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시사저널> 사태는 지난 9일 기자들이 빠진 채 잡지가 발행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있는 금창태 사장의 지휘 아래 편집위원 및 외부 필자들의 기고로 채워진 잡지가 지난 9일 899호에 이어 지난 16일에는 900호로 발행됐다.
기자들과 독자들은 이를 '짝퉁 <시사저널>'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금창태 사장은 편집인인 자신이 지휘하는 이상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짝퉁'이란 용어를 쓴 필자들과 언론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번에는 독자 및 일반 시민들이 '나를 고소하라'며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19일 저녁 서울 충정로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부활하라! 진품 시사저널' 문화제를 열었다. 고종석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위원,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 등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꾸린 독자 및 언론계 인사들은 앞으로도 사태 해결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의견을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이번 사태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모두 '초유의 사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사저널>의 문제가 결코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또 결코 한 주간지의 내홍 정도로 치부할 일도 아니라고 한다.
<시사저널> 사태는 민주화 이후 언론을 통제하는 가장 막강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자본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언론과 자본의 관계를 화두로 이번 <시사저널> 사태가 갖고 있는 함의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류이근 <한겨레21> 기자, 최성진 전 <뉴스메이커> 기자, 이송지혜 민주언론시민연합 기획부장, 신호철 <시사저널> 기자가 참석한 이 방담은 지난 16일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에서 열렸다. <편집자>
<시사저널> 사태 뜯어보기
프레시안 : 여기 모인 분들은 현재 <시사저널>의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신 분들이라 편하게 얘기했으면 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사태를 바라볼 수 있을 듯 하다. 이번 사태의 성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현재 발행되고 있는 잡지에 대한 소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신호철: 지난 899호에는 '조중동 죽이려다 친여 매체 다 죽이나'라는 제목이 뽑혀 있었다. 이분법적으로 조중동과 친여매체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초등학생과 같은 사고다. <시사저널>이 산업잡지가 되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정치적인 성격이 변해가니까 문제가 있는 거다.
류이근 : '짝퉁' <시사저널>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기존 우리가 읽어 왔던 <시사저널>이 진품이었다는 얘기다. 지금의 <시사저널>을 메꾸고 있는 기사들이 진품과 어울리지 않게 돼버렸는데 앞으로도 이런 일이 되풀이 될 것 같다. 크게 보면 국민들이 원하는 잡지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한겨레>도 자유롭지 못한 편인데 다른 언론들이 이 문제에 너무 침묵해 왔다. 어느 언론사도 지금 <시사저널>이 겪고 있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미시적으로는 언론사 내 편집권 독립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는지도 회의적이다. 대부분 언론들이 대기업 광고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그래서 언론들이 스스로 발언할 용기도 없을 뿐더러 발언할 때 불이익을 겪을 수도 있다. 구조적으로 그런 것들을 기자들이 발언할 수 없는 위치에 처해 있다는 얘기다.
서명숙 전 <시사저널> 편집장과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위원 등 전직 언론인 선배들이 칼럼 등을 통해 '이게 기사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게 기사가 되는 것이냐'며 직접적으로 현직에 있는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 기자들이 답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이송지혜 : 저도 이번 사태가 참 가슴아프다. 언론재단이 지속적으로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거에는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가장 큰 세력이 (정치)권력이라는 답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87년 이후 민주화 과정 속에서는 1위가 사주, 2위가 재벌 또는 광고주의 입김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사태는 그것과 딱 맞닿아 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외압을 경영진이 방어해줘야 할 텐데 오히려 기사를 빼고 편집권을 훼손했다. 그동안 언론재단의 조사에 나타났던 언론자유 침해의 가장 큰 두 가지 요소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본다.
