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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도 전교조도 아니다. 나는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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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공무원도 전교조도 아니다. 나는 교사다"

[인터뷰] 징계 철회 1인 시위 김경숙 교사

"선생님! 열심히 하세요~."

16일 오전 서울 수유동 유현초등학교 앞. 등교하던 한 초등학생이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외치고 지나갔다. 이 학교 김경숙 교사가 "고맙다"며 화답했다.

그는 최근 일제고사 대신 체험 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을 통보받은 이 학교 6학년 담임 설은주 교사에 대한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지난 15일 이 학교 학부모들이 시작한 1인 시위의 바통을 이날 하루 넘겨 받은 것이다.

아는 얼굴을 만난 학생들은 어느새 하나둘 김 교사 주위로 모여들었다. 김 교사를 알지 못해도 설은주 교사의 소식을 알고 있다는 학생들이 피켓 옆으로 나란히 서보기도 했다. 재잘거리던 학생들은 설 교사의 징계에 대해 "너무 쉬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시험은 학생들이 거부했잖아요."

듣고 있던 김경숙 교사는 "애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많이 알고 있다"며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도 많이 났다"고 전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인사를 받고 있는 김 교사 주변에서 일제고사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5학년들도 학원 다녀요. 이거(일제고사) 대비도 하고 뭐 이것저것. 기본으로 8시까지 있어요."
"어제 12시 반까지 학원에 있다가 왔어요. 전과목 다 해요. 6학년 대비도 하고."
"시험 보기는 싫지만 선생님 잘리는 게 싫으면 봐야죠. 저 때문에 잘리는 건 원치 않는데요."

김 교사는 지난 12일 설은주 교사 징계 소식을 듣고 모인 학부모들의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같은 학교에 있는 다른 동료 교사와 함께 앞으로도 학부모들의 1인 시위에 동참할 예정이다. 지난 11일부터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진행 중인 농성장도 찾았다.

그는 설 교사와 마찬가지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이다. 그러나 그는 구명 운동에 동참하는 이유를 단순히 설 교사가 전교조 소속이라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공무원이거나 전교조이기에 앞서 교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 김경숙 교사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락했다가 해임 통보를 받은 서울 유현초등학교 설은주 교사의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프레시안
"그 논리대로면 나도 해임되어야 한다"

프레시안 : 설은주 교사에 대한 징계 이후 학교 분위기는 어떤가.

김경숙 : 선생님들이 너무 놀랐다. 놀랍고 걱정스럽다는 말씀을 많이 한다.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많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고들 한다. 이번 징계가 부당한지 정당한지 여부를 떠나 평소 설 선생님이 정말 좋은 교사였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안타깝다고들 한다.

프레시안 : 서울시교육청은 징계 사유에 가정통신문을 교장의 결제 없이 무단으로 보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경숙 : 그러면 제가 해임되어야 한다. 2005년 발령 이후 지금까지 수십 차례 넘게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작년에는 매주, 올해는 격주로 보냈다.

지난 10월 일제고사 있을 때도 우리 학년은 시험을 보지 않았지만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적은 글을 정기적으로 보내는 학급통신문에 실었다. 그게 죄라면 저도 징계를 받아야 한다.

가정통신문이라는 용어를 학교에서 쓸 때는 학교장의 결제를 받아야 하는 서류라는 건 맞다. 그렇지만 담임 교사가 학부모와 소통을 위해 작성해서 반 아이들에게만 나눠주는 유인물은 정확히 말해 '담임 편지'다. 설 선생님의 편지도 마찬가지였다.

학부모와 더 많은 소통을 하려고 고민하는 선생님들은 학기 초나 스승의날 같은 때에 수시로 보낸다. 학습준비물, 학습 과정 안내, 교육관 등 내용도 정말 다양하다.

결제를 받지 않고 보내는 담임 편지는 늘 있어왔다. 사실 징계위원회 진술서 작성할 때도 다 쓴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결정이 나왔다는 건 진술에 대해 조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체험학습을 사전 결제를 받지 않았다는 것도 징계 사유에 포함됐다.

