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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심판 피난처'까지 생겨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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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심판 피난처'까지 생겨난 이유

[한미FTA 뜯어보기 114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8)] 공공이익과의 충돌

앞 회에서 보았듯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에 의한 국제 중재심판은 공적 재판과는 전혀 다른 원칙과 절차로 구성되고 운영된다. 그러나 그 중재심판에서 논의되는 사안은 투자자의 수익성에 영향을 주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입법과 행정 활동이니, 전통적으로 국내공법 및 국제공법 체계에서 다루어져 온 '공공이익'과 관계가 있다.

이 치명적 결합의 결과는?

그렇다면 이런 치명적인 결합, 즉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를 통한 공공이익과 국제 중재심판의 결합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공공이익과 관련된 사안들에 대한 법적 판결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 즉 정당성, 투명성, 석명성이라는 세 가지 요건에 비추어 그 결과를 살펴보자.

① 정당성(legitimacy)

먼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에 의한 중재심판은 일반적인 국내법 및 국제법 체계의 바깥에 있는 것임을 기억하자. 따라서 이 심판에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법이 있다고 보기 힘들며, 가장 우선하게 되는 것은 해당 소송의 기반이 되는 투자협정에서 투자자의 이익 보호에 대해 양국이 합의한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다.
▲ 메탈클래드가 멕시코에 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려고 했던 곳. ⓒKBS

물론 중재심판소의 법률가들은 이밖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국제법의 원칙들을 폭넓게 고려할 수 있다. 만약 NAFTA의 경우처럼 협정 당사국들의 통상 관련 부서들이 함께 참여하는 자유무역위원회(Free Trade Commission)와 같은 것이 있어서 관련되는 협정 조항들에 대한 해석(interpretive statement)을 내놓는다면, 이는 중재심판소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된다.

그렇다면 판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심판관의 자격은 어떠한가? 이것이 또 하나의 큰 문제다. 중재심판에서 다루어지는 쟁점들은 환경, 보건, 지방자치, 문화, 인권 등과 같은 무수한 '공공정책'의 제반 사안들을 포괄한다. 하지만 중재심판은 그러한 다양한 쟁점들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 어떠한 금전적, 상업적 득실이 발생했으며 그것이 협정을 위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좁은 의미의 경제적인 것을 따지는 데 국한된다. 따라서 심판관의 자격도 제기되는 구체적 쟁점들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금융이나 상업 등에 관련된 법 전문가일 것만을 요구한다. 한 예로 ICSID의 관련 조항(14조 1항)은 심판관의 자격에 대해 "높은 도덕적 인격과 법, 상업, 산업 혹은 금융에 있어서 능력을 인정받은 자로서 독립적 판단을 내릴 것으로 믿을 수 있는 자"라고만 규정해놓고 있다.

여기서 또 문제가 생긴다. 원래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과 그것과 관련해 내려지는 법정의 판결은 그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복잡한 체계를 바탕에 깔고 있다. 먼저 그 판결의 모태인 법은 인민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여겨지는 의회에서 만들어진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법을 집행하는 주체인 행정부의 구성은 물론이고 그 법에 의거한 사법부의 판단도 주권국가의 엄격한 법규와 절차를 따라 이루어지고 운영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떤 사안에 대한 법정의 판결이 그 나라 안의 국민들과 전문가, 관련 단체 등의 의견과 정치적 고려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어 비로소 만인을 승복시킬 수 있는 정당성(legitimacy)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 중재심판소에서 내린 결정은 과연 그와 같은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앞에서 잠깐 본 메탈클래드(Metalclad) 사건에서처럼 중재심판소가 "공공의 이익 등은 본 심판소에서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공언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모든 사안이 오로지 '자산가치에 준 영향과 그에 대해 애초에 투자협정에서 합의되어 규정된 바'라는 좁은 틀에서 고려되지 않겠는가?

메탈클래드 사건은 더욱 심각한 또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사건은 중재심판소의 재정(award)이 심지어 해당국 국내의 법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판단할 경우에도 우월한 권위를 가짐을 보여주었다.

메탈클래드 사건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폐기장 설립허가를 교부할 권한이 중앙정부에 있는가, 아니면 지방자치단체에 있는가였다. 이에 대해 멕시코 측의 법률가들은 멕시코의 국내 법률로 볼 때 그 권한의 소재는 지방자치단체에 있고 따라서 멕시코 중앙정부에는 책임이 없다는 의견을 중재심판소에 보내왔다. 하지만 중재심판소는 그러한 의견을 묵살해버리고 폐기장 설립허가 교부권은 중앙정부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유권해석을 내려버렸다. 훗날 이 사건을 검토하게 된 밴쿠버의 지방법정에서 분명히 판단됐듯이, 이러한 유권해석은 명백하게 한 나라의 법적 자율성이라는 영역에까지 중재심판소가 침범해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메탈클래드 사건은 위와 같은 경우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것임을 암시한다. 이 사건처럼 멕시코 중앙정부가 거액의 배상 위험에 처한 순간에 멕시코 국내의 법률적 의견이라는 것은 항상 멕시코 정부에 유리한 쪽으로 편향되게 나올 가능성이 있고, 멕시코 국가와 외국 투자자라는 양쪽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경우에 중재심판소는 그런 멕시코 국내의 법률적 의견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 비추어도 중재심판소의 재정이 우선권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② 투명성(Transparency)