"더 이상 상식과 선의에 기댈 수 없는 문제"
최성진: 899호 이후부터 굉장히 혼란스러워졌다. 그 이유는 기자가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의지해 왔던 부분은 법보다는 상식이라는 잣대였고 그것을 믿고 기사를 썼는데, 899호 만드는 시점부터 사측에서 상식을 가지고 잡지를 만들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삼성 기사 삭제 문제가 불거져서 장기간 파행을 겪고 있는 이때에 삼성 측과 관련된 인사가 와서 편집에 개입한다든가, 전직 <중앙일보> 기자들이 와서 편집을 한다든가 하는 부분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현직 중앙일보 기자가 커버스토리 썼는데 이런 행태가 상식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는 건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류이근: 상식에 지나치게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사실 899호를 이렇게 만들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우려했던 대로 만들었다. 자칫 상식에 기대하면 문제의 성격이나 사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1인 사주의 선의를 기대하긴 참 어렵기 때문이다. 1인 사주가 운영하는 매체들의 폐해를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봐 왔다. 정권, 자본의 압력이 그대로 편집국이나 기자들에게 투영되어 문제가 부각된 사례들은 많이 있었다. 사주들의 선의는 어디까지나 기업으로서의 매체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편집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것을 제도화시켜내지 못했을 때 편집권은 쉽게 위험에 노출된다. 최소한 사주가 갖는 소유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면 기자들은 편집권 문제를 제도화, 명문화 하지 않았을 때 사주의 선의에 쉽게 배반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최성진: 류 기자는 '선의'라고 했고 나는 '상식'이라고 말했다. 상식이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류이근: 취재 과정에서 금창태 사장을 만나서 깜짝 놀랐다.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기사를 들어낸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편집국 간부와 기자들을 징계조치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형식 논리로 보면, 또 사주의 상식으로 보면 자신이 발행인 겸 대표이사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다.
또 놀랐던 것은 지난번 899호 발행 뒤 사태가 새롭게 전개된 점이다. 초유의 일이라고 하던데,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한 뒷감당을 할 수 없어서 그런지 현재 잡지를 만들고 있는 책임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말을 안하고 언론을 피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 인터뷰 등에도 떳떳하게 응하던 태도에서 바뀌었다.
신호철: 폭풍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 아닌가 본다.
류이근: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금 사장이 원하는 것이 이런 형태의 잡지가 계속 생산되는 것인지, 아니면 기자들로부터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강행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만약 전자라면 가장 비극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이송지혜: 금 사장이 공동대책위원회로 꾸려진 시민단체들의 면담도 거부했다.
최성진: <중앙일보> 기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류이근: <중앙일보> 계열사가 899호부터 많이 참여했다. 실제 만들고 있는 편집위원들의 상당수가 <중앙일보> 출신이고, 그런데 정작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서는 시사저널 사태를 볼 수 없다.
"언론의 자유 외치던 조중동은 왜 아무 말도 없을까?"
최성진: 899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냉정하게 말하면 <시사저널>의 문제였는데, 이제 더 이상 <시사저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언론에는 '왠만하면 다른 회사의 문제는 그냥 넘어가거나 침묵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류이근: 경쟁사 혹은 타 언론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태도라고 본다. 취재하면서 '이제 그만해라', '경쟁지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침묵하는 것이 관행 아니냐, 이걸 깨도 되는 건가' 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굉장히 불편했다.
문제에 대해 방관, 동조, 침묵하라는 말이다. 기자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역할이 사회 감시라면 그 사회라는 공간 안에는 언론도 들어간다.
최성진: 애초 이 사태의 발단이 삼성 기사에 있었고, 상식적으로 <중앙일보>와 삼성의 관계가 충분히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사태의 와중에 <중앙일보> 기자가 <시사저널> 기사를 쓴다는 것이 문제다.
이송지혜: 언론의 자유에 대해 목소리 높이고 있는 조중동이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우습다.
류이근: <시사저널> 자체가 한국 사회 내에서 가지는 독특한 역할이 있었다. 그런 잡지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조중동은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좋아하는 것 아닌가? 언론의 자유를 말했는데, 조중동은 이 문제를 언론의 자유라기보다는 자본의 자유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편집권은 기자의 근로조건이다"
프레시안: 이번 사태를 대강 아는 독자들은 '기자들의 파업은 결국 독자들의 손해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류이근: 노사갈등으로 보더라도 <시사저널>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 임명된 적 없는 편집위원들의 기사는 독자들에게 손해가 되고 있다.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인식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런데 조중동은 정확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고 아예 악의적인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송지혜: 또 사측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지 않나?
