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11장에서 투자자가 투자대상국에서 적절하고 공정한 대우와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건과 규범을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 이 11장과 관련해서는 내국인 대우, 최혜국 대우 등 많은 쟁점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투자 보호'라는 개념과 관련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먼저 '투자'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우리는 이 말을 들으면 외국자본이 국내에 들어와 공장을 짓고 생산설비를 들여놓는 설비투자(greenfield investment)를 연상하는 경향이 있고, 이런 경향을 정치인들이나 보수매체들이 이용하는 일이 흔하다.
'간접적 수용'과 '수용에 맞먹는 조치'란
하지만 NAFTA 1139조의 정의에 따르면 '투자'란 기업은 물론 각종 유가증권, 부동산, 유형 및 무형의 재산 등 사실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자산' 취득을 포괄하고, 더 나아가 각종의 이익을 낳는 자본기탁과 투자대상국 내의 각종 허가 및 특허권을 포함한 모든 경제활동 자원의 취득까지 포함한다.
이렇게 넓게 정의된 '투자'는 좁은 의미의 경제적 생산 따위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돈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 쟁여두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즉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회적 관계와 사실들이 투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 자본주의에서 사적 소유의 의미가 확장되기 시작하면 사적 소유의 대상은 더 이상 단순명쾌한 '사물'에 한정되지 않고 온갖 유형, 무형의 '자산'으로 넓어지게 되며, 사실상 온갖 사회적 관계에서 이점을 누릴 기득권으로 사적 소유의 의미가 변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로 취득된 사적 소유물을 '보호'해야 한다면 어떤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인가.
NAFTA 1101조는 11장의 규정들이 적용되는 대상은 투자자 및 투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투자대상국이 취하고 유지하는 '조치들'이라고 명기하고 있는데, 201조 1항에 따르면 여기서의 '조치들'은 '모든 종류의 법, 규제, 절차, 요건 및 관행'이다.
다시 말해 '투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무지막지한 혁명정부가 외국 투자자의 피와 땀이 밴 공장과 생산설비를 함부로 빼앗는 폭력을 막는다는 식의 소박한 의미가 더 이상 아니다. 그것은 이제 투자자가 어떤 나라에 '투자'를 해서 취득한 '그 나라 내부의 사회적 관계에서의 기득권'을 마음껏 행사하는 데에 심지어 그 나라의 정부, 의회, 지방자치단체조차 끼어들 수 없게 밀어낸다는 공격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NAFTA는 외국인이 '투자'해 취득한 소유권의 행사를 합법적인 국가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제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NAFTA는 분명히 NAFTA 참가국 각각이 국내에서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는 외국인의 소유권에 제한을 가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자의 소유권도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제한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단, 조건이 있다. 국가가 돈을 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NAFTA 11장의 규정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1110조의 내용이다. 수용에 관한 조항인 이 1110조를 들여다보자.
1110조: 수용과 배상
1. 어떤 참가국도 자국 영토 내의 다른 참가국 투자자의 투자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국유화하거나 수용하거나 혹은 그러한 투자에 대해 국유화나 수용에 맞먹는 조치('수용')를 취해서는 아니 된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1) 공공의 목적을 위하는 경우
2) 비차별적인 근거에 의하는 경우
3) 1105조 1항의 적절한 과정과 조응하는 경우
4) 2단락에서 6단락까지의 내용과 조응하는 배상금을 지불하는 경우
4)에 언급된 '2단락에서 6단락까지'는 배상금은 시장가치로 계산해야 하고, 환율 등을 고려하여 조속히 지불돼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하튼 위의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만 '합법적인 수용'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즉 1)부터 3)까지를 다 충족한다 해도 외국인 투자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간접적 수용(indirect expropriation)'과 '수용에 맞먹는 조치(measures tantamount to expropriation)'라는 표현이다. 만약 수용이 토지와 같은 사물을 물리적으로 가져간다는 의미라면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간접적 수용'이란 무엇이며, '수용에 맞먹는 조치'란 또 무엇인가. 2003년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펴낸 보고서는 NAFTA를 포함한 각종 무역협정이나 투자협정에서 이런 두 가지 표현이 실제로 해석되는 방식을 두 가지로 보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점진적 수용(creeping expropriation)이다. 이는 소유자의 소유권에는 아무런 직접적 영향이 없지만, 국가의 개입과 조치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조금씩 장기간에 걸쳐 투자의 가치가 잠식되는 상황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앞에서 보았던 '규제에 의한 수용(regulatory expropriation)'이다. 이는 소유권의 화폐가치에 영향을 주는 법적 규제 등을 말한다. 국제법에서 국가는 환경, 보건, 소비자 보호, 유해물질 규제 등과 같은 영역에서 일방적인 조치를 취할 '경찰력(police power)'을 보유하는 것이 전통적으로 인정되어 왔지만, NAFTA에서는 경찰력도 수용 관련 규정이 적용되는 대상이다.
