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블라디미르 푸틴이 방한했다. 한국 방문 직전에는 베트남도 들렸다. 베트남에서는 특유의 기고문 정치를 선보였다. 최대 일간지 <인민일보>에 '유라시아 연합'을 강조하는 글을 실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유라시아 구상을 풀어놓고 간 것으로 안다.
푸틴은 한창 선거 중이었던 2012년 2월에도 <이즈베스티야>에 '러시아와 변화하는 세계'를 기고하여 유라시아 연합을 천명했던 바 있다. '새로운 아시아'의 창출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그의 장기 집권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난무하고 가타부타가 분분할 수 있겠다.
다만 그 덕에 러시아의 대외 정책만큼은 일관되고 지속적인 측면이 크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의 위치와 역할을 유라시아로 정초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푸틴이 권좌에 머무는 동안 이 노선이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 한번쯤 러시아를 풍미하고 있는 유라시아주의를 정리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러시아'의 탄생은 몽골의 충격에서 비롯되었다. 몽골을 물리치고 성장한 모스크바 루시야말로 오늘날 러시아의 기원이자 원형이다. 그 이전 키예프 루시는 공국들 간 분열로 점철된 중세의 유럽형 국가에 가까웠다. 반면 몽골의 250년 지배 끝에 등장한 모스크바 루시는 송대에 확립된 동방형 국가 모델을 차용했다. 몽골군의 역참제를 모방하여 북방 국가로 거듭나는 동시에, 중앙 집권 관료제와 세금 제도 합리화 등 중원형 국가 모델을 습득함으로써 러시아의 '초기 근대'가 싹을 틔운 것이다. 즉, 모스크바 루시는 외적으로는 비잔틴의 정신적, 문화적 유산을 승계하는 '제3로마'를 지향했으되, 내적으로는 정치, 군사, 행정 등에서 '몽골화' 혹은 '중국화'가 깊숙이 진척되었다. 유럽 문명과는 일선을 긋는 대륙형 제국 기질을 고스란히 전수받은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몽골이 서진했던 바로 그 길을 되밟아 동진함으로써 시베리아에 달하는 광활한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아니 세계 두 번째의 사회주의 국가가 몽골인민공화국(1924년)이었다는 점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나아가 1948년 북조선 건국까지 깊이 관여했으니, 소련이야말로 그 판도와 영향력 면에서 몽골 세계 제국의 후예에 가까웠던 셈이다. 실제로 20세기 '사회주의 진영'의 세력권은 묘하게도 13세기 몽골 세계 제국의 지도와도 얼추 겹치는 형세였다.
그러나 러시아 귀족들의 유럽 지향성 또한 만만치 않았다. 18세기 초 표토르 대제는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천도함으로써 러시아의 서구화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로시'를 라틴식의 '러시아'로 개명한 것도 그 무렵이다. 그러나 그 서구 지향성은 현실적 차원에서의 동방 진출과는 어긋나는 것이었다.
몸은 점점 더 동쪽으로 불어나는데, 머리는 더더욱 서쪽을 향하는 역설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계급적 분화와도 직결되었다. 유럽화된 상층과 전통적인 하층의 분열이 여실했던 것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그 정점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민중 봉기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유럽의 최첨단 사상으로 무장한 좌파 엘리트, 즉 인텔리겐치아가 주도한 전위 혁명이었다. 즉, 표토르 대제의 가장 충실한 후예들이 러시아 제국을 전복시키고 역사상 가장 유럽 지향적인 소련을 세운 것이다. 실로 러시아의 '동구화'로 말미암은 동서 냉전은 동서로마 분열의 세속적 판본에 방불했다.
