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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를 달라지게 한 선생님에게 해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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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를 달라지게 한 선생님에게 해임이라니…"

[인터뷰] '교사 징계 철회' 운동 학부모 백금희 씨

"내년에 6학년 되요. 엄마가 저도 (일제고사) 보지 말래요."
"저도 시험 같은 거 안 보고 싶어요. 원래 시험같은 거 싫어해요. 제 의사가 더 중요하잖아요."
"선생님 그만두게 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시험 보지 말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부모님들) 허락도 다 받은건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15일 오전 8시 30분, 서울 수유동 유현초등학교 앞. 등교하던 이 학교 5학년생 이민지(가명)·정다슬(가명) 학생은 일제고사(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한 질문에 거침없이 의견을 쏟아냈다.

이들이 지나온 교문 앞에는 또 다른 어른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바로 이 학교 학부모인 김인수(가명) 씨. 그의 피켓에는 지난 10월 치러진 일제고사에서 학급 학생에게 체험학습을 허락한 설은주 교사에게 내려진 '해임' 결정이 부당하다고 적혀 있었다.

시끌벅적 등교하던 초등학생들은 간간히 1인 시위를 벌이는 두 어른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고, 소리내어 글씨를 따라 읽기도 했다. 피켓 앞에 서 있던 한 4학년 학생이 큰 소리로 말했다.

"설은주 선생님 어떻게 생각해요?"
"착하고 친절해요!"
"선생님 학교 못 나오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짜증나고 슬퍼요!"

이곳에서 만난 또 다른 학부모 백금희(38) 씨는 "앞으로 일정이 가능한 대로 학부모들이 매일 아침 등굣길에 1인 시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지난 12일 10여 명의 학부모가 모여 이렇게 결정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유현초등학교 학부모뿐만 아니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중징계 결정을 받는 서울 시내 7명의 초·중학교 교사에 대한 구명 운동이 학부모를 중심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날 같은 시각, 서울 종로구 청운초등학교 앞에서도 학생·학부모·동료 교사들이 함께 김현주 교사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고 외쳤다. 또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는 교사에게도 학부모들의 격려와 위로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학부모들이 왜 이렇게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일까. 백금희 씨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다.

"일제고사 불참, 나와 애 아빠, 아이가 결정했다"

▲ 서울 유현초등학교 학부모들은 15일부터 매일 오전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기로 했다. ⓒ프레시안
"아직 이 학교 학부모 중에서도 이번 중징계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애들도 잘 모르고 있다. 일단 선생님에 대한 징계가 너무 과하다는 학부모의 입장을 알리려고 한다. 또 학부모들에게 사건을 알리고 탄원서를 위한 서명을 돌리기로 했다. 사실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전에도 서울시교육청에 탄원서를 냈는데 교육청이 받아들이지 않더라."


백금희 씨는 학교 앞에서 학부모들이 1인 시위를 하게 된 계기를 놓고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지난 10월 일제고사에서 시험을 보지 않은 아이의 학부모 중 한 명이다. 당시 설은주 교사의 학급 29명의 학생 중 11명이 시험을 보지 않고 체험학습에 참가했다. 백 씨는 그런 결정의 계기가 서울시교육청에서 말하듯 '교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미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하면서 꼭 초등학생들까지 그럴 필요가 있는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담임 선생님이 일제고사와 체험학습에 관한 편지를 보내오셨다. 마치 학기 초에도 그랬던 것처럼. 애 아빠와도 얘기를 나눴고, 시험을 안 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다. 아이에게 물어봤더니 보지 않겠다고 해서 그렇게 결정했다."

백 씨가 설은주 교사와 아이의 지도 방법에 대한 생각을 공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새 학기가 시작한 지 3달 정도밖에 안 지났을 때 선생님을 만났는데 이미 아이의 성격을 모두 파악하고, 이 아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정확히 말씀을 해줬다"며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아이에게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아이가 잘하는 부분을 격려하고 도와주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백 씨는 설 교사와 지속적으로 아이를 놓고 상담을 하며 교류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아이의 변화를 통해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참 많이 변했다. 자기 의견을 보다 더 정확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나 이거 해주세요'라고 고집을 부렸던 아이가 '이런 이유 때문에 이걸 꼭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엄마 마음에 들기 위해서 이런 부분을 고치도록 노력해볼게요' 라고 말을 하더라. 정말 많이 놀랬다. 아이가 책을 많이 읽어온 편도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말을 아주 잘 하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자기 생각을 얘기할 수 있다니….

