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기사' 삭제를 지시했던 금창태 사장은 '편집권 독립' 및 '징계 철회'에 대한 기자들의 요구를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사저널>은 기자들의 파업에 대비해 구성했던 편집위원회 및 외부 기고로 채워져 계속 발행되고 있으며 기자들과 독자들은 이를 '짝퉁'이라고 부르고 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새 매체 창간'이라는 근본적인 변화까지 염두에 두고 협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시사저널> 장영희 취재총괄팀장이 파업 100일을 맞는 기자들의 심정을 담아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그는 "돌이켜보면 지난 100일 동안 우리는 과분할 만큼 독자들과 사회 각계로부터 뜨거운 성원과 열렬한 사랑을 받았고 이는 고단한 상황을 이겨내게 한 동력이었다"며 "아무리 지난해도 우리는 길이 아닌 길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편집자>
파업 100일을 맞는 한 시사저널 기자의 다짐
이제 다시 또 봄이다. 계절만큼 제 때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 더 있을까. 도무지 인간을 배반하는 법이 없다. 이른바 '시사저널 사태'는 지난 여름 발발해 가을과 겨울을 지나고 봄이 오기까지 사계를 거치고 있건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니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이 찬연한 봄이 시사저널 기자 23명에게는 '춘래불사춘'일 수밖에 없다. 이 봄은 봄이 아니다.
이토록 명징한 사안이 발발한 지 300일이 넘도록, 나아가 시사저널 기자들로서는 정녕 가고 싶지 않은 길이었던 파업에 들어가 20일로 100일을 맞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휘상실'이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세계를, 아니 우주를 관통할 상식과 양심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오직 저들에게는 부재한 것일까?
우리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나는 선후배 동료들에게 '무기수'라고 불린다. 사태 발발 2개월 만인 지난해 8월 기한없는 직무정지, 즉 '무기정직'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찌감치 나홀로 파업에 돌입한 셈이다. 떨어져 나와 시사저널 사태를 지켜보는 것이란 참담함 그 자체였다. 그래도 실낱같은 기대는 접지 않았다. 아무리 간극이 크다 해도 해를 넘기지는 않으리라는. 이런 비정상적 상황은 회사 측에도 결코 유리할 것이 없으므로. 나의 관측은 제법 논리적이었지만 보기좋게 빗나갔다. 우리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사측은 무더기 징계와 형사 고소로 기자들을 굴복시키려 했다. 기고와 출연, 강연 등을 금지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내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까지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조치의 약효는 그들의 기대에 한참 못미치는 듯 하다. 배고픔도 우리를 주저앉히지는 못했다. 그 정도로 무너질 것 같았으면 우리는 처음부터 싸움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백보를 양보해 편집권 유린에 저항하는 기자들을 탄압하는 것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치자. 시사저널 애독자들까지 적으로 돌리고 있는 사측은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는 이들인가? 아니 어떤 언론사가 감히 자신들의 핵심 자산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나설 수 있을까. 대들보를 빼내는 격이니 자기 집이 무너지기를 원하는 것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지 시사저널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이유로 피소당한 시사저널 진성독자들에게 시사저널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없이 죄송하다. 또 부끄럽다.
"돌아간다면 정말 제대로 된 기자가 되고 싶다"
돌이켜보면 지난 100일 동안 우리는 과분할 만큼 독자들과 사회 각계로부터 뜨거운 성원과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이것은 그동안의 어렵고 고단한 상황을 이겨내게 한 동력이었다. 이런 엄청난 힘이 있었기에 우리는 기 죽지 않고, 투쟁 대오를 흩뜨리지 않고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얻은 것은 더 있다. "사람을 얻었고, 가족을 얻었고, 인생 후반기를 정신 바짝 차리고 잘, 살아가야겠다는 각성을 얻었다"는 김은남 기자의 파업 100일 소회처럼 시사저널 기자들에게 지난 100일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뉴스의 현장을 누비며 많은 것을 안다고 착각했었다. 파업 노동자가 되고 보니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겸허히 허리 숙여 살겠다"는 윤무영 기자의 토로에 우리 모두는 급속히 전염된다.
취재하는 자리에서 취재 당하는 처지로 바뀌다보니 깨우치게 된 것도 많다. 그동안 과연 기사를 제대로 써 왔는지, 기자 노릇을 바르게 해 왔는지 하는 자성을 하게 된 것이다. 변변하게 언론의 조명조차 받지 못하고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운동가들과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새삼 의식하게 된다. "아! 다시 시사저널 기자로 돌아간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정말 제대로 된, 보다 성숙한 모습의 기자가 되고 싶다"는 고재열 기자의 소회는 지난 투쟁의 값진 소산일 것이다.
30일…50일…100일…지난해도 '갈 길'로 가야 한다
차형석 기자는 파업을 시작하면서 작은 수첩을 펼쳐 날짜 옆에 파업일수를 적었다. 그는 처음에 30일까지, 그 다음에는 50일까지, '설마' 하면서 100일까지 적었다. 그 설마가 현실화된 4월 20일, 그는 수첩에 파업일수를 더 이상 기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 싸움이 다 끝나고 나면 그때 수첩을 다시 펼쳐 날짜 하나 하나를 더듬어 잊고 싶은 일들, 잊지 못할 사람들, 힘들었던 순간들, 기운났던 순간들을 기록할 작정이다.
시사저널 사태를 영상으로 담는 일을 자청한 이정현 기자는 집에 40개나 쌓인 6㎜ 테이프를 편집해 한편의 DVD로 만들 작정이다. 그가 "편집국에 복귀해 열심히 일하는 기자들의 모습으로 이 DVD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울컥했다. 이 기자와 차 기자의 선배인 나는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는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펜대를 다시 잡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있다. 전열을 재정비했다. 비록 더부살이지만, 전국언론노동조합 사무실이라는 안온한 거처를 나와 이제 용산 서울문화사 본관 뒷 건물에 노조 사무실을 차렸다. 바로 그 곳에서 시사저널의 정체성과 정신을 살리는 일이라면, 시사저널을 원래 그 자리에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시사저널 노조를 지지하는 많은 분들은 우리에게 '자본권력의 언론통제에 온 몸으로 저항하는 기자들'이라는 거창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지만, 우리의 생각은 아주 단순하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기자다.'
건강한 상식을 가진 이들이 매섭게 일러준 길
아무리 지난해도 우리는 길이 아닌 길은 가지 않을 것이다. 김민기는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우리가 오를 봉우리가 무엇인지는 시사저널 진성독자들과 건강한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 매섭게 일러 줬다.
파업 100일째, 우리는 그들에게서 한국 사회의 희망을 본다. 그들이 인도하는 그 길을 우리는 아무 망설임없이 뚜벅뚜벅 갈 것이다. 그렇게 끝내 이길 것이다.
시사저널 기자들과 독자 모임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www.sisalove.com )'은 20일 오후 7시 서울역 앞에서 '허클베리 핀과 함께 하는 시사저널 파업 100일 문화제'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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