일반 법정의 재판은 그 기록을 누구나 볼 수 있고, 그 절차도 원칙적으로 공개된다. 하지만 국제 중재심판은 앞에서도 보았듯이 '비밀성'을 그 원칙으로 한다. 공공의 이익에 아무리 중차대한 문제라고 해도 분쟁의 양 당사자와 심판관 외에는 누구도 국제 중재심판의 내용을 알 수 없고, 그 심판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더 더욱 불가능하다.

③ 석명성(Accountability)

공적 사안에 대한 법적 판결은 그것이 어째서, 어떤 원칙으로 내려졌는지를 누구에게나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래서 누가 판결을 내리든 동일한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석명성(釋明性)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앞에서 본 대로, 중재심판의 성격이란 기본적으로 상업적 관계에서 분쟁을 빚게 된 쌍방이 서로 합의를 보는 것이다. 따라서 중재심판의 결과가 명쾌하고 일관된 석명성을 과연 갖게 되느냐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다음 세 가지를 검토해보자.

첫째, 동일한 분쟁 사안에 대해 국제 중재심판은 여러 개의 중재심판소에서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 앞의 글(7회)에서 본 '새서울방송'의 예에서 폭스TV를 필두로 한 여러 '투자자'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규칙과 조건을 골라 한국정부를 서로 다른 중재심판소로 불러낼 수 있다. 이런 '복수 법정(multiplicity of fora)'의 위험은 이 기획연재의 앞부분에서 설명한 체코 공화국의 경우 등에서 현실화된 바 있다.

그리하여 최근 NAFTA에서처럼 복수 법정의 위험으로 인해 동일한 사실관계로 인해 여러 개의 소송들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그것들을 하나로 합쳐서(consolidation of related cases) 진행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협정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두고 있지 않아서 동일한 사안이 여러 개의 중재심판 소송이 제기되고 진행될 가능성이 항존한다. 예를 들어 인도의 다브홀(Dabhol) 발전소 프로젝트(Dabhol)와 관련된 국제 중재심판의 경우에는 무려 7개가 넘는 주체들에 의해 각각 다른 투자협정에 근거해 제기된 소송이 동시에 진행된 적이 있다.

둘째, 각각의 중재심판소는 제각각 독립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다. 비슷한 사건, 심지어는 동일한 사건을 심의하게 된다 해도 각각의 중재심판소가 다른 중재심판소의 결정을 판례로 삼아야 할 의무가 전혀 없다. 즉 '판례 구속의 원칙(stare decisis)'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일한 사실관계를 놓고도 중재심판소들이 서로 모순되며 심지어는 반대되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앞에서 소개한 CME 대 체코 공화국의 사건에 대한 판결이 그 전형적인 예다.

이러한 혼란으로 인해 어떤 구체적인 소송이 제기됐을 경우 그 대상이 되는 국가의 정부가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해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주사위놀음(crapshoot)'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 논평가도 있었다.

국제 중재심판이 이렇게 극도의 예측불가능성을 갖고 있다면 그 피해자는 주로 누가 되겠는가? 국가 쪽이 될 수밖에 없다. 투자자는 맘대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국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따라서 소송의 예측불가능성이 크다면 투자자 쪽에서는 소송비용의 부담만 제외한다면 "까짓 거 밑져야 본전"이라며 소송에 뛰어들겠지만, 국가의 입장에서는 소송에 휘말려봐야 아무것도 못 얻고 자칫 피만 흘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주로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처지인 개발도상국과 준개발도상국들은 외국의 투자자로부터 '소송 의도서(notice of intent)'가 날아오면 실로 안심하기 어려운 처지가 된다. 따라서 이런 처지가 된 나라의 정부는 실제로 소송이 벌어지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외국 투자자의 비위와 눈치를 살피느라 국내의 관련 입법이나 행정 활동을 스스로 위축시키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국내의 재판은 재심을 거쳐 '삼세판'까지도 갈 수 있지만, 국제 중재심판은 1심으로 끝이다. 그야말로 '단칼'에 끝나는 승부다. 국제 중재심판의 틀에서는 애초부터 삼세판이 가능하도록 '상급 기관'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이치에 닿지 않는 일일 수 있다. 그래서 중재심판소의 결정이 나오면, 패배한 국가는 군말 없이 결정된 액수의 배상금을 물어내는 수밖에 없다. 어떤 소송의 근간이 되는 투자협정이 살아있는 한, 그 소송의 중재심판에서 내려진 결정은 투자협정의 두 당사국 사이에서는 국제법적 효력을 갖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외는 있다. 먼저, ICSID가 주관하는 중재심판의 경우 결정을 내부적으로 다시 심의하는 경우가 있다(Annulment Committee 규정). 하지만 그 사유는 "심판소 구성과정이 부적절했거나, 심판소가 명백하게 권능을 넘어섰거나, 그 구성원이 부패를 저질렀거나, 기본적인 절차의 규칙이 심각하게 위반됐거나, 결정의 논리적 근거가 진술되지 못했거나"하는 5가지 경우로 국한된다.

