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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배상금을 33조원이나 요구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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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배상금을 33조원이나 요구했다고?

[한미FTA 뜯어보기 118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12)] 상황과 경위

앞에서 살펴본 대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그 내적 논리로나 실제 현실에서 빚어내는 상황으로나 실로 놀랄 만한 심각한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정부는 이 제도가 "외국 투자자 보호에 관련해서만 발동되는 방어적 제도"이며 이미 1960년대부터 존재해 온, 세계의 모든 자유무역협정(FTA)과 양자 간 투자협정(BIT)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는 표준절차"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왜 이런 주장으로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과연 그럴까?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그렇게 부당한 국가의 조치에 대해서만 발동되는 예외적인 장치일까?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경제에 뿌리 내린 표준절차이니, 이 제도에 대한 비판과 경각심은 국정브리핑에 글('정부제소권은 힘의 논리 배제 장치', news.go.kr, 2006년 7월 26일)을 쓴 어느 관료의 말처럼 "밑도 끝도 없는" 것일까?

아니면 필자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대로 이 제도는 투자대상국을 자본의 이해와 요구에 맞도록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무기로서 1990년대 이후, 특히 최근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맞물려 갑자기 힘을 얻고 있는 공격용 '창'인가? 또 그것은 '표준절차'이기는커녕 세계 곳곳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여기저기서 거부당하고 있고, 급기야는 그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조차 시민사회가 폐지운동에 나선 제도인가?

삼사 년 전부터 폭증하기 시작한 소송

먼저 아래 그림을 보자.
▲ ⓒ 프레시안

이 그림을 보면 투자자와 국가 간 중재심판이 실제로 벌어진 건수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미미했지만 그 뒤로 기록적으로 늘어나 이제는 알려진 것만으로도 누적 건수가 200건을 훨씬 넘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 3년 간의 증가세는 괄목할 만하다.

게다가 이 그림에 표시된 건수는 사건을 등록하게 되어 있는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접수된 사건과 그밖의 '알려진' 사건만을 합산한 숫자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알려지지 않은 채 여러 다른 제도와 규칙들에 따라 국제 중재심판이 진행되는 것들과 정식으로 소송까지 가지는 않았더라도 소송의도 통지가 이루어진 것들까지 더한다면, 다시 말해 사실상 분쟁이 시작된 것들까지 다 더한다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와 관련된 실제의 사건 수는 이 그림에 표시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며, 그 증가세도 훨씬 더 극적일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국제 중재소송의 배상금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될까? 이 또한 비밀에 붙여진 채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게다가 '알려진 경우'라 해도 최종 판정이 나올 때까지는 투자자가 투자대상국에 배상청구를 하지 않아도 되고, 투자자가 소송에서 배상요구액을 올려 잡는다 해도 그 금액이 중재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금액과는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배상요구액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그리고 중재심판소의 판결에 따라 실제로 오가는 배상금의 규모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실제 배상 판정이 내려져 일반에 알려진 경우들을 일별해 보면 그 금액이 상당한 사건들이 다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몇 가지 경우만 살펴보자.

▲ 2001년 12월 3일, 라우더 사건에서 체코 정부가 2억7천만 달러(상당액의 이자 추가)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 나옴.
▲ 2004년 7월 1일, 옥시덴탈 사건에서 에콰도르 정부가 7100만 달러(이자 추가)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 나옴.
▲ 2004년 12월 29일, CSOB 사건에서 슬로바키아 정부가 8억2400만 달러(법정 비용으로 1천만 달러 추가)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 나옴.
▲ 2005년 5월 15일, CMS 사건에서 아르헨티나 정부가 1억3320만 달러(이자 추가)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 나옴.
▲ 2005년 2월, 레바논 정부는 프랑스-레바논 투자협정을 어겼으므로 2억6600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 나옴.
▲ 2005년 5월, 아르헨티나 정부는 미국-아르헨티나 투자협정을 어겼으므로 1억3300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 나옴.
▲최근의 소송으로는 러시아 석유기업 유코스(Yukos Corporaton)의 지배지분을 가진 주주들이 러시아 정부를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3건의 중재심판이 있으며, 주주들이 요구한 배상금 총액은 330억 달러로서 국제 분쟁조정 사상 최대. (출처: UNCDAD)