신호철 : 미온적이다. '이거 이거 안 받으면 너네 맘대로 하라'는 식이다.
이송지혜 : 답답한 것이, 지금 시사저널 기자들은 과도하게 월급을 올려달라거나 후생복지와 관련된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문제로 하는 파업도 정당하지만, 이번 문제는 그것이 핵심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기업의 압력을 받아 편집권이 부당하게 유린당한 점이다. 문제의 본질이 제대로만 전달된다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사측이 잘못됐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신호철 : 편집인은 편집권을 경영의 문제로 본다. 그런데 편집권은 기자의 근로조건이며, 노동의 권리 중 하나다. 노사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근로조건이다.
류이근: 기자들의 요구사항이나 정당한 편집권에 대해 명시적인 장치를 <시사저널>에서는 갖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을 수 있는 경우에 대한 대비가 너무 소홀했던 것 같다. <한겨레>는 사장이 발행인까지 맡고 있다. 그러나 편집인과 편집국장이 따로 있고, 편집국장이 최후 보루로서의 역할을 하고 편집인은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맡는다.
"오만하고 예민한 기업의 '언론 검열'"
프레시안 : 물론 편집인, 편집국장의 편집권 문제도 언급돼야 한다. 그러나 결국은 경영과 맞물리는 광고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류이근: 사실 현업에 있는 기자들도 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사실 언론사의 광고국와 광고주는 통상적인 갑을관계가 역전돼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 기업에 대한 기사가 크게 다뤄지면 광고국의 의견이 곧바로 기자한테 또는 데스크한테 간다. 이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언제든지 그런 일이 재발할 수 있고,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다.
최성진: 기자로서 재벌 관련된 기사 쓰는 것은 매우 어렵다. 보통 미담이나 선행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가 아니라 재벌의 비리 문제 등에 관한 기사를 쓸 때면 필수적으로 해당 기업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취재해야 한다. 그럴 때 홍보실을 통해 취재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인데 그렇게 되면 바로 광고국으로 접촉이 들어와 일종의 딜을 제의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기자 개개인 스스로도 일종의 자기검열 비슷하게, 최소한 귀찮아서라도, 재벌관련 기사는 잘 쓰지 않게 된다.
프레시안 : 예전에는 권력을 가진 기관이 검열을 했다면 이제는 결과적으로 재벌들이 검열을 하는 격인 것 같다.
류이근: 재미있는 것이 사람들이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은 쉽게 받아들이지만, 자본의 횡포나 부당한 압력에 대해서는 조금 느낌이 다른 것 같다.
또 우리가 잡지를 만들어서 파는 과정도 일종의 자본의 행위이기도 하다. 자본주, 재벌들의 문제제기와 간섭에 대해 기자들이 체감적으로 가장 큰 압력 중의 하나라고 꼽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덜하다.
이송지혜: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삼성은 언론인들을 잘 관리하기로 유명하다. 쟁쟁한 언론인 출신들이 그 홍보실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렇게 밖으로 표출된 <시사저널> 사태 외에 드러나지 않은 삼성과 관련된 이런 일들이 굉장히 많을 것 같다. 어제 에버랜드에서 사고가 났는데 몇몇 언론에 의해 알려졌는데도 '모 놀이동산'이라고 한 언론도 있었다.
최성진: 심지어 몇몇 경제지는 이 에버랜드 사고를 쓰지도 않았다.
류이근: 대기업들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기사를 막으려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몸부림이다. 당위적으로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결국 문제는 기자들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 같다. 사주, 조직이 그런 압력을 이겨내야 한다.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모기장을 촘촘히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성진: 해당 기자가 대응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피땀 흘려서 생산한 기사를 끝까지 지켜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기자 개인의 영역이나 시사저널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에서 그걸 지켜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다. 내 생각에는 민언련, 기자협회, 언론노조 등에서 기구나 제도적 차원으로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송지혜: 그런 측면에서 공영방송이나 특정한 사주가 없는 <한겨레> 같은 매체에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물론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해 회사에 불이익이 돌아가는 기사를 막는 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지만, 삼성같은 그룹은 우리나라 최대의 기업이라는 점에서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도 분명 있다.
