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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공세', 국제법 체계를 완전히 뒤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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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공세', 국제법 체계를 완전히 뒤엎다

[한미FTA 뜯어보기 110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4)] 투자협정

특정 국가가 '익명의 모든 외국 투자자들'에게 '모든 투자'와 관련해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의 중재심판에 복종하겠다고 약속하는 일괄적인 계약 같은 것은 없을까? 있다. 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y)이 바로 그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국제 중재심판

특정 국가가 어떤 특정한 외국 투자자와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특정 국가와 협정을 맺는다면, 그 협정은 국가와 국가 간에 맺은 조약이니 흠결 없는 국제법적 효력을 갖는다. 그 협정에서 상대 국가에 "당신네 나라의 모든 투자자들은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모든 계약과 관련해 생기는 모든 분쟁을 ICSID의 중재심판 회부함으로써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일괄적인 동의를 해주는 것이 가능하다. 이 경우 ICSID는 투자협정의 양 당사국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외국 투자자 대 국가의 분쟁에 대해 구속력 있는 중재심판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투자협정은 국가의 주권을 침해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불만을 제기하는 외국 투자자가 나타나면 국가는 언제든 ICSID로 불려 나가야 하고, 제기된 불만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그 국가는 ICSID의 중재심판 결과에 복종해야 한다. 심지어 그 불만이 주권국가의 고유한 입법조치나 행정조치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볼 때 투자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국가주권을 외국 투자자와 ICSID에 양도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어떤 나라든 그야말로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이' 외국인 투자의 단비를 목 타게 기다리는 상황이 아닌 한 다른 나라와 투자협정 같은 것을 쉽게 체결하려 하지 않는다. 투자협정 체결은 195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있긴 했으나, 몇몇 후진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드물게 벌어지는 일일 뿐이었다. 이처럼 투자협정을 통해 국제 중재심판에 대한 복종을 약속한 나라가 많지 않았고, 따라서 ICSID라는 장이 만들어졌어도 국가를 상대로 한 분쟁사건을 들고 그 문을 두드리는 경우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적었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 지구화가 본격화되면서 각종의 양자 간 또는 다자 간 투자협정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결과로 현재 그 수가 2000개를 넘게 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1965년에서 1994년까지 30년 간 32건에 불과했던 ICSID 중재심판 건수는 1995년에서 2004년까지의 불과 9년 동안 140건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ICSID와 달리 분쟁발생 사실을 공표할 의무가 없는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나 국제통상회의의 국제중재법원(ICA)과 같은 그밖의 국제분쟁 조정기구들의 중재심판 건수까지 더하면 국제 중재심판은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말할 수 있다.

ICSID에서 일하는 법률가 오바디아(Eloise Obadia)는 2002년 취리히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면에서 양자 간 및 다자 간 투자협정과 ICSID의 관계는 '백마 탄 왕자님(Prince Charming)'과 '잠자는 미녀(Sleeping Beauty)'의 관계와 같다. ICSID는 생겨난 후 30년 동안에는 '잠자는 미녀'와 흡사했다. 등록되는 제소 건수가 연평균 한두 개에 불과했으니까. 그런데 양자 간 및 다자 간 투자협정이 확산되자 ICSID는 마침내 잠에서 깨어났다."

여기서 우리는 1990년대에 들어 투자협정이 왜 그렇게 급증하게 됐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의문에 답하는 것은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2차대전 이후 지구화의 3단계

2차대전 직후의 세계경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지구적 경제'라고 할 수 없었다. 지구 표면과 인구의 상당부분이 공산진영에 속해 있었고, 제3세계 국가들 가운데 다수도 사회주의나 혁명적 민족주의에 근거한 국가주의적 경제체제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방세계에서도 대부분의 나라들이 사회민주주의나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체제였고 무역, 통화, 노동, 조직, 기업 지배소유구조 등 모든 면에서 각종의 규제들이 존재했다. 이런 2차대전 직후의 세계경제 모습은 지구적 차원에서의 자본과 상품과 서비스의 완전한 자유이동이라는 자유무역의 이상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그래도 기록적인 고성장 기조에 힘입어 비교적 안정적으로 존속해 오던 지구적 체제는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해체되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지구화(globalization)의 세계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이 대략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70년대 초반에 미국 달러화를 기축으로 하는 고정환율제가 무너지고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2차대전 직후의 세계경제 체제에 최초의 충격이 가해진 것이 그 첫 번째 단계였다. 기존의 전후 세계 정치경제 체제를 떠받치던 포디즘적 생산체제는 통화와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전제조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전제조건이 허물어진 것이다.

그 충격은 스태그플레이션 등 경제적 혼란 외에 내란, 국제분쟁 등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졌고, 그 와중에 영국과 미국의 보수세력을 필두로 노동세력에 대한 본격적인 공격이 이루어지면서 코포라티즘적 사회체제가 와해되기 시작한다. 또 엄청난 양의 오일달러가 서방의 은행을 거쳐 제3세계 국가의 외채로 흘러가고 자본이동이 본격화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기간은 그 두 번째 단계였다고 할 것이다. 이 기간에 미국의 통화주의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살인적인 금리인상을 감행했고, 이 때문에 이미 많은 외채를 빌려 쓰고 있던 제3세계 국가들이 속속 외채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레이건 정부는 군사예산을 폭발적으로 늘려 소련을 압박하는 '제2의 냉전'에 착수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80년대에 제3세계에 시장개방이 확산된다. 외채 위기를 맞은 개발도상국에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들어가 악명 높은 '구조조정(structural adjustment)'을 감행함으로써, 폐쇄적적이던 개발도상국의 자급자족적 거시경제 구조를 순식간에 개방시켜버린다.

