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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EU, 부상하는 중국…마지막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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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EU, 부상하는 중국…마지막 승자는?

[동아시아를 묻다] 제국의 귀환

제국과 탈제국

새 천년, 새 천하를 내다보는 큰 논의가 있었다. '제국(Empire)'이다. 제국주의 시대가 가고, 제국의 시대가 왔다는 선언이었다. 이 제국이 미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분산되고 네트워크화된 권력망 자체를 '제국'으로 표상한 것이다. 국민국가가 자국의 울타리를 넘어 주권을 확장하는 운동이 제국주의라면, 제국은 지구적 수준에서 중심 없는 탈영토적 지배 장치를 일컫는다. 그래서 어떠한 국가도 제국주의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도저한 탈국가적 발상에는 68혁명 이래 신좌파의 세계관이 깊이 투영되어 있다.

새 담론에 일격을 가한 것은 날 현실이다. 9·11의 포연과 함께 제국론은 기각된다. 이라크 전쟁은 미 제국의 생생한 증거가 되었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으로 작동하는 '군사 기지 제국'이자, 교조화된 이념으로 무장한 '민주주의 제국'이다. 물론 미국 제국의 역할을 옹호하는 경우도 있다. 테러리즘과 무질서에 맞서 근대성의 복음을 전파하는 최후의 제국으로서 자각을 요청하는 것이다. 한쪽에선 미국의 제국됨을 비판하고, 반대편에선 제국을 감당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러나 양쪽 모두 미국을 과대평가하고 있음은 매한가지다. 미국의 큰 역할에도 불구하고 힘의 한계가 여실하며, 그 역량 또한 소진되고 있음이 분명한 탓이다. 네트워크 제국이 신기루인 만큼이나, 미국 제국 역시 허상에 가깝다.

그래서 제국의 황혼이 화두이다. 특히 동아시아 좌파들이 기민하다.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를 궁리하고, '제국을 넘어 공동체'를 역설한다. 이참에 중화 제국, 대일본 제국, 미국 제국으로 교체된 제국의 역사를 청산하자는 것이다. '탈제국'은 이들의 집합적 강령이다. 허나 그 충심만은 높이 사되, 과연 제국 이후가 적확한 시대 인식인가는 면밀히 따져볼 일이다.

이들과 대척점에 있는 동아시아 우파, 특히 일본의 우파 논단에서는 또 다른 제국론이 활발하다. 부상하는 중국을 '제국'으로 지목한다. 민주, 인권, 법치 등 근대적 문법을 결여한 '제국'의 부활을 우려하는 것이다. 제법 일리가 없지 않다. 그래서 제국의 봉쇄는 한·미·일이 결집하는 신냉전의 명분이기도 하다. 냉전기를 풍미했던 '동양적 전제주의'의 재림이라고도 하겠다.

중국=제국론은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이희재 옮김, 김영사 펴냄)에서도 예견하던 바이다. 서구의 좌파들과는 달리, 우파 논객 헌팅턴이야말로 비서구 문명의 잠재성에 한층 깊은 관심을 두었음을 기억해 두자. 특히 이념 대결 이후 문명 대결은 'G2' 시대에 더욱 큰 적실성을 갖는다.

이슬람에 대한 그의 편향적 태도에는 일선을 긋되, 탈서구화의 중추에 중국이 자리할 것이라는 전망만은 정곡을 짚은 것이다. 실로 중국은 여전히 근대와는 다른 정치철학을 구현한 채, 미국 이후의 세계를 탐문하고 있다. 즉, 새 천년 새 천하의 요체는 네트워크 제국도 미 제국도 아니다. 저 오래된 '중화 제국'이 끝내 되돌아오고 있음이다. 혹 탈제국의 깃발 역시 성급한 당위론은 아니었을까.

ⓒ프레시안

EU와 중국

유로가 출범 1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유로존의 지속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가를 고수하고 주권을 옹호하는 극좌·극우의 발흥도 만만치 않다. 재정 통합과 은행 통합도 쉽지 않은 판에, 정치적 통합은 더더욱 힘들 것이다. 새천년의 유럽 프로젝트도 기로에 선 것이다. 혹여 소비에트연방의 와해(1991년)를 뒤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좌·우를 막론하고 국가 너머 정치 공동체 형성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 유럽연합(EU)이 고도의 정치적 통합을 달성한다면, 어떠한 꼴이 될까. 작금의 중국에 가까울 것이다. 유럽의 스무 개 남짓한 국가들이 중국의 개별 성(省)과 비슷해진다. 진즉에 국가를 지양한 연합체로 창출된 것이 중화 제국인 까닭이다. '액체화된 근대'야말로 중국적 질서와 흡사하다. 아니 그 문명의 다층성, 민족의 다양성, 언어의 복합성 등을 견준다면, 여전히 중국이 EU보다 세 배는 복잡하고 유연하며, 탄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만들기(20세기)가 아니라, 국가 넘어서기(21세기)의 잣대로 보자면 중국이 유럽을 한참이나 앞선 것이다.