우리 외교통상부 관리들의 믿음과 달리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실제로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며, 앞으로 그 위력의 크기와 영향력 행사범위는 급격하게 확대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즉, 이 제도는 1960년대에 성립된 ICSID 따위에 그 근원이 있다고만 볼 것이 아니다. 이 제도는 1990년대 이후, 특히 21세기에 들어서 강화되고 있는 '자본에 의한 각국 내부 사회 재구조화 전략의 공세'의 수단이며 그 일부임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제도가 과연 우리 정부의 관리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투자자들이 '정당한 보호'를 받는 데 이용하는 '방어적인 것'인지도 극히 의문이다. 프랑스의 투자자들은 도대체 무슨 '해코지'를 당했길래 저 가난한 레바논 정부에 3천억 원에 가까운 큰돈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을 덮어씌운 걸까? 러시아에 투자한 '선량한' 외국 투자자들은 도대체 무슨 '피해'를 입었길래 자신들이 '보호'받는 데 33조 원이나 필요하단 말인가? 위에 열거한 금액을 그 배상을 지시받은 나라 각각의 경제규모 및 정부예산의 크기와 비교하여 생각해보라. 그것은 '힘없는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배상금'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정복자가 된 투자자들'이 뜯어가는 '승전배당금'에 더 가깝지 않은가.

스티글리츠 "사업가들의 권리장전이 민주주의를 약화시켜"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1990년대 이후 각종 시민운동단체들, 특히 환경, 보건, 노동 관련 단체들로부터 집중적인 비판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1999년 시애틀 시위를 계기로 한층 더 확산된 각종 반세계화 시위에서 성토대상이 되고 있다.

또 이러한 운동세력 외에도 세계 각국에서 자국의 사법체계, 주권, 민주적 질서 등이 침해되는 것을 걱정하는 보수세력도 이 제도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한 이런 비판의 스펙트럼은 조금만 시야를 넓혀서 인터넷의 검색포털에서 몇 개만 관련 검색어만 쳐 넣으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니, 여기서 재삼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기에서는 세계적으로 명망이 있는 경제학자 두 사람의 의견을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그간 이 제도에 대해 세계적으로 형성되어 온 여론이 어떠한 것인지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먼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전 세계은행 부총재인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의 견해를 들어보자. 그는 2004년 1월 6일자 <뉴욕타임스>에 'NAFTA, 그 깨어진 약속(The Broken Promise of NAFTA)'라는 글을 기고해 그때까지 10년 간에 걸친 NAFTA의 경험과 성패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가운데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요약했다.

"…NAFTA에 숨겨져 있던 것은 새로운 종류의 권리장전(사업가들을 위한)이었으니, 이는 북미 전체에 걸쳐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NAFTA의 규정에 의하면, 만약 외국 투자자가 각종 규제에 의해 자신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믿게 될 경우 (그러한 믿음이 얼마나 정당한가와는 무관하게) 그는 그 피해를 놓고 특별 심판소에 소송을 걸 수 있는데, 그 특별 심판소란 정상적인 법적 절차가 보장하는 투명성을 갖춘 곳이 아니다. 그래서 성공을 거두면 그는 해당 중앙정부로부터 직접 배상을 받아낸다. 이로 인해 환경, 보건, 안전을 위한 각종 규제들이 공격을 받아 존폐의 위기에 처한다. 현재까지 소송이 벌어진 건수의 배상액을 합치면 130억 달러가 넘는 상황이다.

이 중 많은 소송은 아직 판정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 제도로 인해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NAFTA 통과 이전에 한번도 공개적이고 충분한 토론이 있었던 적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정부의 각종 규제로부터 피해를 입을 때마다 배상을 받아내고자 오랫동안 애를 써 왔지만, 미국의 법원과 의회는 그러한 시도를 무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사업가들은 이처럼 그들이 국내의 민주주의 정치과정 때문에 공개적으로 얻을 수 없었던 것을 무역협정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성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외국 기업들의 행동, 예를 들어 그들이 자연환경에 저지른 일 때문에 피해를 입은 이들은 국제 심판소에 제소하여 배상을 받아낼 수 있는, 마찬가지의 보호수단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그리하여 환경, 보건, 안전에 아무리 중요한 규제활동이라 해도 NAFTA가 결국 그 숨통을 막아버릴 것이라는 걱정이 제기되는 것이다. … [미국은] 남미의 여러 나라들에서 투자자에게 '각종 보호'를 해주기 위해 그 나라들의 국가주권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기를 원하고 있다."