사실 그게 중요하지 않나.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왜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너희의 생각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물어보는 설 선생님의 교육이 영향을 많이 준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주는 것도 참 안심이 됐다. 내가 많이 돌봐주지도 못하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지도해주니 정말 고마웠다."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냐고 묻기만 하더라"

▲ 등굣길에 만난 한 5학년 학생은 "선생님 그만두게 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시험 보지 말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부모님들) 허락도 다 받은건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설 교사에 대한 신뢰와 교육 방법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일제고사를 보지 않도록 했던 백 씨를 화나게 만든 쪽은 학교였다.

"교감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했다. 내가 직장을 다녀서 아이의 할머니가 받았는데, 교감 선생님이 불법이라고 하셨다는 거다. 할머니 입장에서는 거의 협박처럼 들렸던 것이다. 적어도 교감 선생님이라면 학부모의 이해를 구하는 식으로 얘기해야 하지 않나. 전화를 받았던 친정 어머님이 어떻게 된거냐며 화를 내셨고, 듣는 저도 화가 났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일제고사가 끝난 뒤, 학교 교장이 재차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이렇게 되면 설 선생님에게 불리하다고 하더라. 뭐가 불리하냐고 했더니 불법이라고. 불법이라는 말을 제가 알기로는 처벌을 받는 행동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떤 처벌을 받게 되냐고 물으니까 '그런 건 아니고'라고 하면서 말을 얼버무리더라.

교장 선생님이 다시 '설 선생님이 잘못되는 문제도 문제지만 어떻게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냐'고 물었다. 저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한 건 아니다. 다만 설 선생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준 선택지를 놓고 부모로서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해 결정했을 뿐이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다시 '정말 그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거냐'고 묻더라. 참…."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백 씨는 곧 설 교사에게 징계가 내려질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성폭력, 폭행, 금품수수 같은 때에도 중징계는 없었는데, 그렇게 무거운 징계는 아닐거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해임, 파면이라니, 솔직히 말이 안 된다고 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설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충분히 기회를 주는 선생님 거의 없다고 본다. 물론 다른 시선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가 알지 않나. 강요한다고 해서 교육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걸. 꼭 일률적으로 공부를 시키고, 일정한 점수까지 끌어올리는 교육은 이제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기계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백 씨는 설은주 교사에 대한 중징계 소식을 듣고 학부모들이 빠르게 모여서 행동을 결정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설 교사를 만난 뒤 아이가 변하는 걸 지켜본 자신과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잘 알지 못했던 학부모들이 모여서 1인 시위, 서명 운동 등 중징계를 막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며 머리를 맞댔다고 했다. 그는 "아직은 다른 의견을 가진 분을 보진 못했다"고 말했다.

"다른 반 학부모들까지 곧 우리 아이에게 올 문제가 아닌가 하면서 회의에 왔다. 일단 평일에 모여서 모일 수 있는 분들만 왔는데, 시험을 안 본 아이의 어머니들 모두 참여는 적극적으로 하시겠다고 했다. 징계를 막기 위해 해볼 수 있는 대로 해볼 생각이다. 작은 힘이 모여서 큰 힘이 되니까."

6학년 자녀 외에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2명의 자녀를 더 두고 있는 백 씨는 불이익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만 그건 학부모의 몫이 아닌가 싶다"며 "이렇게 나서는 이유는 정말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고, 만약에 부당한 일이 생긴다고 해도 보다 많은 학부모들을 모아서 교장 선생님과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백 씨는 일제고사를 보지 않았던 아이 역시 분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아이가 선생님이 졸업 때까지 있었으면 좋겠다며 '선생님이 꼭 졸업식까지 나와서 같이 졸업할 수 있게 엄마가 도와주세요' 라고 하더라"며 "앞으로 아이도 선생님을 위해 행동한다고 나선다면 같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곧 있으면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이가 앞으로도 일제고사를 보지 않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그것은 아이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지만 초등학생들이 모두 일제고사를 보게 하는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을 두고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학력고사가 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뀐 이유는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자기가 책임을 다 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들었다. 그런데 또 다시 일제고사를 치뤄서 초등학생까지 등수를 나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일제고사는 선택제였으면 한다. 만약에 꼭 그걸 봐서 학교를 가는 선택을 해야 한다면 학력고사와 마찬가지 아닐까. 아이들이 어떤 기계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정한 기준에 맞춰서 움직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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