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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법원이 아니라 진실화해위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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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법원이 아니라 진실화해위로 갔을까

[기자의 눈]"사법부 과거사 청산은 '민초'들을 위한 것"

3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른바 '긴조 시대'라 불리는 1974~79년 기간의 긴급조치 위반 사건 판결문 분석과 함께 담당 판사의 이름을 공개한다고 발표해서 법원의 심기가 편치 않다. 이미 일부 언론을 통해 해당 고위직 판사의 이름이 공개됐고 법원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관 제청시 긴급조치 판결에 참여했던 전력을 이미 고려했다"고 퉁명스럽게 대꾸하기도 했다.

사법부의 소극적 태도가 사법불신 키워

물론 당시 시대상황과 긴급조치의 근거가 됐던 유신헌법을 중심으로 짜여 있던 법체계, 해당 판사들이 하급직이었던 정황 등을 감안하면 '긴조 시대'의 책임을 온전히 그들에게만 묻긴 어렵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은 정당치도 않다. 이는 진실화해위의 '긴급조치 위반 사건 판결분석' 전문이 31일 공개되면 판결 비평의 맥락이 드러날 터이고 '현직 고위직 판사를 겨냥했다'는 오해도 어느 정도는 풀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사법부가 시간을 끌다, 혹은 고민만 하다 타이밍을 놓쳤다는 대목이다. 이 대법원장이 2005년 9월 취임한 이후 법조계에서는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방식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국정원이나 경찰처럼 중립적 인사들이 참여한 과거사 위원회를 두는 방식이 언급됐고, 과거 위헌적 법률을 무효화하는 특별법을 만들어 당시 판결 자체를 무효화 하는 방안도 언급됐으나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추진되지 않았으며,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명목으로 '재심 강화'에 방점이 찍혔다. 당사자들이 일일이 재심을 청구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고 다시 재판을 하는, 대단히 고답적이면서 동시에 길고 복잡한 절차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사법부는 '재심 전담 재판부 설치'와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법원은 '인혁당 재건위'와 같은 과거사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오길 기다리는 형국이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의도했건 안 했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검찰의 항소 포기로 인해 1심에서 판결이 확정됐다. 오로지 유족들 스스로 견뎌내야 했던 30년 넘는 인고의 세월, 그 중에서도 특히 재심 결정부터 재심 1심 선고까지 5년여가 걸린 점을 감안하면 이쯤에서 재판을 그만두는 것이 적절하다고도 생각된다. 그러나 법원 주변에서뿐만 아니라 유족들 주변에서도 솔직히 이 사건이 대법원 상고심까지 가기를 바라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사법부의 최고기관으로부터 과거사에 대한 공식적 사과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 간첩사건 고문조작 피해자들이 한국인권재단의 워크숍에 참가해 당시 상황을 증언하며 오열하고 있다. ⓒ프레시안

그도 그럴 것이 취임식에서부터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법부의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며 '과거사 청산'을 강조해 온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서 "유신정권 이후 빚어진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 등 과거사를 재심사건 판례를 변경하는 방법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이 사건이 대법원까지 갈 경우 대법원이 과연 판결문으로 무엇을 말할지 궁금하기도 했던 것이다.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 과거사 청산에 나서야

과거사 청산에 대한 사법부의 이같은 소극적 자세가 결국 국민들의 사법불신을 더욱 키워온 것 아닌지 사법부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또 이번 '긴급조치' 사태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사법부에 대한 분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내야 한다.

사실 '긴조 시대'의 투사들은 이미 민주화운동 명예회복이나 정계진출 등을 통해 상당수가 사회적 명예회복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긴조시대는 물론 전두환 정권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초'들이 억울하게 사법적 처벌을 받았고, 여전히 이들은 자신들의 사법적 명예를 되찾기 힘든 '민초'의 신분임을 감안하면 사법부의 소극적 자세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진실화해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긴조시대의 판결은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욕하다 끌려가거나 강의 시간에 유신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 받은, 지금의 잣대로 보면 말도 안 되는 판결과 형량 선고가 전체의 48%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렇게 '운동권'이 아닌 긴급조치 위반자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고, 자신의 명예회복을 이루는 길조차 멀게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수많은 억울함들이 그대로 남아 '사법불신'이라는 큰 법 감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이다.

세상에 어느 개명된 나라가 목소리 큰 운동권 인사들의 과거 행위에 대해서는 '민주화운동'이라는 훈장과 함께 금전적 보상까지 간단히 제공하면서 그런 알량한 명분조차 걸 수 없는, 그러나 삶의 막장에서 터져 나오는 욕설 한마디를 빌미 삼아 깊은 감옥에 처넣은 뒤 그걸 보상 받으려면 엄격한 재심 절차를 받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민주화운동을 훈장 삼아 스스로 존대해져서 나라를 운영하는 위치에까지 가놓고 그런 절규와 통곡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들은 민주화운동 경력을 자신의 이력서에서 당장 지워야 하고, 그런 사람들이 운영하는 나라는 나라의 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연장선상에 사법부 불신도 존재하는 것이다. 사법부의 구성원들이 정말 과거를 속죄하고 털고 가고 싶다면 이런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전에 먼저 그 소리가 증폭되기 전에 들었어야 한다. 작은 소리를 크게 듣고 작은 허물도 크게 속죄하는 조치를 먼저 취했어야 한다.

정치적 오해?사법부, 더 늦기 전에 행동해야

이런 이들이 조심스럽게, 힘겹게 용기를 내 찾아간 곳은 대법원 민원실이 아니라 진실화해위원회였다. 한국인권재단의 고문조작 사건 보고대회에서, 민변 주최의 과거사 청산 토론회에서 이들은 어렵사리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에게 "나도 구제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판결 분석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어 올해는 과거사 청산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만사가 이슈화 되는 대선 정국에서, 특히 '긴조 세대'와 386세대가 정치 전면에 떠오른 현 시점에서 사법부가 입을 다물고 있는다고 해서 정치 이슈화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오히려 과거사 청산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 자체가 훨씬 더 정치적인 행태로 비쳐질 수도 있다. 게다가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던 긴급조치 위반자들, 조작간첩 사건의 희생자들에게 "좀 더 기다리라"는 말은 가혹하다.

그렇다면 사법부는 이제 '운동권'이지 않았던, 술자리에서 홧김에 한 마디 했던, 그런 이들에게 과거사 청산의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국민을 위한 사법, 사법신뢰 회복'의 첫 걸음이 무엇일지 사법부가 더 늦기 전에 과감하게 행동해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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