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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北·베트남, 동방 사회주의 3국은 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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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北·베트남, 동방 사회주의 3국은 망하지 않는다

[동아시아를 묻다] 영묘(Mausoleum)와 문묘(文廟)

동구(東歐)와 동방(東方)

지난 2월 3일, 호치민 영묘를 찾았다. 각별한 날이었다. 베트남 공산당이 창당한 날이다. 1930년, 홍콩에서였다. 올해로 84년째를 맞는다. 당시 호치민은 망명객 신세를 면치 못했다. 창립 모임도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미미한 출발이었지만, 끝은 창대했다. 북베트남을 세우고, 남북을 통일했으며, 21세기 하고도 14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호치민 당신조차 확신치 못했을 것이다. 소련의 존속 기간은 불과 70여 년에 그쳤다. 코민테른의 일개 요원이 세운 당과 국가가 사회주의 모국보다 오래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러할 것이다.

20세기, 15개의 '사회주의 국가'가 있었다. '사회주의 정권'과는 엄연히 다르다. 유럽에서도, 남미에서도 좌파 정권이 들어선다. 그리고 우파 정권으로 교체되기도 한다. 유럽형 좌우 정치를 빼닮았다는 점에서 남미의 정치는 유럽의 영향이 짙다. 그에 반해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저 유라시아의 중앙에 자리했다.

그래서 몽골 세계 제국의 범위와 흡사 겹쳤다. 베를린부터 부다페스트를 거쳐 베이징에 이르기까지 일당 독재와 계획 경제를 운영했다는 점에서 크게 합치했다. 그럼에도 속 깊이 달랐다. 역사와 문화, 지리의 기저가 역력했다. 이념은 얕고, 문명은 두터웠다. 크게 동구와 동방으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동구의 10개국은 모두 붕괴했다. 1989년에서 1991년 사이, 삽시간이었다. 베를린부터 울란바토르까지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반해 동방의 4개국은 살아남았다. 중국과 베트남, 북조선 그리고 라오스이다. 여기에 태평양 건너 쿠바가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 사회주의 국가였던 몽골인민공화국의 몰락과 북조선인민공화국의 지속은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동구와 동방 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이다. 몽골은 소련 최초의 위성 국가였다. 그래서 울란바토르는 평양이나 베이징, 하노이보다는 바르샤바나 프라하에 가까웠다. 중원의 자장보다는 북방의 영향력이 드셌던 것이다.

북조선도 출발은 그러했다. 소련의 입김이 짙은 위성 국가로 태어났다. 분기점은 역시 한국 전쟁이다. 중국의 참전은 동구에서 동방으로 (재)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과 북조선 및 베트남의 '형제애'는 소련과 동유럽의 수직적 위계와는 적이나 달랐다. 소련군은 동독, 폴란드, 헝가리, 체코, 몽골에 주둔하며 주종 관계를 명시적으로 드러냈다. 허나 동방 국가들은 차마 그러할 수 없었다. 모름지기 덕과 예를 갖추어야 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소련군이 진압하는 풍경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대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대·소국 간 균형점을 찾아 운영되었던 중화 세계의 원리가 그 나름의 진화를 이룬 것이라고 보아야 온당할 것이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와 '우리식 사회주의'의 변주 속에서도 중화와 소중화의 오래된 역동성이 자리한다. '탈중국을 위한 중국화'로 작동했던 중화 세계의 작동 방식이 동방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는 여전했던 것이다.

따라서 1989년은 무엇이 일어났던가 만큼이나 무엇이 일어나지 않았던가라는 점에서도 기억될 필요가 있다. 왜 동방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무너지지 않았는가? 왜 지금껏 존속하고 있으며, 심지어 중국을 필두로 맹렬하게 굴기하고 있는가? 잘라 말해, 전체주의(totalitarianism)도 전제주의(despotism)도 아니었던 것이다.

