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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자유, 평화, 그리고 생명의 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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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직 끝나지 않은 자유, 평화, 그리고 생명의 장정

[시론] '긴조세대'는 다시 묻는다

이른바 '긴조세대'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잇따른 긴급조치의 발동으로 격렬한 시대적 충격을 겪었던 세대를 가리킨다. 긴조세대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파괴되고, 인간이 권력에 의해 어떤 지경으로까지 해체되는가를 목격했고, 이에 대한 저항이 얼마나 중요한 역사의 진전을 이뤄낼 수 있는가를 체험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육성 대부분은 아직도 역사의 침묵 속에 묻혀 있으며, 이들의 죽음 위에서 권력과 부를 누렸고 지금도 누리고 있는 자들의 박정희 체제 찬양은 또다시 정치적 슬로건이 되어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다. 청산의 대상이 미래의 지표로 자신을 내세우고 있으며, 지난 시대를 비판적으로 거론하는 것을 '과거지향'이라고 매도한다. 이들은 마땅히 넘어서야 할 것을 도리어 밑받침으로 삼으려 하며, 천하에 공개해야 할 것을 어두운 지하에 은폐하려 든다.
  
  다시 부각된 '긴급조치'…그건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오늘날 이 시점에서 갑자기 긴급조치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고 그 위헌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긴급조치에 저항했던 이들의 정신이 다시 살아 움직여, 역사의 역전(逆轉)을 막고 바로 세우지 않으면 우리는 후퇴하고 만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긴급조치를 돌아보는 것은 지난 세월에 대한 한(恨)에 찬 회고가 아니다. 그건, 그 시대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의 한 복판으로 다시 들어가 오늘을 보는 일이요, 우리가 과연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를 밝히는 작업이다. 그에 더하여 어떤 세력이 역사의 주도권을 가질 자격과 권리가 있는가를 따져보는 일이다.
  
  '긴급조치'는 한마디로 국가폭력의 노골적인 행사였고, 개인은 이러한 폭력에 언제든 무자비하게 희생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1974년 1월 긴급조치 1호의 발동은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일체 금지했고 위반자는 비상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석 달 뒤인 4월 긴급조치 4호는 아예 '민청학련'을 지목해 권력에 대한 저항세력 일체를 토벌하는 대대적인 군사작전에 다름 아니었다.
  
  1975년 5월의 긴급조치 9호에 이르면, 표현과 집회, 언론의 자유는 거의 완전히 사라지는 암흑의 시대를 열린다. '민주주의'는 입에 올릴 수 없는 단어가 되고 '인권'은 금기어가 되는 현실이 닥친 것이다. 시인 김지하가 "신 새벽 뒷골목에서 너의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라고 했던 것은 시라기보다 현실 그 자체였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는 박정희 정권이 총동원 체제를 강화해가는 하나의 정점이었다. 그것은 민주적 기본권과 대안논쟁을 모두 봉쇄, 진압하고 박정희 일개인으로의 권력집중과 그를 위한 영구집권의 기반을 다지는 폭력사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박정희가 주도한 10월 유신은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국가폭력체제를 일상화하고 무수한 희생자를 낳은 것이다.
  
  오늘날 30여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게 된 인혁당 관련 인사들의 저 비극적인 사형 언도와 집행이 바로 그 긴급조치 시대 국가폭력의 진상이었으며, 그밖에도 민청학련 사건을 비롯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부당한 구속, 고문, 의문사, 조작 등이 모두 그 희생의 구체적인 증거들이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 압축성장의 주도세력으로 추앙받고 있는 박정희 체제의 태생과 성장, 그리고 결말은 모두 기본적으로 이렇게 '폭력'이었다.
  
  10월 유신체제는 일방적 홍보와 우격다짐의 분위기 속에서 국민투표 90퍼센트 이상의 찬성을 내세워 그 합법성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진실에 기초한 법과 체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자유와 기본권을 독재 권력에 스스로 헌납하는 국민은 어디에도 없으며, 당연히 저항은 필연적이었다.
  
  빵을 주겠으니 너의 영혼을 팔라고 한 권력의 메피스토펠레스는 잠시 뜻을 이룬 듯 했으나, 빵은 누군가가 독식하고 그 빵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눈치 챈 이들이 저항하기 시작하자 권력은 이빨을 무섭게 드러내고 가차 없이 국민들을 물어뜯었다. 긴급조치는 유신체제의 칼과 창이었으며, 그것을 직접 휘둘러도 모두 합법적이 되게 만든 폭력집단의 강권체제였다.
  
