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15시 21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이병한"검색결과 (전체기사 중 231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
몰락하는 EU, 부상하는 중국…마지막 승자는?
새 천년, 새 천하를 내다보는 큰 논의가 있었다. '제국(Empire)'이다. 제국주의 시대가 가고, 제국의 시대가 왔다는 선언이었다. 이 제국이 미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분산되고 네트워크화된 권력망 자체를 '제국'으로 표상한 것이다. 국민국가가 자국의 울
이병한 UCLA 한국학센터 연구원
2012.07.18 10:17:00
'일본의 속살', 오사카가 수상하다
하시모토 시장의 기세가 거침이 없다. 일국의 총리보다 지방의 수장이 나라를 이끄는 듯하다. 지난해 '지역 정당' 오사카 유신회는 지방 선거에서 낙승을 거두었다. 민주당, 자민당은 물론 공산당까지 하시모토의 반대편에 섰음에도 가뿐히 승리한 것이다. 내친김에
2012.07.03 16:08:00
화교의 역습…충칭 지고 광둥 뜬다!
광둥이 뜬다. 보시라이의 낙마로 충칭 모델이 주춤하는 사이, 광둥 모델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광둥 성은 인구 9000만에, 국내 총생산(GDP)은 한국에 필적한다. 일개 성(省)으로만 간주하긴 힘든 물리적 실체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광둥 성 서기 왕양(汪洋)은 차
2012.06.19 10:18:00
티베트 '독립 국가'는 정답이 아니다!
지난 글의 제목이 "오키나와는 일본이 아니다!"로 나갔다. 그러하기도 하고, 아니하기도 하다. 오키나와는 일본의 일부이되, 일본만은 또 아닌 것이다. 동아시아의 지역 질서란 '국제 질서'처럼 국가만으로는 재단할 수 없음이 요지라 하겠다. 즉, 국제 질서는 지역
2012.06.06 09:06:00
오키나와는 일본이 아니다!
올해로 오키나와 복귀 40주년을 맞는다. 1972년 5월 15일의 일이었다. 미군의 지배하에 있던 오키나와가 다시 일본으로 편입된 것이다. 헌데 '복귀'라는 용어가 새삼 문제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오키나와의 자립과 자치가 모색되는 가운데, 이름부터 바로 잡는 정명
2012.05.16 11:47:00
동해에 中 군함 출몰…北 중국으로 넘어가나?
4·11 총선을 멀리서 지켜봤다. 낙담이 크다. 이명박 심판은 박근혜가 대신하(는 듯 시늉하)고, 미덥지 못한 야권부터 심판받은 꼴이다. 돌아보면 '반 이명박'을 명분삼은 친노(親盧 ) 486의 부활부터 석연치 않았다. 노무현 스스로 "구시대의 막내"라 토로하지 않았
2012.04.18 08:10:00
중국의 홍콩화? 홍콩의 중국화? 진실은…
홍콩 행정장관 선거가 지났다. 렁춘잉(梁振英)이 당선되었다. 타이완에 이어 홍콩까지, 속속 2010년대 중화권의 꼴이 갖추어져 간다. 렁춘잉의 당선을 쉬이 '친중파의 승리'라고 일갈하기는 힘들다. 올해 초만 해도 그가 당선되리라 예상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2012.04.02 08:03:00
안개 속의 중국…'3월 내란설'의 진실은?
베이징이다. 3년 만이다. 열흘째를 맞고 있다. 내내 안개가 짙다. 도시 전체가 희뿌옇게 가라앉았다. 통 앞이 뵈질 않는다. 정국은 더욱 흐릿하다. 보시라이가 실각했다. 중국 좌파들의 희망이 끝내 낙마한 것이다. 양회 당시만 해도 건재를 과시했건만, 전격적인 파면이 아
2012.03.26 07:44:00
3·11 쇼크! 중국을 따라야 일본이 산다?
갈림길에 선 일본시간은 참으로 빠르다. '3·11'이 벌써 1년 전 일이다. 지진과 해일, 핵발전소 사고가 겹친 초유의 재앙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가 없다. 당장 피난 생활이 지속되고 있으며, 제염 작업도 채 끝나지 않았다. 과연 끝이 날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인 지경이다. 후쿠시마야말로 '그라운드 제로'인 것이다. 그곳에서 근대 문명은 멈추어 섰다.막다른 곳에서 새 길이 열린다. 탈핵 운동의 규모와 호응은 1960년대 안보 투쟁을 능가한다. 국가와 기업의 조직적 은폐에 맞선 방사능 계측 운동도 인상적이다. 스스
2012.03.16 18:20:00
탐욕의 동반자, 박정희와 김일성을 생각한다
2월 중순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했다. 10월 시진핑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첫 상견례가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도 손님맞이에 공을 들였다. 국가 원수 급 의전으로 미래 권력에 최상의 예우를 표했다. 물론 마냥 화기애애하지만은 않았다. 환율, 무역, 인권 등 주요 갈등 사안마
이병한 UCLA 한국학 센터 연구원
2012.03.02 10: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