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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긴급조치로 국민총화?…구실에 불과"

진실화해위 분석…긴급조치 위헌 여부 가려질까?

지난 23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관련해 재판부가 피고인들의 '긴급조치' 위반 부분에 대해 '면소' 판결을 내린 데 이어, 25일 언론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진실화해위)의 '긴급조치 위반 판결 분석 보고서'가 일부 공개되면서 3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긴급조치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이번 인혁당 재건위 사건 변호인단이 사형수 8명에 대한 재심 사건에서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법률적으로 묻지 않았던 것과 달리, 앞으로 민청학련 등의 재심 사건에서는 위헌제청 신청이나 헌법소원을 통해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물을 예정으로 알려져 긴급조치는 물론 유신 정권에 대한 정당성 논란이 벌어질 전망이다.

긴조 위반자 48%, 술자리나 강의 중 '박정희·유신' 욕한 죄

24일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입수한 긴급조치 위반 사건 판결문 1412건 및 각종 문헌 자료를 분석해 내놓은 '긴급조치위반 판결분석 보고서'를 보면 당시 긴급조치에 의한 인권탄압 수준이 상당히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긴급조치 위반으로 처벌 받은 사건의 판결 중 '음주대화 중, 수업 중 박정희·유신체제 비판발언'이 282건으로 전체의 48%에 이른다. 학생운동이나 반체제 인사와는 상관없는 일반 노동자들도 술을 마시다 "박정희 대통령이 종신 대통령을 하려 한다"고만 말해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 진실화해위원회.

1974년 1월 발동된 긴급조치 1호는 대한민국 헌법 개정·폐지를 주장, 발의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했다. 또 유언비어 날조유포 행위를 금지시키는 한편, 이런 행위를 권유·선동·선전 등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 언동을 금지시켰다. 당시 긴급조치 위반자 1호는 개헌을 주장하던 장준하, 백기완 선생 등이었다.

특히 위반자 및 비방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당시 긴급조치 위반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보고서는 "비상군법회의를 둬 재판케 한 것은 사실상 계엄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긴급조치 위반자는 국가보위라는 체제 차원에서 속결주의, 그리고 이른바 '정찰제'에 의해 중벌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정찰제'란 검사의 구형량과 판사의 선고형량이 일치하는 것으로, 심지어 판사가 검찰의 공소장 오탈자까지 그대로 베껴 판결하는 일도 있었다.

그 이후 같은 해 4월 '민청학련'을 표적으로 발동된 긴급조치 4호는 비상군법회의의 처벌 형량을 사형까지 올렸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8명이 사형을 당했으며, '인혁당 재건위'와 '민청학련' 사건으로만 169명이 처벌을 받았다.

다시 그 뒤 긴급조치는 발동과 해제를 거듭하며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됐으며,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1979년 12월 해제될 때까지 긴급조치 9호로 구속된 인사만도 1387명이나 되고, 판결문 분석 결과 1289건으로 974명이 사법적 제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권 보위용 유신개헌 및 긴급조치"

보고서는 유신헌법 및 긴급조치에 대해 "유신 주도세력들은 분단 상황에서 오는 안보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민총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유신헌법 제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으나 그것은 구실에 불과했다"고 해석했다.

보고서는 유신 체제에 대해 "70년대 들어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불만의 누적과 함께 학생들의 정권 비판이 강력하게 전개되고 있었으며, 사법파동(1971), 광주대단지 사건 등 각계각층의 저항이 전개되고 있었다"며 "정치적으로는 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가까스로 이기고, 총선에서는 개헌선에 못 미치는 의석을 확보하는 등 정권의 안정적인 유지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긴급조치의 발동은 더욱 노골적이다. 1973년 12월 함석헌, 장준하, 백기완 등 종교, 학계, 언론계 대표 30여 명이 '개헌청원운동 전개를 위한 성명'을 채택하고 100만인 청원 서명운동에 돌입하자 박 전 대통령은 "헌법에 대해 논의하지 말라"고 담화를 발표하는 등 공개적으로 경고를 했다.

그러나 1974년 1월 7일 이호철, 백낙청 등 문인들이 개헌청원운동에 동참하고, 1월 8일 전남대생 1000여 명이 개헌요구 시위를 벌이자, 8일 오후 5시를 기해 '헌법에 대한 일체의 논의를 금하는' 긴급조치 1호를 발동했던 것이다.


유신반대 세력 처벌 위해 긴급조치 발동


긴급조치 4호도 특정 세력에 대한 표적성 조치이긴 마찬가지였다. 1974년 4월 3일 서울대 등 전국 각 대학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이 시위에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이라는 단체 명의의 유인물이 배포되자 같은 날 오후 10시를 기해 긴급조치 4호를 발동하고 민청학련과 관련된 모든 행위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그 배후를 '공산주의 적화세력'으로 단정 짓고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를 배후로 지목했던 것.

보고서는 긴급조치 4호 등의 위헌성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을 부정하는 내용"이라고 결론 내렸다.

보고서는 이어 "긴급조치권의 구조에 있어서도, 그 적용 범위와 효과가 지극히 광범하고, 적용기간 또한 긴급조치 제9호의 경우에는 무려 4년 7개월이나 존속됐다"면서 "국회의 집회, 소집 가능성에 관계없이 발동될 수 있고 국회와 법원에 의한 통제가 거의 인정되지 않아 결국 대통령 1인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자의적으로 제한 없이 발동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인혁당사건 재심 변호인단 "긴급조치 위헌성 가릴 것"

한편 '긴조시대'가 30여 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변호인단은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 여부를 법률적으로 가리기 위한 위헌심판제청 신청 및 헌법소원을 준비 중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재심 변호인단의 김형태 변호사는 "피고인들에게 적용됐던 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에 대해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소를 제기하기 위해 전담팀을 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재심 재판 과정에서 "긴급조치는 위헌적인 법률이었다"는 주장을 강하게 제기했지만, 별도로 위헌제청 신청을 하거나 헌법소원을 제기하지는 않았었다. 30여 년만의 재심 사건인데다 당시 수사와 재판이 불법적이었다는 증거가 충분한 만큼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법원도 "권한 밖"이라며 긴급조치의 위헌성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묻는 방법은 두 가지로, 하나는 인혁당 재건위 생존자들이나 민청학련 관련자들의 재심 사건에서 법원을 통해 위헌제청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긴급조치 처벌 피해자가 직접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는 것이다.

유신 정당성 문제, 대선 있는 해에 가능할까?

두 경우 모두 헌법재판소에서 담당하게 되는데, 문제는 헌재가 이를 받아들일 것이냐는 대목. 헌재 관계자에 따르면 폐지된 법률도 그 법률로 인해 현재까지 기본권 침해 등의 효력을 미치고 있다면 헌법소원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법상 헌법소원은 "기본권이 침해되는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 또는 그 사유가 있은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청구해야 한다"고 돼 있어, 긴급조치가 헌법소원 사유에 해당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국가의 반인권적 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하고, 고 최종길 전 교수 사건 등에서와 같이 국가의 잘못에 대해서는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기 때문에, 헌재가 긴급조치에 대한 헌법소원 사유 발생 시점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재심 선고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어 올해 안에는 긴급조치에 대한 헌재의 결정을 받아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법원 안팎의 중론이다. 벌써부터 인터넷 공간에서는 '경제발전'을 이유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을 찬양하는 의견과 '민주주의 암흑시대'라는 이유로 유신 시절을 비난하는 의견이 사납게 맞부딪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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