  역사적 반동과 그 하수인들, 그리고 '비극적 몰락'
  
  그렇다면 이 폭력의 내면에는 어떤 역사적 진실이 숨겨져 있었는가? 1960년대 말 세계는 격동하고 있었다.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이 세계를 휩쓸고, 인권운동이 시대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제3세계 민족해방투쟁은 미국이 주도하는 신제국주의 체제에 도전하고 있었으며, 일본에서 벌어진 안보투쟁은 동아시아 평화체제에 대한 역사적 고민을 압축하고 있었다. 1945년 이후 고착된 냉전체제는 이로써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었으며, 더 이상 냉전체제의 군사적 해법은 통용될 수 없음을 의미했던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중심가치로 삼는 새로운 대안 선택에 대한 역사적 논쟁이 요구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1972년 미국과 중국의 수교는 바로 이 냉전체제의 수명이 거의 다해 가고 있음을 알리는 전조였으며, 이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체제적 전환이 필요함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물론 낡은 것은 여전히 죽지 않았고 새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전환시대는 당도하고 있었다. 1974년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바로 이러한 시대정신의 요약이었다.
  
  세계는 이렇게 진통을 겪어가면서 새로운 시대를 잉태하고 있었고, 역사는 탈냉전의 사상과 국제질서를 향해 방향을 바꾸어나가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물론이요, 현실사회주의도 이미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고 급격한 자본축적의 폭력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고발은 시대적 흐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인간의 본원적 갈망과 생명의 논리가 가장 중요한 역사발전의 동력으로 주목되는 시대가 열리는 입구에 인류는 서 있게 되었던 것이다.
  
  10월 유신체제는 이러한 세계사적 변화에서 철저히 고립된 국가의 모습이었다. 아니 그것을 봉쇄하고 안보를 내세워 냉전지형을 보다 강화하는 가운데 인간을 파괴하고 생명을 짓누르는 퇴행적 체제를 보다 확고히 다지려는 반역사적 음모였다. 긴급조치는 이 음모의 구체적인 수단이었다. 사법부는 이 수단의 하나가 되어 폭력의 하수인이 되었다. 국가적 규모의 조직폭력은 이렇게 작동되고 있었다. 그 끝은 비극적 몰락이었다.
  
  누가 역사를 뒤로 돌리려 하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이 모든 것은 종식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기 위해 세운 권력은 도리어 민주적 논의를 가로막고 긴급조치식의 밀어붙이기 정치행위를 다반사로 일삼고 있고, 정치권의 유신체제 후계세력들은 역사의 반동을 꿈꾸며 대권가도를 준비하고 있다. 기본권과 평화가 새롭게 위협받고 있으며 역사의 진상에 대한 진지한 논쟁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자본과 군사주의가 결합한 파시즘적 대동맹 체제는 안팎으로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가동하고 있으며 사법부는 일부 극소수를 빼놓고는 이러한 현실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인간의 기본권과 평화, 그리고 생명을 지향하는 21세기 전환시대의 논리를 담아내기 보다는 이를 비방하고 왜곡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선의 시기에 정작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엄밀한 검증과 사회적 성찰을 도모하기 보다는 이른바 대권주자들의 움직임을 뒤쫓기 바쁘다. 지식인 사회는 어찌 보면, 심층적인 논의를 통해 오늘의 역사를 새롭게 만드는 일에 다소 지쳐버린 듯 하다. 그러나 시대의 긴박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급조치가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는 언제든 등장할 수 있으며 이를 고리로 하여 역사를 후퇴시키려는 세력의 주도권 쟁탈은 반복될 수 있다.
  
  긴급조치 문제가 다시 주목되는 것은, 이 격변의 전환시대에 다행스럽다. 그건 회고에 그치지 않는다. 마구 무언가에 정신없이 몰려 역사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고 있는 이 시대를 마주하여 과거는 엄중하고 맹렬하게 묻고 있다. "지금 우리는 무엇에 저항하고, 무엇을 이루려 하고 있는가?"라고 말이다. 인간의 자유와 기본권, 평화와 생명을 향한 장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잠들지 말자. 마취되지 말자. 그리고 깨어 일어나 이 긴 장정을 행복하게 마무리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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