결국 19세기 말의 미국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간접적 수용'이나 '수용에 맞먹는 조치'라는 모호한 말의 실제 의미는, 투자의 '자산가치'를 훼손할 만한 일체의 정부 조치들이 모두 수용으로 해석되어 배상의 의무를 부과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투자자들에 대한 법률과 관행이 어떤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외국 투자자들은 투자대상국에 투자를 하게 되면 그 나라에서도 법적 보호를, 19세기 말 미국 자본가들이 누렸던 저 꿈같은 이상적 조건의 법적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이제 투자자들은 투자대상국 정부가 자신의 투자자산을 직접 건드리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라도 그 가치에 영향을 줄 만한 입법을 하거나 조치를 할 경우에 당당히 그 철회를 요구하거나 배상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투자대상국의 국가와 국민들은 실로 황당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이제 국가는 어떤 입법을 하거나 조치를 할 때마다 항상 외국 투자자들의 수익에 영향이 없을지를 살피고, 영향이 있다면 그런 입법이나 조치는 하지 말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 입법이나 행정조치란 사회적 형평이라는 가치를 위해 기득권이나 이익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본 것처럼 '투자'가 매우 폭넓게 정의된 상황에서 그것을 훼손할 일을 피해가면서 입법이나 행정조치를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잔디와 흙이 깔린 곳은 모조리 출입금지'라고 선포하면 아이들은 어디서 축구를 하란 말인가?
지금 한국 정부는 한미 FTA의 충격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면서 여러 가지 대응을 잘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대응이라고 한다면 각종 산업정책과 재분배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국내 도처에 쏟아져 들어올 미국 투자자들의 투자자산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그런 정책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소송비용이라는 부담이 있으니, 미국 투자자들이 매사에 사사건건 걸고넘어지지는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정책들은 그 덩어리가 크고 따라서 그것에 걸린 판돈도 크게 마련인데, 과연 미국 투자자들이 가만히 참고만 있을까? 앞에서 보았듯이 최근 들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에 따른 국제심판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이 이런 의문에 답을 준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우리의 국가가 취하는 모든 행위가 문제가 되겠지만, 특히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은 보건, 환경, 안전 등의 분야에서 국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이 부분은 '경찰력'과 관련해 국제법에서 일반적으로 각국의 고유한 권한으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NAFTA 11장은 이런 부분도 외국인 투자자 보호라는 목적에서 배제되지 않는다고 암시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실제로 지난 십몇 년 간 NAFTA에 참가한 세 나라의 시민단체들과 국제시민운동 세력이 가장 우려하고 반복적으로 항의해 왔다. NAFTA의 이 부분은 환경과 보건과 같은 분야에서조차 국가가 어떤 조치를 취할 때마다 그로 인한 외국인 투자자의 손익 변동을 먼저 고려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국가가 외국인 투자자를 어떻게 하겠다는 의도도 없이 그저 공공의 이익이라는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내놓는 일체의 선량한(bona fide) 입법과 행정조치들도 배상의 의무를 지게 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중재재판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의 의료 관련 시장은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관련된 보험과 연금 시장까지 더하면 의료산업은 급성장하는 분야이므로 미국의 투자자들이 이 시장에 들어올 것이라고 상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노무현 대통령은 '서비스 경제'의 도래를 원하고 있으니 이렇게 되는 상황을 반길 것이다.
그런데 이 분야의 투자가 개방된 뒤에 한국 국민들이 정부를 통해 의료나 보험, 연금 등에 대한 입법을 하거나 정책을 수립해 집행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 외국인 투자자들의 수익에 영향을 주지 않는 개혁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이 큰 규모의 시장에 들어온 그들이 과연 가만히 참고 있을까?
지구화 상황에서의 캐나다 의료보험 체계의 미래를 짚어본 300페이지의 <로마노우 보고서(Romanow Report)>(2002)는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의료보험 시장에 들어 온 외국인 투자자와 사적 기업들이 현실적으로 캐나다의 의료보건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행위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한 것들이 실제로 그렇게 될까? 그것들은 그저 가정과 추측에만 기반을 둔 지나친 피해망상의 시나리오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을 맡는 국제 중재재판소들도 다 공정한 재판절차를 운영할 것인데 무리하게 보이는 투자자들의 논리가 일방적으로 관철되도록 허용하겠는가? 과연 국제 중재재판소들이 애매하고 포괄적인 '수용' 개념을 설마 그대로 적용하겠는가? 또 보건이나 환경과 같은 각국 고유의 영역까지 무시해가면서 오로지 투자자산의 가치 변화만을 고려해 판결을 내리겠는가? 이런 것 저런 것 다 감안해서 균형 잡힌 판결을 내리도록 할 제도적 장치가 있지 않겠는가? 괜한 요란을 떠는 것일 테지.
하지만 국제 중재재판소들이 실제로 운영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각각의 국제 중재재판소는 서로 독립적으로 심사하고 판결하며, 사건의 유형 별로 구속력 있는 판례가 쌓이거나 그런 판례에 대해 일관성을 갖춘 판결을 내려야 할 의무도 없다. 따라서 분쟁의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서로 다른 판결이 나오게 마련이다.
게다가 수용에 관한 조항이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대해 누구도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특히 외국인 투자의 자산가치 감소의 경우 도대체 어느 정도 가치가 감소해야 수용이라고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와중에 있다.
