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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생님 잡지 마세요!"…학부모들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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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생님 잡지 마세요!"…학부모들의 절규

[현장] '일제고사 징계' 박수영 교사의 출근길

"우리 안 내려갑니다. 저희가 왜 내려갑니까. 아이들 지킬 겁니다. 여기 가만히 앉아서 선생님과 아이들 지킬 겁니다. 못 내려갑니다."

18일 서울 송파구 거원초등학교. 학생들의 등교가 마무리될 무렵, 때아닌 몸싸움이 벌어졌다. 교장·교감, 그리고 담당 교육청 장학사들이 학부모와 교사를 막아선 것이다.

이 학교 박수영 교사는 지난 17일 일제고사 대신 체험 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 교장·교감은 통보서를 전달하며 앞으로 나오지 말 것을 종용했다. 오는 24일에 있을 방학식을 꼭 1주일 남긴 때였다. 징계에 대한 유례없는 신속한 통보는 파면 또는 해임 당한 다른 6명의 초·중학교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박 교사는 징계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에서 출근을 계속하기로 했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거원초등학교 학부모 20여 명은 18일 오전 8시부터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등굣길에 교문 앞에서 자리를 지켰다. 몇몇 학생도 나란히 섰다.

이들은 1교시 수업을 위해 교실로 향하는 박 교사와 동행했다. 현관문 앞에 서 있던 교장, 교감을 비롯한 몇몇이 몸으로 막았지만, 학부모들의 도움을 받아 박 교사는 무사히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 거원초 학부모 20여 명은 18일 오전 8시부터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등굣길에 교문 앞에서 자리를 지켰다. ⓒ프레시안

"잘못한 것 없는 우리 선생님, 왜 나오면 안 돼요?"

"얘들아 책 펴. 평상시랑 똑같이 하는거야."

교실 밖이 소란스러웠지만 학생들은 오히려 차분했다. 아이들에게 인사한 박수영 교사는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제 선생님 집에 갔는데, 이상한게 집 앞에 놓여 있더라. 선생님 그거 먹고 빨리 죽으라고?"

박 교사가 태연한 척 질문을 던지자 교실이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다. 하루 전날, 박 교사를 걱정하던 학생들이 집 앞에 찾아가 맥주를 놓아뒀던 것. 자신의 집에서 이 선물을 가져왔다는 한 학생은 "선생님 드시고 힘내시라고 그랬다"며 "선생님이 안 나오게 되면 되게 슬플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선생님이 오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우리 선생님이 왜 나오면 안 되냐"고 되물었다.

▲ 박수영 교사의 학급 학생은 "선생님이 오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우리 선생님이 왜 나오면 안 되냐"고 되물었다. ⓒ프레시안

"이렇게 심하게 막으니까 정치적 의도 있다는 걸 알겠다"

같은 시간 교실 밖. 피켓을 들고 복도에 서 있던 학부모 중 한 명이 자리를 비키라고 말하는 교장·교감에게 "조용히 여기에 있기만 할 테니 내려가서 일 보시라"며 "학부모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맞받았다. 주위에 있던 20명의 박수가 울려 퍼졌다.

"어제 우리 딸이 자기 꿈을 바꿨다고 말했다. 스튜어디스가 아니라 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꼭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1등으로 가입하겠다고. 박수영 선생님처럼 바른 성품을 가진 선생님을 못 봤다고 했다. 늘 책으로만 위인을 접했던 아이들이 살아있는 위인을 알게 됐다는 사실에 너무 든든했다."

학부모 정현숙 씨는 "선생님이 물 한 모금도 학교에 반입하지 못하게 해서 친분은 전혀 없지만 정말 존경한다"며 "아이의 미래를 위해 꿈을 만들어주는 과정을 선생님께서 이끌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지난 10월 일제고사에서 아이와 함께 체험 학습을 떠났다. 그는 "개인적으로 4월부터 일제고사 소식을 들으며 아이와 상의해왔다"며 "마침 그날 체험 학습을 선생님이 안내해줘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와 아이는 둘이서 따로 체험학 습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는 "단지 선택권을 알려줬다는 이유만으로 선생님을 해임하는 건 상식 이하의 일"이라며 "이럴 일이 아닌데 학교에서 이렇게 심하게 나오니까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는 것을 오히려 알겠더라"며 혀를 찾다.

