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노조를 비롯해 독자,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사태를 풀기 위해서는 <시사저널>의 모회사인 서울문화사 심상기 회장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심 회장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그는 지난달 20일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이 알아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무더기 징계, 협상 결렬, 파업, 파행 발간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심 회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처럼 지난해 '삼성 기사 삭제 사건'으로 불거진 사태를 계속 키우고 있는 사측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시사저널>의 모회사인 서울문화사가 <시사저널> 자체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사측의 행보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 가장 무방비로 노출됐던 잡지
이런 의구심은 한국의 시사잡지 시장 자체가 구조조정을 연상할 정도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객관적인 상황에 기인한 것이다. 2~3년 전부터 시사잡지의 기자수가 대폭 줄어든 것은 경영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징후다.
한국언론재단의 김영주 연구원은 <시사잡지와 잡지 저널리즘> 연구보고서에서"잡지 시장 자체가 침체되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얘기"라며 "더욱이 시사잡지는 생활정보나 연예정보를 담고 있는 여타의 잡지들보다 침체의 깊이나 기간이 더 깊고 장기화돼 있다"고 밝혔다.
시사잡지계의 위축 현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매체 환경의 변화를 첫째로 꼽는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매체'인 잡지는 인터넷을 앞세운 디지털 환경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됐다. 인터넷을 통해 속보를 제공하는 신문이나 디지털 환경에서 오히려 더 유리해진 방송에 비해 잡지는 상대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할 여지가 적었다.
인터넷은 잡지뿐만 아니라 신문 시장에도 타격을 가했다. 신문들은 주말판 강화, 그리고 기획 취재의 확대 등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신문의 잡지화'라고 부른다. 이 같은 현상은 시사잡지의 수요를 더욱 감소시켰다.
또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 등장한 무가지는 한국 시사잡지계를 한층 더 불황에 빠지게 하는 요인이 됐다. 출퇴근 시간을 공략한 무가지 때문에 가판대를 통한 인쇄매체 판매는 급격히 감소했다. 실제로 서울시 지하철 가판대의 숫자는 매년 크게 줄어들고 있다. 2006년 서울시의 지하철 신문판매대 운영현황 조사에 따르면 도시철도공사(5-8호선)에서는 최근 3년 동안 82개가 줄어들어 21개가 운영중이며 서울메트로(1-4호선)에서는 2005년에 비해 10개가 줄어들어 139개가 남아 있는 상태다.
광고 감소, 발행부수 감소…계속되는 침체
잡지 수요의 감소는 발행부수의 감소를 동반했다. 1990년대 일부 시사잡지들은 10만 부 이상 발행되기도 했지만 최근 이들의 평균 발행부수는 4만 부에서 5만 부 정도다.
시장 규모의 축소는 경영과 직결된 광고의 감소를 불렀다. 매체광고비 중 4%대를 유지하던 잡지의 광고비 점유율은 1997년 IMF 이후 3% 내외로 줄어들었다. 그중에서도 시사잡지는 여성지나 경제, 산업기술 전문지에 비해 점유율이 크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이 같은 현상은 자연스레 미디어업계 소유주들이 시사잡지를 기피하게 만들었다. 신문기업들은 기존의 잡지 발행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이들은 분사 등을 통해 활로를 모색해보기도 한다. 불황은 시사주간지뿐 아니라 신문, 잡지 등 미디어산업 전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지만 시사잡지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금창태 "소극적인 해결 자세란 말은 억측"
이번 사태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이들 중 일부는 <시사저널> 사태를 방관하는 심상기 회장의 행보가 난항을 겪고 있는 시사잡지계의 현황과 연관된 게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서울문화사는 <시사저널> 외에도 월간 종합 여성지 <우먼센스>를 비롯해 <리빙센스>, <베스트 베이비>, <에꼴>, <에쎈>, <앙앙>, <아레나>, <아이큐 점프>, <월간 점프>, <윙크>, <영점프>, <빅점프> 등 10여 종이 넘는 생활 및 만화잡지들을 발행하고 있다. 시사잡지 시장의 불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서울문화사 측에서는 소위 '돈이 되지 않는' <시사저널>을 포기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사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은 지난달 30일 <프레시안>과 전화통화에서 '소극적인 해결 자세' 지적에 대해 "억측에 불과하다"며 "회사는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돼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금 사장은 또 "이번 사태는 한 작은 회사의 노사갈등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면서 "한국 사회에 무슨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관심을 갖나"라며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은 서울문화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서도 심상기 회장과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해외 출장 중이라서 불가능했다.
한편 언론계에서 서울문화사가 <시사저널>의 가치를 단순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의 김승수 교수는 "회사가 비교적 괜찮은 매체였던 <시사저널>을 지금 난파시키고 있는데 그 이유가 정당하지도 않고 불투명하다"며 "그러니 독자들은 삼성과 사주의 관계 등 그 이유에 대해 추측하고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시사저널>이 영향력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독립성이라는 그들만의 특색 때문이었는데 이유없이 갑자기 이 특성을 뒤집어버리는 것은 도끼로 자기 발을 찍는 격"이라며 "사주나 경영진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독자, 학자, 시민단체들은 황당한 상태"라고 말했다.
김승수 교수는 "복합매체 격인 서울문화사에서 <시사저널>이 잘못 되면 다른 매체들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회사는 굉장히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타임>은 '거울'에서 '등불'로 변할 것이다" 시사잡지의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타임>지는 2005년 105명을 감원한 데 이어 2006년에는 추가로 100명을 감원했다. <뉴스위크> 역시 250명을 상회하던 편집 인력이 2003년 이후 170~180명 정도로 대폭 축소됐다. 프랑스에서도 2000년 3억2000만 유로였던 전국 시사잡지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5년에는 약 2억7300만 유로에 그쳤다. 침체에 빠져 있는 시사잡지 시장이지만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매체 환경의 변화로 인한 어느 정도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고 해도 시사잡지의 강점인 심층적·전문적인 보도를 원하는 이들의 수요는 존재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 주, 혹은 한 달간의 정보를 종합·요약·분석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시사잡지 고유의 역할은 환경이 변해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망은 시사잡지들이 차별화된 기사, 즉 기사의 질로 위기를 극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시사잡지계에서도 '차별화 전략'은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미시시피 대학 저널리즘학과의 사미르 후스니 학과장은 지난해 미국의 PEJ(The 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 연구팀이 마련한 토론회에서 "동일한 독자가 동일한 이야기를 읽고 듣고 보기 위해 신문에서 다른 웹 사이트로, 텔레비전 채널로, 라디오로 이동해 다닐 것이라고 믿는 것은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중 가장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더 위크>지의 윌리암 파크 편집장은 "심지어 편집장들은 더 이상 새롭게 보도할 내용이 없는 하나의 이야기에 집착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잡지의 주장에 매우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며 "특종과 탐사 보도, 그리고 독자의 대변인이라는 인식을 계속 보여줘야만 전통적인 신문과 잡지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타임>의 편집장으로 임명된 리차드 스텐겔은 "<타임>의 거울(Mirror)적 이미지를 등불(Lamp)적 이미지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있는 그대로의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같은 보도에서 '등불'처럼 적극적으로 <타임>의 목소리를 알려내겠다는 나름의 전략을 공표한 셈이다. 미국의 시사잡지계의 이 같은 움직임은 위기에 빠진 한국의 시사잡지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기자들이 빠진 채 발행되고 있는 <시사저널>이 '짝퉁'이라는 비난을 듣는 이유도 바로 그런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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