유라시아주의의 명맥은 망명 지식인들이 계승했다. 그들은 러시아의 유럽화에 반발하여 조국을 등진 사람이었다. 혹은 공산주의자들의 탄압으로 쫓겨난 전통주의자였다. 이 고전적 유라시아주의자들은 러시아 혁명(1917년)과 제1차 세계 대전(1914년)을 한 묶음으로 '유럽 문명의 위기'로 간파했다. 소련 또한 슬라브 제국주의에 다름 아니라고 갈파했다. 러시아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동방적 성격을 옹호함으로써 볼셰비즘의 득세에 저항했던 것이다. 소련이 붕괴하고 범슬라브주의가 쇠퇴하면서 100년간 소원했던 유라시아주의가 재차 귀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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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의 정치 이론
새천년 러시아 인문학계는 20세기 초의 유라시아주의자들을 재발굴하느라 분주하다. 가령 게으르기 구르지예프(Georgii lvanovich Gurdzhiev, 1877(?)~1949년)는 유럽과 아시아의 동서 철학을 융합시킨 독창적 사상가로 재평가된다. 러시아의 미래를 아시아에서 구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유언도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계급적 보편주의(좌)와 민족/종교적 분리주의(우)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2005년 이후로는 유라시아 영화도 쏟아지고 있다. <유목민>(2005년), <몽골>(2007년), <칭기스칸의 비밀>(2009년)등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만하면 유라시아주의를 하나의 지리-문명적 현상으로 접수해도 무방하겠다.
신유라시아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인물로 알렉산더 두긴(Alexander Dugin)이 있다. 그는 소련 해체 이듬해인 1992년을 '유라시아의 해'로 선포하며 일찌감치 초기 옐친으로 대표되는 서구파의 대항마로 부상했다. 소련의 와해야말로 서구 이념의 좌초라 할 것인데 다시 서구화로 내달리는 것은 커다란 착오라는 것이다.
2000년에는 <유라시아 비전>을 출간하고, 2003년에는 국제 유라시아 운동도 출범시켰다. 푸틴의 암묵적인 지원 아래 미디어 진출도 활발한 편이다. 언젠가부터 푸틴의 연설과 발언이 두긴과 흡사해졌다는 평도 있다. 그래서 푸틴이 구현하고 있는 신차르주의와 네오파시즘의 정신적 지주로 두긴을 지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영문 저서 <제4의 정치 이론(The Forth Political Theory)>을 통독한 바로는 그리 쉽게 폄하할 만큼 허술한 실력은 아니지 싶다.
제4의 정치 이론이란 무엇인가. 20세기를 지배했던 유럽발 3대 이론, 즉 자유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와 구별되는 정치 이론이다. 전체주의는 조락했고, 공산주의는 자멸했으며, (신)자유주의는 비교 우위로 득의양양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태평한 세상을 일구지 못했으며,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군색할 만치 이룬 것이 없다.
특히 러시아는 공산주의를 복구할 수도, 전체주의를 수용할 수도 없으며, 자유주의 또한 기질에 맞지 않는다. 그리하여 제4의 정치이론은 무엇보다 3대 이론이 철폐했던 가족, 마을, 공동체, 종교 등 전통적 가치의 회복과 복권을 강조한다. 가치는 보수적이되 정책은 진보적인 '보수적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다. (얼핏 중국의 신좌파와 신유학의 합류와도 흡사하다.)
두긴은 이를 '정치 인류학'이라고도 명명한다. 20세기의 3대 이론 모두 뿌리 깊이 문화적 인종주의를 내장하고 있었음을 고발하며, 반전통주의라는 점에서 삼위일체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의 실패 원인 또한 지나치게 근대적이며 무신론적이고 물질적이며 세계주의적이었다는 점에서 찾는 것도 이색적이다. 그래서 반전통주의는 거부하되 반자본주의, 반자유주의, 반개인주의는 제4의 정치 이론으로 계승한다. 즉, 새 정치는 전통에서 영감을 구하는 옛 정치에 기반을 두되, 비근대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좌파와 우파, 종교 세력과 생태주의 등의 대연합을 꾀한다는 것이다.