갈 길이 멀어 울지 않기로 했다던 정현숙 씨는 "어제는 선생님이 해임 통보를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점심 시간까지 선생님을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고 말하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 피켓을 들고 복도에 서 있던 학부모 중 한 명이 자리를 비키라고 말하는 교장·교감에게 "조용히 여기에 있기만 할 테니 내려가서 일 보시라"며 "학부모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맞받았다. ⓒ프레시안
"아이들 사랑하는 선생님들 계속 잘릴까 두렵다"

"딸 아이가 며칠 전 묻더라. '엄마, 우리 선생님이 성추행 한 선생님보다 더 나쁜 사람이야?'라고. 그래서 '성추행 하는 선생님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은 파면돼야지'라고 말해줬다. 그런데 아이가 '선생님이 해임당할 것 같아. 엄마가 와서 도와줘야 돼'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왔다."

강혜경 씨의 아이는 지난 10월 일제고사를 치렀다. 그는 "선생님은 선택권을 준 것뿐이고 나와 아이는 시험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응시했다"며 "징계 수위가 이렇게 결정된 건 너무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떻게 성추행한 선생님도 3개월 정직 당하고 학교로 돌아왔는데 그런 선생님들으 멀쩡하게 놔두면서 편지 하나 보냈다고 해서 해임할 수 있냐"고 되물었다.

"학교의 중심은 학생이지 교장이 아니다. 교장이 명령하는 것만 잘 따르고 아부하는 교사에게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 앞으로 저런 선생님이 학교에 오랫동안 남아야 하고, 또 더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정덕 씨의 아이는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박수영 교사가 아이의 2학년 담임을 맡았다고 했다. 윤 씨는 "아이가 해가 바뀔 때마다 박수영 선생님이 한 번만 더 수업을 해주길 바라더라"며 "찾아뵈어도 선생님은 언제나 '학부모들이 감사하다, 고생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며 '자신들은 나라에서 봉급 받으면서 가르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사소한 일 때문에 그렇게 징계하는 건 너무 억울하고 안타깝다"며 "우리는 선생님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고, 아이들과 계속 수업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박 선생님이 물러나게 되면 이렇게 정말 아이들이 사랑하고 학부모들이 존경하는 선생님이 교단에서 계속 물러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윤정덕 씨는 "한발 더 나아가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학부모도 있는데 그걸 대변해주는 선생님의 역할을 해준 것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제고사는 학교 서열만 강화하는 결과만 낳는 것 아닌가"라며 "곧 중학교 갈 아이들에게 막무가내로 시험을 보게 해서 무엇을 개선하겠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덧붙였다.

▲ 이날 학부모들은 박 교사가 수업을 무사히 마칠 때까지 복도를 지켰다. ⓒ프레시안
늘어나는 학부모들…"매일 선생님 지키겠다"

이날 학부모들은 박 교사가 수업을 무사히 마칠 때까지 복도를 지켰다. 징계 소식 이후 매일 아침마다 동참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난다고 했다. 이들은 "서로 연락을 하지도 않는데 알고들 찾아온다"며 "방학 전까지 매일 이렇게 선생님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박수영 교사는 "제가 앞으로 수업을 못할 거라는 생각이 지금도 들지 않는다"며 "이렇게 출근하는 이유는 제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지 투쟁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거원초 교장·교감을 비롯해 경찰과 학교 관계자 10여 명 역시 복도를 수시로 드나들며 학부모들에게 나가줄 것을 요청했다. 박 교사를 강제로 끌어내려 하며 몸싸움을 벌였던 이들은 기자에게 소속을 밝히기를 끝내 거부했다. 옆에 있던 학부모들이 "교육청 장학사"라고 귀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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