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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원 교사가 던진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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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원 교사가 던진 희망

[기고] "전교조, '왕따'가 아닌 '희망'이 되려면"

연말 부부동반 모임에 나갔더니 온통 걱정 투성이였다. 사교육비와 남편들 조기퇴직, 대학을 졸업한 자녀들의 구직난 이야기 등…

자녀를 대학에 입학시킨 40대 후반과 50대 초반 부모들이라 '애들 공부는 뜻대로 안 된다, 마음을 비우니 편하다'등등이 주를 이루었으나 우연히 동석한 초등학교 1학년 엄마는 '뛰어 놀 시간이 없는 애가 불쌍하긴 한데 공부 못 할까봐 불안해서 사교육을 멈출 수가 없다'고 고백한다.

금융 위기가 와도 대학 졸업생들이 반 백수에 처해도 젊은 엄마들은 애들 성적 걱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당연 사교육비는 줄어들 전망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현실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듯 성적 경쟁에 반기를 든 교사들이 있다. "학원에 찌들어 나보다 더 바쁜 아이들에게, 시험 점수 잘못 나올까 늘 작아지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우리 서로 짓밟고 경쟁하지 말자고 우리에게도 당당히 자기 의견 말할 권리가 있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는 최혜원 교사가 그중 하나이다.

최 교사는 2008년 12월 10일,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학부모와 학생이 현장 체험을 갈 수 있도록 교육 선택권을 존중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파면 해임된 교사 7인 중 하나이다. 그가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쓴 글이 조회 수가 수만 명을 넘어 미네르바와 버금가는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마치 지난 5월 4일 "미친 쇠고기, 미친 교육 싫다"며 거리로 뛰쳐나온 여학생들처럼 최혜원 교사가 다시 일구어낸 불씨, '학생을 교육의 중심에 놓는다'는 너무나 당연한 생각에 모든 이들이 공감하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교사로서의 양심, 의무를 힘차게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최 교사는'어머니들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절규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서로 짓밟지 말자고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처음 아이들을 만나던 날이 생각납니다.
혹시나 첫날 만났는데 교실이 어지러울까
전날 아이들 만날 교실에서 정성껏 청소를 하고
꿈에 부풀어, 가슴 설레이며, 아이들 책상 위에 꽃을 올려두었지요.
음악을 틀고, 추운 몸을 덥혀주려고 정성껏 물을 끓여두었습니다. (…)

어제 오후, 저는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해임' 의 통보를 받았습니다.
교직에 처음 발 디딘 지 이제 3년.
해마다 만나는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만약 신이 계시다면, 내게 이 직업을 주셨음에
하루하루 감사하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서 이제 서울시 교육청이,
제 아이들을 빼앗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해임의 이유는,
성실의무 위반, 명령 불복종이랍니다….
제가 너무 이 시대를 우습게 보았나 봅니다.
적어도 상식은 살아있는 곳이라고, 그렇게 믿고싶었는데…
옳지 못한 것에는 굴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이를 앙 다물고 버텼는데….
시대에 배신당한 이 마음이 너무나 사무치게 저려옵니다.
'그러게 조용히 살지…'
왜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요?
이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고 싶었어요. (…)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이들 서른 둘 얼굴이 하나하나 눈 앞을 스쳐 지나가
눈물이 쏟아져 화면이 뿌옇습니다….
이렇게 아끼는 내 자식들을 두고
내가 이곳을 어떻게 떠나야 할까…
졸업식 앞두고 이 아이들 앞에서
하얀 장갑을 끼고 졸업장을 주는 것은
저였으면 했는데…
문집 만들자고, 마무리 잔치 하자고,
하루종일 뛰어 놀자고,
그렇게 아이들과 약속했는데…
죄송합니다.

이렇게 떠나야만 하는 마음,
꼭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더러운 시대 앞에
굴하지 않은 가슴 뜨거운 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렇게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 교사는 '처음 일제고사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고민할 때부터, 아고라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통해 많은 격려를 받아왔는데 당당히 싸워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음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고 했고 이에 대한 학생들의 답글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교육감협의회에서는 오는 12월 23일 전국 중학교 1, 2학년 학생을 상대로 시험을 치룰 계획을 발표하고 일부에서는 이를 거부하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운동을 예고하고 있다. 일촉즉발이다.

일제고사는 '전체 학생이 시험친다'는 뜻으로 과거에는 국가가 학생의 학력을 알기 위해 한정된 학년을 대상으로 표집 실시했으나 새 정부 들어 전체 학생에게 확대됐다. 16개시·도 교육감협의회에서도 전국 시험을 수차례 주관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자료로 학력이 뒤쳐지는 지역과 학교를 지원한다고 큰 소리 치지만 결국 지원은 쥐꼬리만큼 하고 3류 학교, 비선호 학교라는 낙인은 크게 찍어 대개는 학교 서열화로 귀착할 우려가 크다.

정부는 "학부모들은 내 아이 성적이 전국 어디쯤 되는지 궁금해 한다"고 하나 성적이야 대학 갈 준비 시기인 고등학교 때쯤이면 다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초등학생까지 시험 경쟁에 뛰어들게 되어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크다. 중학생의 경우 열흘 공부하고 하루 시험 치른다고 하니 가히 시험 천국인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부시 정부의 일제고사 정책을 수정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은 일제고사를 주장하는 정부 논리가 이를 반대하는 교육 운동 단체 논리에 앞섰다.

이에 지난 10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본부는 일제교사 거부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을 의식해 소극 대응했다. 이런 현실에서 최혜원 교사가 일제고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가정통신문을 낸 것은 새내기 3년차 교사가 자신의 유불리보다 학생을 중심에 놓고 판단해 깊은 공명을 주었다. 최 교사 글은 전교조 교사들 사이에서 그동안 '좋은 것이 좋다' 식으로 참교육 실천에 소홀했던 반성이 이어지면서 조직 내 희망과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행이다.

7명의 교사가 실정법을 넘었는지는 앞으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며 일제고사에 대해서도 보는 이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는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이번 징계가 지나쳤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제자를 성추행한 교사도, 돈을 받아 교사의 양심을 판 교사도, 성적을 조작한 교사도 솜방망이 징계에 그치는 그간의 사정을 볼 때 이번 건이 그보다 더 심각한가 아닌가는 길을 막고 물어봐도 명백한 교권 침해이자 학부모의 교육 선택권 침해인 것이다, 이에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이번 서울시교육청 처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성명서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 동안 전교조가 보여준 실망을 잊어서가 아니라 지금으로서는 이번 조치의 부당성에 같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최근 몇 년간 전교조가 보여준 실망까지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로서는 전교조를 엄호하는 것이 상식과 정의를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교조가 이번 최 교사가 상기시킨 것들, '학생을 교육의 중심에 놓는다'는 전제 아래 교사로서의 양심과 의무를 현장에서 다시 보여준다면 전교조가 온건 투쟁을 하건 강경 투쟁을 하건 늘 국민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시적인 전교조 엄호가 아닌 항시적인 전교조 지지를 획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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