크'이다.
이미 언론에까지 보도된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 정부는 일체 함구하고 있다. 정부는 그저 안전, 환경, 보건, 부동산 가격안정정책은 "드문 정황을 제외하고(except in rare circumstances)" 간접수용이 되지 않도록 관철시켰다면서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라는 문구가 무슨 대단한 문구나 되는 양 영문까지 병기해가며 굵은 글자로 강조하고 있다.
이 문제의 영어 표현은 그야말로 정의가 애매한 '정황(circumstances)'을 일컫는 말이기에 그저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외에 그 예외의 범위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이 표현은 무슨 대단한 법률 용어이기는커녕 호텔 사용약관이나 대학교 등록금 청구서처럼 아무 데나 굴러다니는 흔한 말일 뿐이다.
그래서 예외의 범위를 표현할 때에는 어김없이 정확한 한정어구, 이를 때면 '다음과 같은 드문 정황에서는(in those rare circumstances in which…)'과 같은 어구가 붙어야 한다. 이에 대해 지금 정부는 함구하고 있다.
더블토크 6: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 "일반적"으로 국가 정책의 자율성을 확보했다
'더블토크'의 수사학에서 가장 사랑받는 한정 어구는 바로 '원칙상', '일반적으로', '대개는',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등이다. 이러한 형용사나 부사들은 결국 이후에 나올 문장의 초점이 그 '일반적'인 경우에 있는지 아니면 그것을 벗어나는 '예외적'인 경우에 있는지를 애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홍 아무개는 일반적으로 훌륭한 인격자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하자. 이는 그가 인격자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인지, 아니면 곧 이어질 말들, 가령 "그런데 술 먹으면 개가 되고, 밥상 앞에서 돼지가 되고, 이불 덮으면 늑대가 된다"는 말을 강조하려는 것인지 애매하다.
한 치의 애매함도 허용하지 않는 '범주적 판단(categorical judgement)'을 내려야 하는 법과 관련된 문서에서 이러한 수사법이 사용돼서는 아니 됨이 물론이다.
외교통상부가 협상 타결 후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환경, 안전, 부동산 가격 안정화 등의 정책은 "원칙적으로" 간접 수용에 해당하지 않고, 조세 정책은 "일반적으로" 수용을 구성하지 않는다. 이 무슨 말인가?
ISD의 분쟁 대상이 되는 사건들 중 그 성격이 '원칙적'이거나 '일반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명백하게 규정할 수 있는 사건은 없다. 애초부터 그 성격이 예외적인 것인지 일반적인 것인지를 놓고 분란이 생기는 데서 ISD 분쟁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이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일반적으로"라는 한정 어구에 '그 예외가 되는 경우를 명확하게 규정한 부속서' 등이 따라오지 않으면, 위와 같은 문장은 실제로는 아무런 힘도 없는 속빈 강정에 불과하게 된다.
정부 관료들이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식의 애매한 조항으로 ISD 제도를 이용한 투자자들의 파상적인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ISD 중재 절차에 대한 판정이 이뤄지는 곳은 상위법의 문구를 만들어놓으면 그것이 법리의 형식적 합리성에 의해 하위법과 실제 판결을 연역적으로 규정해 나가게 돼 있는 법정(court)이 아니다. ISD 중재 판정소는 3인의 변호사가 모여 일반적인 국제법 등을 참고로 합의를 보는 곳이다.
게다가 국제 투자자들은 법령이 포고되면 그 권위에 주눅이 들고 그것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행동을 조심하는 일반 국민들 같은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드러난 모든 규칙과 규정들을 미리 계산에 넣고 전략을 짜는, 어디서건 약점이 발견되면 바로 달려드는 공격적인 존재들이다.