김경숙 : 사전결제가 원칙인건 맞다. 그러나 아이들 사정이나 가정 상황에 따라서 사후 결제가 충분히 이뤄져 왔다. 체험학습은 갑작스럽게 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작년 같은 경우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체험학습을 위해 아이들을 모집해 수유영어마을에 보냈다. 체험학습 신청서를 받지도 않고 사전 결제도 받지 않았다. 그 뒤 연말에 학교에서 사후 결제를 한꺼번에 처리했다. 관례적으로 늘 있어온 일이다.

그런데 설 선생님 중징계 사유가 이렇게 나오니까 체험학습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저희 반 아이들이 최근 영어마을로 체험학습을 다녀왔는데 이후에 결제를 받으러 갔더니 '무단 결석' 처리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 설은주 선생님 징계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학부모와 담임 교사가 아이의 상황을 정확히 아는 상황에서도 사후 결제가 안 된다는 건 체험학습 취지 자체를 뒤엎자는 것이다. 학부모들도 알게 되면 무척 반발할 것 같다.

"일제고사 선택권 싹 자르려는 무리수"

프레시안 : 서울시교육청이 현장의 상황을 보지 않고 무리한 결정을 한 까닭이 무엇일까.

김경숙 : 앞으로 일제고사에서 학부모의 선택권 운운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 아닌가. 아무리 교사 개인이 일제고사에 대해 입장을 갖고 있어도 물리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서 체험학습 안내한게 아니지 않나.

의견 수렴 과정도 없이 실시되고 있는 일제고사가 학교에 몰고 온 영향이 굉장히 크다. 학부모 선택권에 대한 주장이 합리적이니까 점점 더 이에 동조하는 의견이 많아질 것을 우려한 것 같다. 반발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 무리수를 둔 것 같다.

한편으로 '전교조 죽이기'의 의도를 배제할 수 없다. 계속 핑계거리를 찾아왔는데 이번에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프레시안 : 학부모들이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설은주 교사 구명에 힘쓰고 있다. 이례적인 현상이다.

김경숙: 법과 상식적 차원으로 보면 시험 볼 사람을 보지 말라고 막은 것도 아니고 시험 감독을 거부했던 것도 아니다. 일제고사에 대한 학부모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한 것 뿐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일제고사를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그렇지만 담임 교사라던지 교육 관료가 아이에게 불이익을 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더 많은 학부모들이 적극적인 거부를 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전교조를 너무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런 아까운 인재가 떠난다며 안타까워한다. 앞으로 설은주 선생님이 교사를 하면서 만날 많은 아이들의 행복과 즐거움을 앗아가는 일이다.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 지난 15일부터 학부모들이 교사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시작한 유현초등학교 앞에는 경찰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김경숙 교사는 "평소에 경찰차가 와 있는 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설은주 교사를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 가운데에서는 이번에 징계를 받은 교사들이 전교조 소속이기 때문에 색안경을 쓰고 보는 시선도 많다. 동료 교사들의 구명 운동도 그렇게 비칠 수도 있다.

김경숙 : 이번 일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 양심을 가진 선생님들이 교단에서 퇴출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아있는 선생님들도 교사이기 이전에 공무원이라는 점을 후배들에게 강조해온 것 같다.

그렇지만 저는 공무원이거나 전교조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교사다. 애들 앞에서 민주주의, 관용, 인권, 환경 보호처럼 바르고 옳은 말을 해야 하는 교사다.

아주 작은 양심적 행동 조차도 이렇게 묵살당하고 짓밟히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교사들은 자기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할 것 같다.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프레시안: 구명 운동을 하다가 행정상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을텐데.

김경숙: 올바른 논리를 가지고 불이익을 준다면 괜찮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면 맞서 싸우는 게 당연하지 않나.

교육 철학에 있어서 다른 것,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제고사 찬성하고 반대하는 의견이 골고루 있는데, 그걸 인정하지 않는 대표적인 이들이 교육 관료다. 가장 원하는 건 이 양자의 입장이 공존하면서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내뜻이 아니면 무조건 안 된다고 하고,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제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본보기로 징계하니까 말이 안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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