혹자는 "스티글리츠는 명성은 높지만 원래부터 지구화나 국제 자본이동에 대해 적대적 입장을 가진, 왼쪽으로 치우친 인간 아니냐"면서 그가 내린 평가의 중립성을 문제 삼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미국이 추진하는 종류의 투자협정 및 무역협정에 포함되는 '투자자 보호' 장치의 파괴적 위력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이는 그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자유무역과 WTO 체제 옹호자인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도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스티글리츠의 견해가 환경, 보건, 민주주의 등과 같은 규범적, 윤리적 사안에 대한 이 제도의 역작용을 지적하고 있다면, 바그와티는 국가가 스스로에게 이로운 경제정책을 추구할 능력에 이 제도가 얼마나 큰 제약이 될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다. 미국은 2003년에 NAFTA보다 더 폭넓게 '투자'를 정의한 투자조항을 포함해 소위 'NAFTA 플러스'라는 강력한 자유무역협정(FTA)을 싱가포르 및 칠레와 체결한 바 있는데, 이것들은 외국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각국 정부의 자본통제 재량권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그와티와 그의 동료는 <파이낸셜타임스> 2003년 3월 17일자에 기고한 '자본통제 금지는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다(A Ban on Capital Is A Bad Trade-Off)'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부시 행정부가 이 싱가포르 및 칠레와의 협정을 '주형(鑄型)'으로 삼아 이후의 다른 무역협정(아마 도하라운드(Doha Round)도 여기에 들어갈 것이다)을 이것과 똑같이 찍어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 협정에 포함되는 자본통제 조항들을 받아들일 경우 실로 광범위한 피해를 초래할 무역정책을 낳게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다른 나라들에게 자본통제를 금지시킬 경우엔 결국 미국 외교정책의 붕괴가 초래될 소지가 다분하다. 어떤 나라 정부가 금융위기에 봉착하여 단기적 자본통제를 강행했다고 해보라. 이 조치로 인한 배상의 요구가 줄줄이 나오겠지만 그 배상은 오로지 미국 투자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개발도상국의 시민들은 금융위기로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가운데 부유한 미국의 기업과 개인들만은 오히려 배상을 챙기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끓어오르는 미국에 대한 분노에 대처할 방법을 찾기란 정말로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은 2001년 외환위기로 인해 외환통제를 시도하다가 투자자들이 제기한, 40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송에 휘말린 아르헨티나의 경우를 배경에 깔고 한 이야기로 보인다. 바그와티의 이 경고는 싱가포르와 칠레의 뒤를 이어 부시 정부와 FTA를 체결하게 될 나라(현재로서는 대한민국이 바로 그 나라가 가능성이 가장 높다)가 잘 새겨둘 필요가 있다.

좌초된 다자간 투자협정(MAI)의 의미

1990년대에 일어난 지구정치경제의 제도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분수령 중 하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1997~98년에 진행되던 다자간 투자협정(MAI: Multilateral Agreement on Investment) 논의가 결실을 내지 못하고 좌초한 사건이다.

1998년에 벌어진 MAI의 좌절은 이후 1999년 말의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를 거쳐 칸쿤 회의와 도하라운드에서 보다 가시화된 '지구화 로드맵의 탈선'으로 이어지는 긴 여로의 시작점에 해당한다. 이로써 탈선의 길로 접어든 '지구화 로드맵'은 세계적 차원에서의 다자주의적 무역질서의 꿈과 더불어 세계무역기구(WTO)의 협정문에 담겨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 정부의 관리들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세계의 모든 투자협정이나 무역협정에 당연히 들어가는 '표준적인 절차'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표준적인 절차가 포함된 MAI를 어째서 개발도상국도 아닌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발전된 OECD 국가들이 거부하게 되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원래 MAI의 초안에 포함된 외국 투자자 보호 조항들은 NAFTA의 그것에 맞먹는 광범위하고도 포괄적인 것이었다. '투자'의 범위도 좁은 의미에서의 기업증권 구매 따위를 훨씬 넘어서는 폭넓은 것이었고, 투자에 대한 부당한 '수용'에 대해서는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한 배상 의무가 부과돼야 한다는 점도 명시돼 있었다. 게다가 투자자가 정부를 상대로 중재심판을 걸 수 있는 장치도 아주 튼튼하게 마련돼 있었다. 이 초안에는 국가 간에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와 투자자와 국가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를 구분하고 각각의 경우에 대해 서로 다른 해결절차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투자자는 NAFTA에서와 마찬가지로 MAI에서도 국가에 준하는 지위를 누리는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런데 투자자에 대한 그렇게 포괄적이고도 철저한 법적 보호장치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국내 정치사회 체제를 일정하게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논의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1997년 4월 서울에서 열린 회의서 독일 대표 미카엘 그라우(Michael Grau)는 이를 위해서는 각국의 노동제도와 노동 관련 정부부서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꺼냈고, 이는 곧 여타의 사회제도와 환경 부문의 쟁점들에 대한 논의로 번져갔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런 여러 분야들에서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는, 시장질서에 부합하는 기율(discipline)이 관철되도록 해야 한다는 관점이 두드러지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점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협정 초안에 반영됐다. 투자자 보호에 관한 규정이 대단히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모습을 띤 반면 노동, 사회, 환경에 대해서는 오직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명제들만 초안에 반영됐고, 구체적으로 그 명제들이 어떻게 실현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협정 초안의 내용을 알게 된 각국의 노동, 사회, 환경 분야 단체들의 저항이 일어났다. 이미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던 1997년 당시에 원래는 대외비였던 이 협정 초안이 누설되어 인터넷을 통해 세계 곳곳에 알려지게 됐다. 이리하여 협정 초안이 회람되게 된 것은 '지구의 친구들(Friends of the Earth)'과 '공공시민(Public Citizen)'을 비롯한 각국의 시민운동 단체들로 하여금 일제히 일어서게 하는 계기가 됐다.

