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15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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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자기 꼭두각시를 죽였나?
[동아시아를 묻다] 지엠을 위한 변명
후에 : 위대한 유산후에(Hue)에 다녀왔다. 응우옌 왕조의 옛 수도이다. 아주 오래된 일도 아니다. 1802년 개국이니, 불과 200년 전이다. 야심만만한 왕조였다. 수백 년에 걸친 남진(南進)을 마침내 완수했다. 오늘날 베트남의 꼴을 비로소 갖추게 된 것이다.건국 이념은 드높았다. 신유학 국가의 정수를 표방했다. 흐엉강(香江)을 끼고 들어선 웅장한 자금
이병한 동아시아 연구자
샌델에 푹 빠진 동아시아, 진짜 이유는?
[동아시아를 묻다] 정치와 덕치
정의와 공정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시큰둥했었다. 하버드 대학이라는 브랜드, 대형 출판사의 마케팅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유식자라면 이명박 시대의 도덕적 결핍을 드러낸 문화 현상이라고 그럴듯하게 말을 보탰을 수도 있다. 상투적이지만, 영판 틀렸다고 하기도 힘들다.그런데 일국적
민주주의 원조는 '동방'이다
[동아시아를 묻다] 동양 전제와 동방 민주
서구 민주봄이다. '아랍의 봄'이 3년차를 맞는다.2011년 중동 혁명이 서구적인 '민주화'가 아니었음은 나날이 확연해지고 있다. 1989년의 동구 혁명에 빗대었던 독법은 그릇된 것이었다. 견주자면 차라리 1979년이 어울린다.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과 동격에 둘 수는 없겠다. 그럼에도 '서구화'와는 상이한 경로와 궤적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일맥은 상통한다.
中·北·베트남, 동방 사회주의 3국은 망하지 않는다
[동아시아를 묻다] 영묘(Mausoleum)와 문묘(文廟)
동구(東歐)와 동방(東方)지난 2월 3일, 호치민 영묘를 찾았다. 각별한 날이었다. 베트남 공산당이 창당한 날이다. 1930년, 홍콩에서였다. 올해로 84년째를 맞는다. 당시 호치민은 망명객 신세를 면치 못했다. 창립 모임도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미미한 출발이었지만, 끝은 창대했다. 북베트남을 세우고, 남북을 통일했으며, 21세기 하고도 14년이 지난 지금
대청제국의 부활, 한반도의 운명은?
[동아시아를 묻다] 제국의 진화
남북과 양안갑오년, 통일론이 분출한다. 남북만은 아니다. 양안도 그러하다. 대륙과 대만(타이완) 사이 뼈를 담은 말이 오고 갔다. 시진핑은 이렇게 말했다."양안의 오래된 정치적 분열은 점진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결코 다음 세대까지 남겨줄 수도 없다." 집권 10년의 청사진을 담은 중국 공산당 3중전회에서의 발언이었다. 양안 문제 해결의
동학은 '농민 전쟁' 아닌 '유학 혁명'이다!
[동아시아를 묻다] 2014 : 갑오년 역사 논쟁
좌(Left)와 우(Right)새해 벽두부터 역사 논쟁이 뜨겁다. 교학사 교과서가 불을 지폈고, 뉴욕타임스의 사설은 기름을 얹었다. 퇴행적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미진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 새 교과서가 엉터리라 해서 기존의 교과서가 안고 있는 허물을 덮지는 못한다. 양쪽이 다투는 역사 인식의 기저, 좌·우라는 잣대부터 미
갑오년, 한반도가 또 동아시아의 화근이 되면…
[동아시아를 묻다] 120년 전 동아시아의 자중지란을 떠올리며
계사년, 한반도는 안녕하지 못했다. 동아시아도 태평과 성세를 누리지 못했다. 위아래로, 안팎으로 수상한 시절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과장 또한 사릴 것이다. 한말에 빗대어 망국을 우려하는 엄살과 엄포는 가려야 하겠다. 우국(憂國)이 지나치면, 시국(時局)을 놓친
푸틴의 '유라시아', 독재자의 망상이 아니다!
[동아시아를 묻다] 유라시아와 북방
지난 11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블라디미르 푸틴이 방한했다. 한국 방문 직전에는 베트남도 들렸다. 베트남에서는 특유의 기고문 정치를 선보였다. 최대 일간지 <인민일보>에 '유라시아 연합'을 강조하는 글을 실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유라시아
동방의 귀환, 일독 이독 다독을 권한다!
[동아시아를 묻다] 원톄쥔의 <백년의 급진>
훌륭한 책을 읽었다. 원톄쥔의 <백년의 급진>. 쏟아지는 중국 관련서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이미 '프레시안 books'에도 서평이 실렸다. 소상한 정보 제공이 미덕인 글이었다. 덕분에 내용 소개의 부담이 줄었다. 이번 연재는 광고를 겸해 논평 및 독후감으로
'만달라의 정치' 아세안, 지구 문명의 미래
[동아시아를 묻다] 아세안 : 만달라의 환생
베트남 신문의 국제 면은 남다른 구석이 있다. 세계, 아시아에 이어 아세안이 별도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지역 감각이 퍽이나 도드라진다. 그러나 베트남이 처음부터 아세안에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적대적이었다. 아세안이 출범한 것은 1967년이고, 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