물리적 억압이나 사상의 탄압만으로는 정권이 장기 지속할 수 없다. 멀리 동구까지 갈 것도 없다. 한국과 대만(타이완), 필리핀 등 동아시아의 개발 독재 정권도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중앙유라시아에서는 색깔 혁명이, 이슬람권에서는 '아랍의 봄'이 일어나기도 했다. 즉 제3세계의 수많은 사례가 보여주듯 '독재'만으로는 반세기를 넘기기도 힘들다. 헌데 동방의 사회주의 국가들만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난제이다. 기존의 정치 이론으로는 감당키 힘든 숙제이다. 그래서 지적인 욕구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이 난제를 제대로 대면한 경우가 드물다. 문제를 문제로 자각치 못했던 것이다. 나태와 둔감이 만연했던 것이다. '역사의 종언'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취한 탓이다. 설사 냉소했더라도 '독재에서 민주로'라는 거대 서사만큼은 내면화해온 것이다. 즉, 냉전은 종식되었으되, '냉전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유 민주주의'가 형해화되어 간 1990년대 이후의 일관된 추세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이웃에 자리한 동방 사회주의 국가들을 진지한 사유의 대상으로 삼지도 못했다. 이제라도 눈을 부릅뜨고 직시해야 하겠다. 애당초 동아시아 (대)분단 체제는 동/서구가 길항했던 좌/우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 베트남의 가가호호에는 호치민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안경을 쓰고 독서를 하거나 붓을 들어 글을 쓰는 모습이 사랑을 받는다. ⓒthanhdoan.hochiminhcity.gov.vn

좌우(Left/Right)와 문무(文/武)

중국이 지속적으로 경제 성장을 하면 어느 단계에서는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한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중산층이 늘어나면 민주주의를 요구하기 마련이라는 사회과학의 탈을 쓴 교조였다. 최근에는 조금 달라졌다. 대신 뒤집혔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어느 정도 이하로 떨어지면 체제의 위기가 도래할 것이란다. 이 또한 체제 이행을 연구한다는 이들의 체계적인 낭설이다.

경제가 바닥을 쳤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지나면서도 정권은 붕괴되지 않았다. 심지어 북조선은 '고난의 행군'마저도 악착같이 버텨냈다. 중국공산당, 조선노동당, 그리고 베트남공산당이 누리고 있는 인민의 충성도는 비교를 불허한다. 반체제 세력들은 한줌에 그친다. 애초 '사회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차라리 '역사 계약'에 가깝다. 천명(天命)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구의 '민주화'가 정권 붕괴를 촉발한 것에 반하여, 동방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상이한 궤적을 그릴 수 있었다. 중국은 마을 선거와 당내 민주 도입으로 공산당의 지배력을 더욱 굳혔다. 베트남 또한 반(半)경쟁적인 의원 선거와 국정 감사 공개 등으로 지배력을 한층 심화시켰다. 베트남은 당(서기), 국가(주석), 의회(총리)의 삼자가 권한을 나누어갖는 트로이카 시스템도 구축했다. 총서기는 (당에서) 직접 투표로 선출하기까지 한다.

질문을 고치자면 이러하다. 왜 동방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동구에 견주어 유능했던가? 적응과 혁신에 더 적합한 능력을 갖춘 기저는 무엇이었나? 역시 100년에 연연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1000년의 유산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신유학 국가의 경험 여부가 관건이다. 빈곤의 완화, 토지 소유의 평등화 등 사회 복지를 국가적 차원에서 도모한 것은 비단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유산이 아니다. 신유학 국가의 이상이자 실천이기도 했다. 그럼으로써 동방에서 정치는 계급투쟁이기보다는 행정에 근접했다. 혹은 긍·부정을 아울러 정치가 경영화되었다. '경세'(經世)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도 했다. 조숙한 지식 관료제 국가였다.

베트남의 도이모이(1986년)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소련이 해체된 1991년, 베트남공산당은 시험을 통해 공무원을 선발하고 직무와 봉급을 정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사실상 왕년의 과거 제도를 부활시킨 것이다. 이로써 이데올로기에 물든 당 간부들을 대체하기를 꾀했다.

고등 교육과 실무로 단련된 새 관료들은 사대부에 근접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주축이 된 실력주의 사회를 통하여 '평등주의'를 고수하며 특권을 누리는 당 간부들을 밀어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학습=정치에 기반을 둔 신유학적 전통이 복원된 것이라 하겠다. 동구에서 동방으로의 회심이다. 탈동구화의 경로가 서구화만 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베트남에서의 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리 또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도입된 것이 아니다. 국가의 조직과 경영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과 방편에 그친다. 즉 공공행정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지 좌우의 이념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비유컨대 마르크스에서 맹자로의 전회, 투쟁에서 경세로의 전환이라고 하겠다.