미국 기업인 메탈클래드(Metalclad)와 멕시코 정부 사이에 벌어졌던 중재재판에서 나온 판결은 이런 논란에 대해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이 사건은 배상금의 규모가 컸던 데다가 환경 및 민주주의의 문제 등과도 얽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메탈클래드에 대해 쓰레기 폐기장 설치 허가를 취소한 멕시코 정부에 국제 중재재판소는 배상의 책임을 지웠다. 배상금 규모는 무려 1억6000만 달러였다.
중재재판소는 이 사건에 대한 판결문에서 간단하게 잘라 말한다. "본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환경보호 조치와 같은 동기라든가 의도 등은 고려하거나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고려해야 할 문제는 오로지 '투자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가' 하나뿐이라고. 그리고 수용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라서 NAFTA에서 수용이란 공개적이고 고의적이며 자인된 '재산 가져가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 암암리에 행해지거나 고의성이 없더라도 소유권을 훼방하여 그 소유자로부터 '사용권'이나 '그 소유를 통해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의 전체 혹은 상당한 부분을 빼앗는 결과를 낳을 경우에는 비록 투자대상국이 그로 인해 명백한 이득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해도 그런 소유권 훼방은 수용에 해당한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경제적 이득(reasonably-to-be expected economic benefit)'이라는, '자산'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로써 수용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고의성이 없는(incidental)' 경우라 해도 국가의 어떤 조치로 인해 투자자산의 가치가 감소되는 '결과'가 초래된 경우는 모두 배상의 대상이 된다는 내용에도 주목해야 한다.
즉 메탈클래드 사건을 담당한 중재재판소는 환경 문제에 대한 국가의 '경찰권(police power)'도 인정하지 않았고, 국가의 조치가 '선량한 동기'에 의한 것이었는지 여부도 묻지 않았다. 게다가 이 중재재판소는 '수용'을 정의하면서 대단히 확장된 의미의 '소유' 개념을 사용했다.
이렇게 볼 때 위에서 우리가 제기한 우려는 비현실적인 기우가 아닌 것이다. 기우이기는커녕 그 반대의 상황보다 현실화 가능성이 훨씬 높은 실질적인 가능성이다.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NAFTA 11장을 비롯한 자유무역협정이나 투자협정들에 들어 있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가 투자대상국의 민주주의, 헌법질서, 환경, 보건, 경제구조 등을 실질적으로 건드리고 훼손한 사례들이 도처에 허다하며, 비단 NAFTA뿐만 아니라 EU나 UNCTAD 등에서도 이런 문제에 대한 수많은 논쟁과 연구와 개선책 제시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를 쫄아들게 만드는 된서리 효과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를 이용해 투자대상국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입법 철회나 거액의 배상금만인 것도 아니다. 제소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투자대상국을 쫄아들게 해 어떠한 입법이나 행정조치도 아예 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규제당국에 대한 된서리(regulatory chill) 효과'다.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를 활용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는 단 하나, 즉 소송비용이다. 대략 몇 백만 달러에 달하는 소송비용의 부담으로 인해 배상의 규모와 승소의 가능성 등을 감안해 그 정도의 비용을 부담할 만해야 실제로 이 제도를 활용해 제소에 나서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을 값싸게 확보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제소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먼저 투자자가 투자대상국 관청에 '의도 통지(notice of intent)'를 보내게 되어 있는데, 이 단계에서 제소의 논리와 배상금의 크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면 국제 중재재판으로 가지 않고도 해당 국가를 뒤로 물러서게 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얼마나 벌어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런 일들은 '물밑'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입법이나 정책 아이디어를 착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의 저항을 감안해 정부가 스스로 무산시키는 규제도 적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사례로 필립 모리스 사건이 있다. 2001년 12월에 캐나다 정부는 담뱃갑에 '순한 맛(mild)'이라고 표기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도입하려 했다. 그러자 담배회사인 필립 모리스가 NAFTA 11장을 언급하면서 캐나다 정부에 항의서를 제출했다. 소송이 벌어질 경우 배상금 부담을 계산해본 캐나다 정부는 이 규제안을 철회하고 말았다.
좀 더 최근의 사례도 있다. 캐나다 뉴브런즈윅 주의 입법위원회는 오랜 숙의와 전문가 자문을 거쳐 뉴브런즈윅 주의 상황에 맞는 공공 자동차보험을 도입할 것을 제안했고, 이 방안에 대한 뉴브런즈윅 주민들의 지지도 상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존의 자동차보험 회사들이 이번에도 NAFTA 11장을 언급하며 제소할 가능성을 암시하고 나섰고, 결국은 뉴브런즈윅 주지사가 입법위원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NAFTA는 캐나다가 새로운 공기업을 설립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권리도 결국에는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투자자나 외국 기업의 이익을 크게 건드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공기업이란 것은 그 정의상 국민경제의 형평과 균형을 도모할 목적으로 설립되는 것이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시장에 관여하고 부의 재분배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니 NAFTA에 규정된 공기업 설립의 권리가 제대로 지켜질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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