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시사저널> 사태는 필연이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시사저널> 사태는 필연이었다"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들의 <기자로 산다는 것>

지난해 6월 금창태 사장이 삼성 관련 기사를 일방적으로 삭제한 이후 '편집권 독립' 등을 요구하며 사측과 대립 중인 <시사저널> 기자들이 책을 펴냈다.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엮인 이 책에는 김훈, 박상기, 서명숙, 김상익, 이문재 등 전직 기자와 백승기, 문정우, 남문희, 정희상, 장영희 등 현직 기자가 함께 참여했다.

'엮은이의 말'에서 이들은 "이 책은 회고담만 늘어놓은 것이 아니다"면서 "<시사저널>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통해 비틀린 한국 언론 시장을 간접적으로 고발한 제1장, 매체의 힘이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맨파워에서 나온다는 상식을 일깨워주는 제2장, 그리고 현직 기자들의 글이 담긴 제3장은 언론계뿐만 아니라 탐사보도, 전문보도에 관심을 가진 기자 지망생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레시안>은 <시사저널> 기자들 및 출판사의 양해를 구해 책 본문 중 일부 내용을 소개한다. 글을 쓴 장영희 취재총괄부장은 이번 <시사저널> 사태의 발단이 됐던 '삼성 기사'를 검토했던 당사자이며, 사건 발생 이후 이윤삼 편집국장의 이름을 판권에서 빼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기 정직'을 받았다. 그는 1989년 <시사저널> 창간 당시부터 일해 온 경제부 기자로, 그가 경험한 각종 일화를 통해 <시사저널>이 왜 삼성이라는 기업을 주목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번 사태가 <시사저널>의 전통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12일 열리는 이 책의 출판기념회에서는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와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 등의 축사가 예정돼 있다. 이번 행사는 지난해 10월 있었던 <시사저널> 노동조합 후원 일일호프에 이어 두번째 열리는 <시사저널> 노조 후원 행사이기도 하다. 이번 행사는 이날 오후 7시30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편집자>

열다섯 번의 특종, 열세 건의 소송
▲ ⓒ프레시안

(…) 기업 뉴스는 시사저널 경제면의 또 한 축이었다. 경제 흐름이 거시적으로 경제를 들여다보는 확대경이라면 기업 뉴스는 미시적으로 경제를 살피는 현미경 같은 성격을 지녔다. 기업은 가장 활발한 생산 주체이자 경제를 성장시키는 주역이다. 그러니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특히 기업 뉴스를 재벌 오너와 전문 경영인(CEO)이라는 인물 프리즘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다. 이런 접근법은 우선 독자들이 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은 성공한 사람들이 분명하고 무엇이 이들을 성공에 이르게 했는지, 경영 철학은 무엇인지 따위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전문 경영인들도 시사저널과 친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특히나 재벌 총수들은 언론 앞에 나서기를 극도로 꺼려 인터뷰 석에 앉히는 데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하지만 미리 공식적인 동선을 파악해 현장에서의 기습 인터뷰를 시도했던 적은 적지 않다. 어김없이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위압적인 저지를 당했지만, 기를 쓰는 내가 측은(?)했는지 몇몇 '회장님'은 다소나마 나의 궁금증을 풀어 주는 성의를 보였다. 해갈까지는 아니어도 목은 축여 준 그들의 답변이 그 기업 관련 기사를 쓰는 데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었다.

"한국 재벌의 부정적 측면 한꺼번에 드러내는 삼성의 지배구조"

기업 뉴스 가운데서도 유독 천착한 주제는 '삼성'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삼성에서 눈을 떼지 않은 것은 경제 위기 이후 현대 그룹을 확실히 제치고 삼성이 한국의 대표 기업으로 등극해서만은 아니었다. 삼성을 통해 재벌의 문제가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삼성이라는 기업 문제가 아니고, 이건희 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삼성의 지배 구조 문제였다(나는 이 대목에서 적잖은 지식인들이 왜 기업과 기업인을 구별해서 생각하지 않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삼성 그룹의 지배 구조는 한국 재벌의 부정적 측면을 한꺼번에 드러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경영권의 변칙 세습 시비를 비롯해 20년 가까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삼성생명의 상장 문제, 삼성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 논란 등으로 삼성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같은 삼성 이슈는 기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법률 공부도 제법 시켰다. 파란을 겪은 금산법(금융 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같은, 금융 전문가들이나 알 법한 어렵고 낯선 법률들이 일반인들의 화제에도 오르내린 것이다.

삼성 처지에서는 2005년이 최악의 해였을 것이다. 그 해 7월 마침내 'X파일' 사건이 폭로된 것이다. 이회장의 측근 인사들이 정치권과 검찰, 언론계 등을 금력으로 전방위 관리해 왔다는 사실은 파문을 몰고 왔다. 이 사실이 드러나기 전부터 시사저널은 삼성이 어떻게 한국의 여론 주도층을 관리해 왔는지 관심을 가져 왔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 '국정 어젠다'를 제공하는 등 삼성이 정책을 '추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견인'하는 위험한 행보를 보여 왔다는 사실을 추적 보도하기도 했다. X파일은 이런 혐의를 사실로 변화시켰다.

삼성만 후벼파는 비난만 일삼는 기자, 심지어 반기업적인 기자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경제 기자로서 내가 가진 삼성과 이건희 회장에 대한 문제 의식을 요약하면 이렇다. '삼성은 막강한 경제력을 원천으로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려 하고 있다. 삼성은 선출되지도, 견제받지도 않은 권력이 되었다.'