기실 <자본>을 100번 고쳐 읽어도 나라 경영의 노하우를 익힐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동방 사회주의는 시장 경제와도 자연스레, 태연스레 어울릴 수 있었다. 도리어 익숙한 것이기 조차 하다. 정치의 위계와 시장의 자유가 결합되었던 동방 문명의 유산이 재가동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동구와 동방의 운명이 날카롭게 갈라진 지점이다.

그 유산은 이곳 하노이에도 여실하다. 도이모이 이후에 태어난 젊은 친구로부터 재미난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급훈이 "배우고, 더 배우고, 영원히 배우자(Hoc, Hoc Nua, Hoc Mai)"였단다. 무릎을 쳤다. 명명백백 지식 기반 사회, 신유학 국가의 흔적이다. 어휘에서도 역력하다.

알파벳에 가려진 한문을 들추면 베트남의 속살이 드러난다. 대학생은 지금도 '생원(Sinh Vien, 生員)'이라 부른다. 박사는 여전히 '진사(Tien Si, 進士)'이다. 1000년 전 세워진 최초의 대학인 문묘는 여전히 하노이의 심장에 자리한다. 공자와 맹자를 섬기고, 베트남 '최초의 교사', '최초의 유학자'로 일컬어지는 주문안(Chu Van An, 朱文安)을 모셔둔 곳이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도, 대학을 졸업할 때도 21세기의 '생원'들은 문묘를 찾아 절을 하고 예를 표한다. 변한 것이 있다면 스마트폰으로 셀카도 찍는다는 점 정도이다.

호치민의 영묘와 주문안의 문묘는 지척에 있다. 걸어서 불과 15분 거리다. 베트남의 가가호호에는 호치민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안경을 쓰고 독서를 하거나 붓을 들어 글을 쓰는 모습이 사랑을 받는다. 그는 평생을 프랑스와 미국에 맞서 싸운 '무인'이었다. 그럼에도 근저에서 뼛속 깊이 '문인'을 계승했다. 호치민 아저씨는 무엇보다 훈장이고 선생이며 스승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공맹과 주반안과 호치민이 2000년을 가로질러 하나로 꿰인다. 그들은 모두 무를 지양하고 문을 선양했던 동방 문명의 '적통'이자 '정통'들이다. 공맹부터가 춘추 전국의 '전사'(戰士)들을 '문사'(文士)로 개조시키고자 했던 원조들이 아니었던가. 호치민은 군=사(君師) 일체를 달성한 20세기의 태조였던 것이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달리는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 결국 무(武)에서 문(文)으로 이행해야 한다. 중국이, 베트남이 (바라건대 북조선도) 그 이행기에 있다. 독재에서 민주로,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가 아니다. 좌·우가 아니라, 문·무의 변증법이다. 21세기는 재차 '문의 시대'이다. 인문 국가, 지식 사회가 때를 맞춤한다.

고로 단재가 탄식했던 '문약'(文弱)은 다시 미덕이다. 태평천하를 일구는 소프트 파워이고, 스마트 파워이다. 백범이 소망한 문화 국가이기도 하다. 다만 그 분은 너무 일찍 깨달았다. 무의 시대가 저물지 않았던 것이다. 그 고단하고 고달팠던 시절에 호치민이, 마오쩌둥이, 김일성이 있었다. 공은 7이요, 과는 3이다.

2월 3일 밤 9시, 폭죽이 터졌다. 바딘 광장을 가득 메운 인민들은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들을 지켜보며 베트남 공산당 100주년이 되는 2030년을 그려 보았다. 자꾸만 나의 상상력은 과거를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1930년에서 100년을 더 거슬러 오른 1830년에 가닿았다.

응우옌 왕조의 르네상스를 견인했던 민망 황제의 치세기이다. 동방 문명의 정점을 자신하며 '대남제국'의 문화적 자부심이 절정을 구가했던 때였다. 그 1830년대에서 나는 언뜻 2030년대의 베트남을 본다. 역사는 마침표를 찍지 않았고, 동방의 천년 프로젝트도 멈추지 않았다. 다만 잠시, 주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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