협정 초안을 들여다본 시민운동 단체들은 국가 외에는 오직 유일하게 법적 존재가 인정되는 실체가 투자자뿐이라는 초안 내용을 알게 되자 경악했다. 이들은 MAI가 '자본의 지구화'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게 될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적어도 비공식적인 위치에서나마 노동, 사회, 환경 분야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그 존재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력을 OECD 국가들에게 가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1997년 말에 에틸(Ethyl)이 캐나다 정부의 환경보호 조치를 중재심판에 제소한 사건이 불거진 것은 이들의 공포심을 더욱 증폭시켰다고 한다.

한편 이러한 사태 진전에 대응해, MAI의 추진력인 각국의 주요 자본단체들(미국의 국제사업위원회(US Council of International Business), 일본의 경단련(經團聯) 등)도 각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들은 심지어 구속력이 없는 종류의 표현으로라도 협정에 노동, 환경, 사회 등에 관한 진술이 포함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시민운동 세력과 정면으로 맞서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갈등이 계속되면서 지구적 자본진영 내의 담론에서는 MAI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커져간다. 즉 MAI가 원래 꿈꾸었던 '진정으로 자유로운 자본투자의 지구화'라는 그림이 실현되지 못하고 대신 아래로부터의 반대에 발목이 잡혀 노동, 사회, 환경과 관련된 온갖 제약과 조건을 덕지덕지 붙인 상태로 성립되는 투자협정이 고작이라면 그런 협정은 아예 없는 편이 더 낫지 않은가라는 회의론이 확산된 것이다. 결국 1998년에 MAI는 추진력을 잃어버리게 되어 협정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하고 만다.

이 MAI의 시도 및 그 좌절의 과정이 1990년대 지구정치경제의 한 분수령이라고 평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공산주의의 몰락과 세계시장의 급속한 팽창으로 특징지어지는 1990년대 초반은 자본과 시장의 지구화가 대세로 승승장구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때 NAFTA가 실현되고 WTO 체제가 출현했으며, 전 세계에 걸쳐 민영화와 자본의 국제적인 진출이 확대됐다.

이러한 추세에 대한 저항과 반대가 없었거나 위축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고, 그런 저항과 반대가 조직노동자들과 같은 전통적인 좌파 진영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성, 환경, 노동, 사회, 인권 등과 관련된 수많은 사회적 쟁점들에 대한 논의의 과정에서 자본의 지구화와 그것을 보장하는 투자자 보호 협정이라는 것에 대한 저항이 조직화되고 있었고, 그 결과로 MAI라는 자본의 지구화라는 자본 쪽의 환상적 프로젝트를 놓고 정명충돌이 빚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1998년이 지나고 나자 지구적 자본도, 지구적 저항세력도 각각 새로운 방향으로 길을 모색하게 된다. MAI 반대 운동을 계기로 서로 연대와 소통의 경험을 쌓은 저항세력은 이후 1999년 시애틀에서의 대규모 반지구화 시위를 통해 본격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지구적 자본은 서서히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은 물론이고 각종 사회운동 단체까지 포괄하다보니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던 각종의 다자주의적 틀보다는 지역 간 혹은 양자 간 투자협정이나 무역협정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에 특히 전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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