제3세계 국가들 가운데 종속이론을 탄생시키고 민족경제를 강조하던 나라들도 이제는 외국자본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가 하면, 무역과 금융을 개방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거나 해외에 매각하기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소련을 비롯한 공산진영도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과거 공산진영에 속했던 나라들에 새로 들어선 정권들도 거의 예외 없이 '시장과 개방만이 살 길'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그 후로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지구화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고, 이 시기를 2차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3단계 국면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버티던 '아시아적 자본주의' 국가들도 1997년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이 지구적인 '페레스트로이카'의 대열에 합류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전후 세계를 이루고 있었던 '갑각류처럼 단단하고 폐쇄적인 각국의 거시경제 구조'를 개방시키는 작업이 이 시기에 거의 완료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지구화라는 이상은 실현된 것일까.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민경제' 운운하면서 해묵은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고집하던 갑각류들의 껍질은 거의 벗겨졌지만, 그 껍질 속에는 기존의 가지가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제도와 관행과 장치들이 엄존하고 있다.

1990년대에 피어스 브로스넌을 내세워 새롭게 단장한 007 영화 제목대로 진정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All the World's A Stage)' 자본이 지구 곳곳을 누비며 새로운 수익의 가능성을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남은 장벽들을 제거하고 무력화시킬 효과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즉 지구화의 단계는 이제 거시경제의 차원에서 미시적, 정치사회적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전 세계에 강제되고 있는 '신헌정주의'

199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 정치학계에서 가장 뚜렷하게 부각된 열쇠말 하나는 바로 '지구적 통치(global governance)'였다. 양대 강국을 중심으로 편제됐던 냉전적 세계질서는 사라졌다. 그 후의 세계에 하나의 자율적 질서가 성립하도록 전 지구적 차원의 보편적 규범(norm)을 창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이 바로 핵심적인 문제였다.

이러한 논의의 대상이었던 1990년대의 세계질서를 스티븐 길(Stephen Gill)과 같은 비판적 지구정치경제학자는 다른 시각에서 해석한다. 지구의 어느 곳에서이건, 자본을 투자한 자의 권리와 이익이 제일의 우선성을 가지며 지상의 그 어떤 권위와 권력과 법률도 그러한 자의 목표를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전 지구의 정치적, 사회적 제도와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신헌정주의(New Constitutionalism)'가 바로 그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지구적 통치의 규범'으로서 전 지구에 강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자 간 및 양자 간 투자협정, 그리고 그 핵심을 이루는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도라는 새로운 현상이야말로 그러한 '신헌정주의'를 현실화시키는 효과적인 장치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투자협정과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도는 몇 백 년 동안 유지돼 온 국제법의 체계를 한 번에 넘어서서 주권국가의 모든 통치행위를 외국 투자자의 이익이라는 기준에 따라, 그것도 국제 중재심판이라는 상인법적 전통의 사적 기구를 통해 무력화시키는 무기가 되고 있다.

특히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가 도입됨에 따라 이제 국제 투자자들은 개별 국가 안에 존재하면서 투자의 수익성에 장애가 되는 오만 가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장벽들에 대해 예전처럼 하나하나 악전고투를 벌이며 싸울 필요가 없게 됐다. 국가를 책임자로 몰아 소송으로 국제법정에 불러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약하자면, 원래의 국제법 체계에서는 도저히 동렬에 설 수 없었던 국가와 외국 투자자가 이제 동급으로 맞먹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국가가 외국 투자자의 수준으로 내려와서 함께 상업적 행위자 차원의 동급이 된 것이 아니다. 외국 투자자가 주권국가와 동급의 수준으로 올라가서 그 입법활동과 행정활동을 분쟁의 대상으로 삼을 자격을 갖게 된 것이다.

게다가 뒤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그러한 분쟁이 벌어지는 곳은 공적 이익을 비롯해 다양한 고려가 이루어지는 보통의 공공 재판소가 아니라 당사자 둘과 심판관 한 명이 조용히 모여 상업적 고려에만 근거해 대충 합의를 보는 중재심판소다. 이런 중재심판소는 과거의 상인법이 부활한 것인 동시에 예전의 상인법과는 전혀 다른 국제법적 위력도 갖춘 존재다.

이러한 포복절도할 사태에 대해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의 반 하텐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투자자 보호 체제는 상인법의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 상업중재와는 달리, 민간인들 간의 행동을 규제하거나 그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체제의 목표는 정부가 다국적 기업들을 규제하는 방법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협정에 따라붙게 되는 투자자-국가 분쟁은 본질적으로 공적 분쟁, 즉 어떤 국가가 자기 영토 안의 개인들을 규제할 주권의 행사를 문제로 삼는 분쟁이다. 비록 이 체제가 국제 상업중재의 모델을 따르고 있고 사적 차원의 권위를 통치수단으로 삼고 있으나, 이 체제는 국제 상업이 아니라 국제 공법의 영역 안에 존재하는 것이며 여러 국가들의 권위로 뒷받침되는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개발도상국들은 그런 투자자 보호 체제를 포함한 투자협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김대중 정부 이래 우리나라의 경제관료들과 주류 경제학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입에 올린 핵심어가 바로 '외국인 투자 유치' 아니었던가. 우리 국가경제의 흥망성쇠는 모조리 여기에 달려 있다는, 그래서 그것에 도움이 되는 것은 절대선이요, 그것에 해가 되는 것은 절대악이라는 생각이 이미 우리 사회의 담론을 속속들이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이 이러하다면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이리하여 3단계의 지구화 전략의 마지막 단계, 즉 투자협정을 앞세운 자본의 공세와 '신헌정주의'가 세계 곳곳으로 힘을 뻗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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