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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귀환, 일독 이독 다독을 권한다!

[동아시아를 묻다] 원톄쥔의 <백년의 급진>

훌륭한 책을 읽었다. 원톄쥔의 <백년의 급진>(김진공 옮김, 돌베개 펴냄).

쏟아지는 중국 관련서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이미 '프레시안 books'에도 서평이 실렸다. 소상한 정보 제공이 미덕인 글이었다. 덕분에 내용 소개의 부담이 줄었다. 이번 연재는 광고를 겸해 논평 및 독후감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그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더 널리 읽힌다면 더없이 좋겠다. (☞관련 서평 : "마오의 본심은 '친자본'? 현대 중국 금기를 깨다!")

고별 '근대'

▲ <백년의 급진>(원톄쥔 지음, 깁진공 옮김, 돌베개 펴냄). ⓒ돌베개
서구식 근대화에 대한 원톄쥔의 진단은 단호하다 못해 매몰차다. 지속 불가능하고, 복제 불가능하다. 그 자체가 주술이고 미신이다. 왜 그런가. 서구의 자본주의적 근대는 해외에서 진행된 대규모의 식민지 확장에서 비롯되었다. 단도직입, 국가 범죄의 산물이다. 그래서 그리스-로마의 노예제 문명을 지구화시킨 것이다. 민주주의를 자본주의와 분리하지도 않는다. 거대한 폭력의 지반 위에 자리하는 정치 제도이다. 해외에서는 재부가 유입되고, 내부의 빈곤층과 범죄자는 외부로 송출하면서 서구식 민주주의가 가능했다. 즉, 근대화의 핵심을 이루는 정치와 경제 모두가 치명적인 기생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식민화'의 경로를 원천 봉쇄당한 제3세계 국가들은 근대화의 질곡에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다. 따라가려 해도, 닮아가려 해도,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이다. 근대화가 초래하는 제도적 비용과 모순을 전가할 수 있는 외부가 없기 때문이다. 즉, 후발 국가들이 서구식 근대화를 복제할 수 있는 길은 애초 가로막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선진국 또한 그 발전 모델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20세기 천하를 삼분했던 미국, 유럽, 일본이 새천년과 함께 위기와 모순의 근원이 되고 있음이다. 탈식민 이후 반세기만에 밑천이 다 드러난 것이다. 즉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근대 문명 자체가 임계에 달했다.

이를 '오바마와 김정일의 딜레마'로 포착한 지점은 탁견이 아닐 수 없다. 극단적으로 달라 보이는 두 국가가 실은 동일한 덫에 빠져 있다. 기생적인 금융 자본 위주의 경제를 영위하는 미국이 다시금 제조업 경제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막다른 곳에서 군사력에 의존하여 통화 패권을 유지하는데 사활을 걸 뿐이다.

북조선의 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조선 또한 근대화의 결여가 아니라 근대화의 소산으로 파국을 맞이한 것이다. 북조선은 산지가 많은 조건임에도 일찌감치 기계화 위주의 농업 근대화를 실현했다. 그래서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70%가 넘는 도시화를 조기에 달성했다. 이 또한 화석 자원에 기생하는 산업 구조가 아닐 수 없다. 1990년대 초 석유 공급이 중단되자 농업이 완전히 붕괴했던 까닭이다. 그래서 숱한 탈북자의 실상 또한 탈농자였다. 농업 근대화와 도시화에 따른 비용을 감당치 못하고 좌초한 것이다. 근대 문명의 파국을 앞서 경험한 '선진국'이라고도 하겠다.

즉, 미국과 북조선조차 당면 과업은 이념과 체제의 문제가 아니다. 따옴표를 친 '근대'의 종언을 서로 다른 형태로 노정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기존의 사회과학 이론과 역사관은 몽땅 '사이비(似而非)'이다. 그럼직하고, 그럴 듯하지만, 실은 아닌 것이다. 20세기를 지배했던 좌우 신학이자 주술이었을 따름이다. 근대에 안녕을 고한 원톄쥔은 '현장파'를 선언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제창이다. 실학자의 안목으로 터득한 중국 100년사의 독법은 가히 독보적인 독창으로 눈이 부시다.

백년의 급진

원테쥔은 중국의 지난 100년을 '우파' 일색으로 독해한다. 파격이다. 파천황적 파격으로 통렬하다. 정부와 정권의 차별성보다는 일관성에 주목한 것이다. 청조 말기도, 중화민국도, 중화인민공화국도, 또 마오쩌둥과 덩샤오핑도 모두 '우파'다.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라는 신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생존이 관건이었고, 그래서 양무 운동 이래 줄곧 공업화에 매진했다. 군사력의 배후에는 공업화, 특히 중공업이 있었다. 공업화란 끊임없이 자본과 자원을 추가 투입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민생 경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선군(先軍) 정치가 우선되는 시대였던 탓이다. 그리하여 지난 정부의 정책은 모두 본질적으로 친자본적인 특징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고로 지난 100년 또한 급진적으로 우경화된 세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본디부터 좌경적 오류나 계획 경제의 오류 또한 발생할 수가 없었다. 오류가 있었다면 대저 극우적 오류이다. 그래서 '반우파 투쟁' 또한 그릇된 명명이다. 그들이야말로 관료주의에 맞선 '좌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약진과 개혁 개방도 좌우로 따질 일이 아니다. 대약진은 지방의 공업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사회 운동이었다. 개혁 개방도 소련의 자본을 서방의 자본으로 대체한 것이었다. 차이라면 비로소 전국시대가 이완되면서 중공업 위주의 산업을 민생 쪽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근대 국가 건설 과정에 중국의 누천년 전통이 제도와 문화 차원에서 다대한 기여를 했다는 시각이다. 수천 년 전통의 관개 농업으로 형성된 집단 문화를 통하여 동방의 특색을 갖춘 중앙 집권적 체제 내부에서 사회적 자원을 통합할 수 있는 효과적 메커니즘을 고안할 수 있었다.