다음은 '글로벌 리걸 그룹(Global Legal Group)'이 2006년 발행한 '국제 중재에 대한 국제 비교법적 안내서(The International Comparative Legal Guide to International Arbitration)'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 [ISD는] 국제 비즈니스에서 쓸 수 있는 무기 창고에서 갈수록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투자협정은 물론 투자자 분쟁의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는 지금, 투자자들과 기업 법률 자문단들은 이 분야에서의 최신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며, 거래를 처음 시작하는 단계로부터 이 제도의 존재를 잘 명심하여 해당 정부 기관들과 벌어질 수 있는 분쟁을 미리 예상하여, 분쟁이 벌어지면 이 제도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 드립니다." (강조는 인용자)
요컨대 ISD에 무슨 문안이 들어갔든, 투자자들은 그것을 미리 예측하고(anticipate) 작전을 짜서 오히려 공격에 이용하라는 말이다. 지금 많은 국제 투자자들은 개별 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의 문안들을 연구해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공격 옵션을 미리 설정하고 게임을 시작하려는 흐름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이렇게 허술한 "일반적", "원칙적" 같은 한정어구들로 채워진 협정 조항은 '나를 공격해 달라'고 부르는 공개 초대장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5월에 나온다는 최종 협정문이 기다려진다. 만약 그 협정문에도 이 "원칙적", "일반적"이라는 한정어구의 명확하고 구체적인 정의와 예외의 예시 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을 경우 이는 빛나는 '더블토크'의 역사적 예로서 남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 앞에 드러난 모습만 봤을 때 ISD 관련 타결안은 사실상 미국이 내건 표준적 ISD 제도를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정부는 처음부터 초지일관 이 미국식 ISD 가 "글로벌 스탠더드"이므로 마땅히 따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다른 한쪽으로는 정부는 이 논란 많은 제도를 어떻게든 부드럽게 고쳐보려고 "수용 관련 분쟁은 국내 사법체계로 해결한다"는 실로 대담한(!) 요구까지 내거는 등 여러 차례에 걸친 노력을 하였다.
우리 눈앞에 나타난 ISD 타결안에는 이 이율배반적인 '더블토크'의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내용상으로는 거의 어김없는 미국식 표준 ISD인데도 문구 전체는 이것이 마치 우리의 요구가 대폭 반영되어 변형된 것인 양 보이게 하는 어구들과 표현들로 점철되어 있다. '더블토크'로 시작해 '더블토크'로 끝난 셈이다.
이제 '더블토크'는 그만 둘 때가 됐다. 이 ISD 제도의 문제점과 위험성에 제발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특히 한미 FTA가 실제로 발효되면 걷잡을 수 없는 구조변동을 겪게 될 한국경제의 투자 환경을 생각한다면, 이 파괴적인 제도가 포함된 현재의 한미 FTA는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최근에는 이 '더블토크'마저 한계에 달했는지, 정부와 보수언론은 "이것이 다른 선택이 없는 인류의 미래다"라는 과학적 근거와는 거리가 먼 유사 종교적 수사에 기대기 시작한 것 같다. 선무당 놀이는 자유지만, 4900만 대한민국 국민의 경제적 안녕을 날 선 작두 위에 올려 놓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덧붙임> 방금 받아본 정부 자료에서 또 하나의 기상천외한 '더블토크'를 발견했다. 4월 4일 법무부 국제법무과에서 배포한 '한미 FTA 법무부 소관 분야 언론홍보 예상문답 자료' 5쪽에는 'ISD로 인해 국내의 각종 법과 제도가 무효화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이 나온다. "ISD에서 중재 판정부는 피소국에 대하여 금전적 배상 또는 재산의 원상회복만을 명할 수 있을 뿐, 문제되는 조치를 무효화하는 효력이 없으므로 국내 법 제도와 상치되는 중재 판정으로 인해 즉시 동 법 제도 등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님." (강조는 인용자) 실소(失笑)를 포복절도로 해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물론이다. ISD는 어떤 국가의 법 제도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제도가 아니다. 한 국가의 법 제도가 외국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했을 때 "금전적 배상 또는 원상회복"을 명하는 제도이다. 즉 우리는 영원히 주권을 지킬 수 있다. 단, 불평을 늘어놓는 외국 투자자들에게 물어줄 돈만 있으면. 레바논도 체코도 법 제도의 주권은 지킬 수 있었다. 단, 그 주권을 지키기 위해 레바논은 프랑스 투자자들에게 2억6000만 달러를, 체코는 미국 투자자에게 2억7000만 달러를 뜯겨야 했다. 요컨대 위의 문장을 '더블토크'가 아닌 직설법으로 바꾸면 'ISD를 수용해도 돈만 충분히 있으면 얼마든지 법 제도의 주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더블토크' 축에도 끼기 힘들다. 지난 1년 간 온갖 '더블토크'의 논리와 수사를 개발해온 정부 관료들의 능력도 이제 바닥이 나기 시작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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