"삼성 통권 기획 제안은 '화끈한 지지'를 받았다"

<시사저널>의 삼성에 대한 문제 의식이 응축된 보기를 단 하나만 들라면 나는 주저 없이 2005년 9월 발간한 추석 합병호(830·831호)를 꼽는다. '삼성은 어떻게 한국을 움직이나'라는 제목의, 거의 통권 기획이었다. 시사저널 사상 한 주제로 75쪽에 이르는 지면을 채운 일은 일찍이 없었다. 성역 없이 비판해야 할 기자들도 '삼성 앞에만 서면 심리적으로 위축된다'는 그 삼성 기사로 지면을 이렇게 크게 열었던 언론도 없었다(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그 해 8월 초 <시사저널> 기자들은 월례 회의를 하러 회의실로 모였다. 단연 최대 이슈는 삼성이었다. 튀어나올 수 있는 모든 문제가 돌출해 있었던 터라 초점은 삼성이라는 주제가 아니라 이를 <시사저널>답게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모아졌다. 계기가 있을 때마다 다루어 왔지만 이번에는 여러 측면을 동시에 확실히 짚자는 내 제안을 누군가가 아예 통권 기획으로 꾸리면 어떠냐고 받았다. 이 제안은 화끈한 지지를 받았다. 새로 온 이윤삼 국장은 용기 있게 결단을 내렸고 각 팀별로 아이디어를 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후부터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내 몫의 경제 기사를 쓰면 될 일이었지만, 나는 이 통권 기획을 모두 짊어진 듯한 무게에 짓눌렸다. 당시 나는 경제 전문 기자였다. <시사저널>에서 삼성 문제를 가장 많이 다룬 기자였던 것은 맞지만 이토록 과도한 책임감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나는 국장이 시킨 것도 아닌데, 다음 날 회의 때 돌릴 전체 기획서를 만드느라고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이 기획서와 각 기자들이 낸 아이디어가 합쳐져 8월 중순부터 <시사저널>의 거의 모든 기자가 총출동해 취재에 돌입했다. 이 통권 기획은 그 해 9월 9일 최종 마감되어 세상에 나왔다.

"지금도 그 기사는 내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변함없다"

막강한 힘에다 취재 환경이 최악이라는 국세청 해부 기사를 썼을 때였던가, 아니면 유능하고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재정경제부 관료들을 경악케 한 기사를 썼을 때였던가. 데스크로부터 "(취재원) 빤스까지 벗겼구만" 하는 평가를 들으면서 나는 극도의 피로감이 일시에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오해하지 마시라. 샅샅이 파고들었다는 뜻을 우리는 이런 속된말로 표현한다. 직업적 비속어이니 널리 양해하시길).

사실 '기사 재미있다'는 데스크의 한 마디가 물먹은 솜 같은 몸을 일으킨다. 삼성 통권 기획은 여기에다 기자로서의 보람과 성취감까지 안겼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으며, 기자들 모두 열정적으로 같이한, 그래서 작품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은 기획이 삼성 통권호였다고 나는 자부한다.

삼성에 대한 이런 시도는 지금의 <시사저널> 사태를 불러온 지난해 6월 이학수 부회장 기사 삭제 사건의 전조였는지도 모른다. 통권 기획을 할 때 금창태 사장을 만나고 온 국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 국장으로부터 "윗분의 격한 반응이 있었지만 기획이 나가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지난해 6월 나는 취재 데스크로서 문제의 기사를 데스킹했다. 삼성 취재 경험에서 오는 판단과 기사의 요건 측면에서 이 기사는 <시사저널>이 내보낼 수 있는 기사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사실의 힘 만끽할 기사 많이많이 선보이고 싶다"

그로부터 7개월이 흘렀다. 그토록 대화로 문제를 풀려고 했건만, 파업이라는 원치 않은 선택을 해야 했다. <시사저널> 기자 모두가 펜대가 꺾인 채 거리로 내몰렸다. 매체와 기자 정신을 지키려는 우리의 안간힘에 대한 독자의 성원은 그야말로 황송하고 과분할 지경이다. 지난해 안종필 자유언론상 수상에 이어 또다시 최근 한국기자협회 제38회 한국기자상 공로상 수상 소식은 우리를 더욱 돌아보게 만든다. '<시사저널>이 경제 권력 감시에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고 그 동안 거대 언론이 외면한 사회의 부조리를 꾸준히 탐사 보도해 온 공로를 인정'한다는 수상 이유는 우리가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창간 정신을 상기시켰다.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히고 이해와 화합의 광장을 넓힌다.'

창간 정신에 잘 드러나듯이, 김훈, 김상익, 서명숙, 문정우, 이문재 선배에 이르기까지, 내가 겪은 <시사저널> 선배들은 입을 맞춘 듯 '팩트주의'를 강조했다. 나 역시 후배들에게 해 줄 말로 사실의 힘을 첫손에 꼽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른바 글발 있는 진맛이 나는 글에 자주 감탄하는 축에 속한다. 하지만 나를 정말 소름끼치게 하는 기사는 따로 있다. 팩트로 점철된 기사다. 기자라면 누구나 경험이 있을 터이지만, 사실, 사실이 받쳐주는 기사는 어떻게 써야 할지 그리 끙끙거릴 필요도 없다. 그 자체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니까 말이다.

강제로 주어졌지만, 뒤를 돌아볼 계기가 생기면서 나는 청춘을 바쳤던 <시사저널>이 그럴 가치가 있는 매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동시에 역설적이지만, 공포도 느꼈다. 그 동안 내가 제대로 기사를 써 왔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부활할 <시사저널>에서 나는 만회의 기회를 갖고 싶다. 사실의 힘을 만끽할 기사를 독자에게 많이많이 선보이고 싶은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