따라서 언론으로부터 감시받고, 사회의 여러 다른 관계 속에서 감시받고 견제받는 가운데 운영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이것을 부당한 개입이나 외압을 통해 해결하려 한 것은 삼성이 마땅한 비판 받아야 할 문제다. 삼성은 'X파일' 사건부터 시작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단죄받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꾸 이런 식으로 편법으로라도 자신과 관련된 부당한 기사를 막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이런 기업이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라는 것이 가슴아프다. 누구로부터도 비판받고 평가받지 않겠다는 태도는 정치권력보다 더 오만한 태도다.
최성진: 기업에 해가 되는 기사를 막는 것도 있지만 사주와 관련된 평범한 기사들마저도 무조건 내지 말라고 요구한다. 오만한 자세와 더불어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예민한 자세라고 본다.
"실제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이 상상하는 '삼성의 힘'이다"
프레시안 : 요즘 언론의 경제적 종속의 문제는 꼭 기업에 의해서만 제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최근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금속노조의 의견 광고를 거절했던 일도 있다. 이미 언론 자체 내부에 상당히 기업 또는 재벌의 속성이 들어와 내면화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류이근: 기본적으로 수입의 80~90%를 광고에 의존하니까 발생하는 문제다.
신호철 : 그 중에서도 삼성과 기타의 기업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가운데 사람들을 접촉하면서 곳곳에 삼성의 힘이 계측된다. '시사모' 등에 이름을 넣어달라고 얘기해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삼성을 의식하는가, '삼성 의식지수'가 나타난다. 삼성의 일이라 그런 일은 안 하겠다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당장 오늘 방담도 섭외하는 과정에서 두 명이 안 됐다.
사람들은 삼성의 실제적인 힘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힘을 상상한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다른 기업하고는 차원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명시적인 편집권 규약과 사회적 기구 마련, 대안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삼성이라는 권력이 언론과 닿아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는 광고 때문 아니냐. 그 고리를 끊기 위해 언론사의 수익구조를 개편해야 하나?
류이근: 상당히 본질적인 문제다. 모든 잡지들 마찬가지일 텐데 삼성의 광고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수익구조 개편은 현재의 사태를 해결하는 방식이 될 수는 없으며 대략 열 발자국쯤 앞서나간 생각인 것 같다. 삼성으로부터 광고를 받으면서 발생하는 긴장감, 이것을 어떻게 관리해 나가느냐의 문제다.
사주의 의지도 중요하고 편집권을 지켜내려고 하는 기자의 의지도 중요한 것 같다. 미시적으로는 광고주와 관련된 기사를 넣고 빼고, 톤을 조절하는 문제와 관련해 편집국과 광고국 간에 어떤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는지 좀 더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송지혜: 재벌의 언론관리가 단지 광고만 갖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연수 등으로 언론인들을 관리하는 수단은 많다.
류이근: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모순이다. 영세한 언론사에 종사하는 기자들의 경우는 자본주들이 제공하는 기회를 통해서 연수도 가고 때로는 그들의 협찬을 통해 취재를 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모두 떠나 청정지역에 살고 싶다? 현실성이 없다. 오히려 돈 많은 언론사는 현실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최성진: 지금 <시사저널> 사태와 같은 일을 어떤 개인의 영역이나 하나의 매체에서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연대의 틀을 모색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기자협회라든지 관련 단체들이 많이 있지 않나. 재벌 관련 기사로 인한 연대 같은 것을 하나 설치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생각한다.
이송지혜: <시사저널> 공대위가 사실 그 두 가지에 대한 고민을 같이 안고 있다. 당면해서는 '시사저널 편집권 독립'과 관련된 공대위이지만 그 공대위에서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자본으로부터 언론 독립'이다.
<시사저널>의 건강한 기자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로 던져진 것 같다. 암담하지만 쓰레기통에서 핀 장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냥 묻히고 넘어갈 수도 있던 문제였는데 한가닥 희망을 본 것 같다.
프레시안: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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