정치 인류학이 문명론으로 귀결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두긴이 명시적으로 겨냥하는 대상은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다. 서구, 중국, 일본, 이슬람, 인도, 슬라브-동방정교, 남미, 아프리카로 분류한 헌팅턴의 논법을 문명론의 외피를 두룬 지정학이라며 기각한 후, 자신의 기준으로 재분류를 시도하는 것이다. 일단 '서구'부터 둘로 쪼갠다. 미국이 앞서고 영국이 따르는 대서양 축이 있고,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고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호응하는 고전적 유럽이 있다. 이슬람 세계 또한 둘로 나뉜다. 하나는 '아랍 세계', 즉 대륙 이슬람이며, 다른 하나는 동남아에 분포한 해양 이슬람이다. 그리고 슬라브-동방정교도 수정하여 유라시아 문명으로 고쳐 부른다. 여러 '-스탄' 국가들이 상징하듯 역사적, 문화적으로 복합 문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문명은 각자의 시공간에서 각자의 리듬으로 각자의 '하늘'을 섬긴다. 인간성은 복수이며, 그래서 정치의 형식 또한 여럿일 수밖에 없다. 탈냉전기 인류의 생태계를 교란하는 탈정치화에 맞선 재정치화의 기저에 정치의 토착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종언을 고했던 역사 또한 복수 문명의 회복을 통해서 재출발할 수 있다. 나아가 두긴은 미국이 세계를 개별 국가로 분리하여 통치하는 국제연합(United Nations)을 대신하여 문명연합(United Civilizations)을 건설하자고 주장한다. 지정학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또 가치론적으로 다문명, 다중심, 다극화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곳곳에서 '유라시아 연합'을 설파하고 다니는 푸틴의 복심이라고 하겠다.
북방
분명 유라시아 열풍에는 한때 세계를 양분했던 '강한 러시아'에 대한 염원과 향수가 은근슬쩍 담겨 있다. 소련 해체의 상실감과 미국에 대한 열등감이 복잡하게 얽혀있기도 하다. 이슬람계를 포섭하여 제국적 틀을 유지하려는 국가 이데올로기적 성격도 농후하다.
그러나 서구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서 새 길을 내고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오렌지혁명 으로 유럽연합(EU)에 솔깃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상하이협력기구(SCO)나 유라시아로 유턴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나 유라시아 구상은 한반도의 북과 남이 접속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미국, 중국, 일본과는 달리 러시아는 한반도 통합에도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편이다. 상당 기간 러시아가 미국이나 중국에 육박할 국력을 확보키는 어렵다는 점 또한 노파심을 덜게 한다. 시베리아와 연해주, 동몽골, 홋카이도, 동북 3성과 북조선 및 한국이 협동하는 '6국 협화'의 훈련장으로 적극 삼아볼 만한 것이다.
기실 현해탄 건너 일본과 태평양 건너 미국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지난 100년이 퍽이나 이례적인 시기였다. 반도의 역사는 늘 중원과 북방과 한층 밀접하게 연동되었다. 분단으로 망실된 누천년 북방 감각의 회복이 절실한 까닭이다. 응당 그 첩경은 북방과의 물류와 문류가 끊이지 않았던 북조선과의 재회에 있지 않을 수 없다.
'북방의 길'의 오장환, '북방에서'의 백석, '북방도'의 이찬, '북쪽'의 이용악 등 일제풍이 농후한 '만주'를 대신해 구태여 '북방'을 노래했던 문인들이 대거 월북했었다. 과연 소련-몽골-북조선-신중국의 계보가 상징하듯 북조선은 북방 국가적 성격이 농후했던 것이다.
목하 북방에서는 유라시아가, 중원에서는 천하가, 남방에서는 만달라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의 새물결이다. 지구촌은 점진적으로, 또 점층적으로 19세기 이전의 복합계를 회복하는 와중이다. 따라서 미국이 선창하고 일본이 추종하는 태평양에 휩쓸리고 말아서는 곤란하겠다. 또 다시 반도의 절반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중원을 추수하는 복고주의로 회귀해서도 아니 될 것이다. 가치 동맹과 인문 유대의 충돌 사이에서 유라시아로 우회하는 길이 열려 있다. 북방의 싱싱한 공기를 호흡하며 새 기운을 가다듬을 필요가 갈수록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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