마오쩌둥의 발상이 흥미롭다. 그는 제1, 2차 '세계 대전'을 '유럽 내전'으로 고쳐 읽었다. 그 유럽 내전조차 중국 내전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히틀러-스탈린의 대결보다 국공대결의 규모가 한층 크다는 것이다. 히틀러를 일개 지방의 군벌에 견줄 만큼, 사유의 지평 자체가 남달랐다. 결국 히틀러의 유럽 통합은 좌절된다. 반면 마오쩌둥은 신중국의 출발을 알린다. 화폐 통일, 재정 통합은 반세기 전에 이룬 것이다. 중국과 유럽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제국의 관성과 지구력이 현저히 다른 것이다. 합스부르크, 오스만, 무굴 등 국민국가로 쪼개진 다른 제국들과 견주어 보아도 중화 제국의 재건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내면화된 제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중국 예외주의'라 함직하다.

지난 350년을 돌아본다. 유럽에서 베스트팔렌 조약(1648년)이 체결되고 국가 간 체제로 전환할 무렵, 동아시아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수습하고 대청 제국이 들어섰다. 유럽에서 세력 균형과 국제법이 모색되고 있을 때, 동아시아는 제국과 네트워크로 재편된 지역 질서가 가동되었다. 유럽에서 군주와 귀족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의회제가 발전해 갔다면, 중국에서는 다륜회맹제, 개토귀류제 등 다민족·다국가를 아우르는 정치 제도가 정비되어 갔다. 유럽이 일국의 민주를 심화해 간 반면에, 중국은 민족 간, 국가 간 통합에 매진해 간 것이다. 즉, 유럽은 국민국가를 향해 중국은 제국을 향해 300년을 내달렸다. 그 역사적 분기는 지금껏 뚜렷하다. 중국은 일국 내 민주화가 생소하며, 유럽은 국민국가 극복이 도무지 난망하다.

소련과의 차이도 중국 공산당이 소련 공산당보다 강해서가 아니다. 중국이 러시아보다 제국의 전통이 깊은 것이다. 제국의 정통성은 귀속에 있지 않다. 일가 일성도 아니고, 일파의 독점도 아니다. 제국의 원리를 체현하고 실천하는가의 여부가 관건이다. 철저한 능력 본위, 실력주의라 하겠다. 변방 유목민의 대청 제국이 장수한 반면, 한족 정권이었던 중화민국이 반세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원에서 물러난 이유이다.

공산당이 국민당을 대체한 것도 마찬가지다. 공산당이 더 전통적(=제국적)이었기 때문에 승리했다. 공산당은 도시를 장악한 국민당에 밀려 변방과 농촌을 배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중화 제국의 뿌리를 더듬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대장정의 신화 또한 그 내실은 사회주의의 이월보다는 균전제(당태종)와 변경 지배(강희제)를 결합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법하다. 실제로 국·공 교체는 명·청 교체와도 흡사했다.

일본(임진왜란, 중일전쟁)이 중원(명, 국민당)에 타격을 가한 탓에, 변방의 신흥 세력(청, 공산당)이 흥기할 수 있었다. 명과 중화민국의 잔존 세력(정성공, 장개석)이 타이완으로 피신 한 것도 판박이이다. 이처럼 20세기의 중국 혁명 또한 중화 제국의 복기와 복원에 가까웠던 것이다. 대당 제국과 대청 제국이 신중국의 근간이며, 전통 중국이 현대 중국의 초석이라 하겠다.

제국의 귀환

중화 제국의 출발은 진시황이다. 기반은 법가였다. 허나 엄격한 통치만으로 제국은 유지되지 않는다. 옛말을 빌자면 '덕'이 있어야 한다. 불과 15년 만에 최초의 제국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제국을 재건한 것은 한나라이다. 진을 반면교사 삼아 분권과 민간을 강조했다. 흡사 노자의 '무위'를 따른 것이다. 허나 경제가 활성화되는 만큼이나, 제후의 영향력이 커지는 부작용이 일었다. 변방의 원심력을 조정하는 중앙의 구심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유가이다. 중용에 가닿은 것이다. 이 법가, 도가, 유가의 사상 복합체가 '지속의 제국'의 기틀을 다졌다. 제국의 철학을 확립한 동중서는 가히 일급의 사상가로 기릴 만하다.

중화인민공화국도 빗대어 설명할 수 있을까. 전기 사회주의 30년은 법가에 가깝다. 지방과 시장을 키웠던 개혁 개방 30년은 도가와 흡사하다. 그렇다면 향후 30년은 유가의 복원일까? 마침 중국 사상계의 동향도 간단치 않다. 좌파는 '유가 사회주의'를, 우파는 '유가 헌정주의'를 주창한다. 왕도의 회귀를 요청하고, 타향을 고향으로 삼는 천하론도 분출한다. 신문화, 신청년, 신계몽으로 내달렸던 20세기의 '사상 해방'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상 해방이다.

신유가의 부흥이 사회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비판은 백번 타당하다. 그러나 사회주의만으로는 일백년을 지속한 나라가 한 곳도 없음이 지난 세기의 증언이기도 하다. 중국은 기어이 그 자신의 골격에 부합하는 정치 제도를 정비해갈 것이다. 제국에 걸 맞는 최적의 운영 체제를 재발견하고 재발굴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되물어야 할 것은 중국을 대하는 우리의 편벽된 인식과 시각이다. '서학'에서 출발한 오늘의 인문·사회과학은 대저 국가학이다. 그래서 제국=중국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동아시아를 묻고, 답하는 과정이 결국 '동학'의 재건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과 2000년을 넘도록 이웃하며 살아온 경험이야말로 '제국의 귀환'에 대처하는 최상의 배움터가 아닐까. '서학'에 대한 흠모만큼이나, '동학'으로의 회심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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