소련의 해체나 인도의 부진과는 대비되는 '비교 우위'의 실체이다. 이 과정에서 대중을 설득하는 논리가 혁명 이데올로기였을 따름이다. 이를 통해 동원된 대중은 노동으로 생겨난 잉여의 대부분을 국가에 헌납했다. 그들의 헌신 덕분에 신중국은 아주 짧은 기간에 적은 비용(=식민지 없이)으로 국가 공업화를 위한 원시적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100년의 우경화는 필연적으로 주기적 경제 위기 등 자본주의의 모순을 야기했다. 그런데 이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 또한 누천년의 유산에 기대는 것이었다. '하방'이 바로 그것이다. 도시의 과잉 노동력을 농촌으로 전가함으로써 위기를 해소해 갈 수 있었다. 즉, '하방'의 실제 또한 좌경화 운운과는 거리가 멀다. 향촌 사회의 완충제에 기대어 경제 위기를 타개하는 방책이었다.

애초 신중국 건국부터가 그러한 성격이 다분했다. 중화민국 정부의 산업화 정책이 초래한 모순을 '경자유전(耕者有田)'이라는 전통적인 구호로 해소해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즉, 신중국은 그 출발부터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세계 최대의 소농 국가, 소자산 계급 국가였다. 세계 경제와의 접촉을 끊고 농민들을 광범하게 동원하는 전통적인 복고 혁명에 가까웠던 것이다. 독창적일뿐더러 매우 합리적인 해석이다.

동방의 귀환

과거를 독해하는 눈이 번뜩이는 만큼이나 미래를 향하는 전망 또한 날카롭다. 중국은 이미 세기의 전환기에 공업화를 완성하고 산업과 금융의 과잉 상태에 진입했다. 와중에 3억의 중산층이 형성되었음이 특기할만한 일이다. 이들은 분권적 엘리트 민주주의를 요구할 공산이 매우 크다. 이미 외부의 힘과 말을 빌려 서구의 보편적 가치(자유, 민주 등)가 중국에도 필요한 것처럼 여론을 조성해가고 있다.

그러나 원톄쥔은 이 자유-민주 노선에 결연하게 반대 한다. 중산층의 정치적인 요구가 반세기 이상 신중국을 구제해 주었던 소자산 계급, 즉 소농이 주축이 되는 대중 민주주의와 대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자체가 이미 체제의 위기를 집합적으로 경험하며 보편적 가치의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난 마당이다. 이제서 위기가 빈발하는 정치 체제를 중국의 개혁 모델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여전히 소농 국가, 소자산 계급 국가라는 단순한 자각이 신통하고 방통하다. 그만큼 우리는 좌우의 허울에서 오래 헤매었다. 그렇다면 향후 중국 정치의 행보 또한 세계 최대의 소자산 계급(7억 농민)과 세계 최대의 중산 계급(3억 중산층)의 길항이라는 전대미문의 과업으로 관전해 볼 수도 있겠다.

원톄쥔이 주목하는 장소는 다시 농촌이다. 향촌 건설 운동에 몸소 매진하고 있다. 동서구의 계급 투쟁을 독려하지도 않을뿐더러, 북구의 차가운 복지 국가를 맹종하지도 않는다. 오래된 소농 사회의 유산을 재활용하고 농민 스스로의 교섭 능력을 배양하여 민간 사회의 활력을 다시 지피는 것이 관건이다. 즉, 과대한 국가 개입에도 반대하고, 토지 사유화 및 시장화도 거부한다. '조화사회' 구현이 요체이다.

얼핏 '작은 정부와 큰 사회'로 작동했던 중화제국의 현대적 전환인 듯도 하다. 모름지기 '큰 사회'의 거점은 향촌 자치에 있었다. 자그만치 7억 농민은 중국의 절반이자 인류의 10분의 1이다. 이들의 촌락 공동체야말로 중국 안정의 기틀이자 세계 체제의 보루이다.

따라서 그가 도모하는 향촌 건설 운동은 새마을운동과는 전혀 다르다. 옛 마을을 부수고 농촌을 와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옛 마을을 회복하고 갱신하여 자생력을 키우는 '신문화 운동'이다. 즉, 중국의 미래는 동구와 서구, 또는 북구에 있지 않다. 중국의 과거에, 동방의 유산에 자리한다. 자기 문명의 복원, 자력갱생이 희망이다.

물론 그의 기투가 현실화될지 단언하기는 힘들다. 체제 이행기에 복병은 도처이며, 파국도 드물지 않다. 중국 정부의 정책이 이미 생태 문명으로 전환했다는 진단도 성급해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백년의 급진>을 읽으며 중원에서 '동방지사(東方之士)'가 귀환하고 있음을 여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동서구식 이론 신앙에 작별을 고하며, 사상 대국의 저력을 회복해 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중국은 파란만장한 20세기를 통과하면서도 전면적 식민화를 겪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상적 토양의 산성화가 그나마 덜했던 것이다. 일본과 미국의 지적 종속화를 거치며 동방지사의 맥이 희미해진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하겠다. 부럽고도 또 부러운 지점이다.

그리하여 역자 김진공의 노고에 지극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말끔한 번역으로 새천년 새 동방(학)의 여명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후속작으로 추이즈위안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도 예고되어 있음이다. 때를 꿰뚫는(時中) 역작들을 연이어 한글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미더운 행보가 아닐 수 없다. 기대가 한껏이다. 역자에게는 박수를, 독자에게는 일독, 이독, 다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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