ICSID 외의 다른 틀에서 진행되는 국제 중재심판의 경우에는 중재심판이 벌어진 장소(거의 항상 제3국이다)의 국내법에 따라 그 나라 법원이 중재심판 결정을 재검토하는 것이 허용되는 게 관례다. 앞에서 본 메탈클래드 사건에서 중재심판이 벌어진 캐나다 밴쿠버의 법원이 이 사건을 재검토했던 것이 그 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중재심판이 벌어지는 장소는 항상 분쟁당사자 간 합의에 의해 선택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투자자는 중재심판이 벌어지는 장소가 자신에게 불리한 국내법을 가진 나라가 되지 않도록 얼마든지 힘을 쓸 수 있다. 게다가 장소 선택의 최종 결정권을 가진 심판관은 자신이 내릴 결정이 도전받는 일이 없도록 아예 국내법에 국제 중재심판에 끼어들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는 나라를 중재심판의 장소로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좀 어이없는 일이지만, 1980년대 이후에 가급적 많은 국제 중재심판을 자국에 유치해 법률서비스업을 부흥시켜보려는 목적에서 스스로 국제 중재심판에 개입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국의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는 나라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벨기에가 가장 심한 경우다. 벨기에는 이미 1985년에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국제 중재심판에 대해 국내에서 재심의할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해버렸다고 한다. 국제적 자본이동을 가급적 자국으로 유도하기 위해 조세를 철폐해버린 '조세회피지역(tax haven)'들과 비슷하게 국제 중재심판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중재심판 피난처(arbitration haven)'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새로운 지구화 전략을 떠받치는 기둥

국제 중재심판의 구체적인 절차와 성격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그것을 앞에서 거론했던 '투자자 보호'라는 말의 의미와 결합시켜 음미해볼 때가 됐다.

우리는 앞에서 '투자자 보호'란 외국 투자자가 투자대상국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구조 전체에 걸쳐 돈이 될 만한 자산이면 그게 어떤 종류이건 취득하면, 그 자산의 수익성을 떨어뜨릴 만한 모든 종류의 제도적, 법률적, 행정적 변화를 막아야 할 책임이 그 투자대상국 국가에 있다는 뜻임을 보았다.

그리고 이런 책임을 등한시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에 책임을 다시 따져 물어 변화된 것을 원상복구하든가, 아니면 그 변화로 인해 초래된 자산의 가치손상만큼의 배상금을 물어내도록 결정하는 중재심판소가 어떠한 성격을 갖고 있는지를 좀 전에 보았다. 또한 그렇게 국가에 요구되는 조치는 공공이익에 대한 고려와는 형식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거리가 있으며, 오로지 '자산가치의 변동과 그에 대한 애초의 협정 내용'이라는 지극히 상인법적인 고려에서 결정되는 것이 국제 중재심판이라는 점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결론은 '외국 투자자의 수익성을 해치는 일이 없게 하는 방향으로 정치, 행정, 문화, 환경 등 사회 전체에 걸친 국내의 제도와 관행과 법률이 순응되도록 하거나 바뀌도록 하는 것'이 결국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1980년대에 IMF나 세계은행을 앞장서 추진한 '구조조정'이라는 거시적 차원의 지구화 전략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각국 국내의 각종 제도와 관행을 투자자의 수익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재구조화하도록 하는 1990년대 이래의 미시적 지구화 전략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는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방패'의 성격을 넘어서는 것으로, 오히려 투자자들이 투자대상국 사회 전체를 공격하는 '창'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럴까?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모두 이론적인 설명이요, 분석이요, 추론이 아닌가? 실제로 현실에서 나타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의 실상도 '방패'가 아닌 '창'인가? 이 세상이 그래도 최소한의 상식과 양식이 지배하는 곳일 텐데, 설마 그럴까? 이 글은 세상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만 보도록 몰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다음 회부터는 이 세상의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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